지난번 그 벽, 강정마을의 벽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얼마 전 바닷바람 쐬고 싶어서 강정에 마지막 남은 공유수면, 멧부리를 찾아갔다. 서울에서 온 친구도 함께 있었다. 강정천 물줄기 따라 바다 방향으로 따라 걷다가 숲에 난 오솔길 끝에 이르면 갑자기 너른 주상절리 언덕이 펼쳐진다. 마을 제단이 있어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해군기지에서 강정천 사이 얼마 안 되는 땅이 모두의 공간으로 비어있다. 그곳에서 처음 숨비꽃을 보았고, 범섬과 썩은섬 광경이 아름다워서 마을에 찾아오는 친구들을 데리고 자주 가곤 하였다. 그런데, 오솔길을 벗어나자마자 사이렌이 울렸다. 긴 사선으로 공기를 찢는 소리에 귀를 막았다. 낯설지만 익숙한 장면이 내게 또 떨어졌다. 당연히 정신 차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해군기지에서 ’유난을 떤다‘ 정도로 생각했다. 목에 카메라 하나 걸고 있는 여자사람 하나를 이렇게까지 겁줄 필요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마이크 확성기에서 목소리가 나온다. 초소에서 군인이 쌍안경으로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였다.
“겁을 주려는 게지.” 
걸음을 못 떼는 친구에게 말했다. 친구는 이미 강정천 쪽으로 허겁지겁 내려가고 있었다. 화가 났다. 그래서 초소 쪽으로 씩씩 걸어갔다. 
“왜요? 왜 사이렌을 울리는 건데요? 여기 공유수면이잖아요? 왜 공포를 줘요? 왜요? 뭐요?” 하며 다다다다 퍼부었다. 물론 겁이 안 난다면 사람이 아니다. 군대는 언제든 발포할 준비가 되어있고, 여기서 혼자 죽으면 누가 들어와야 발견될만한 곳이니. 내가 죽으면 군대를 위협하다 사살되었다고 할 것이 뻔하니. 그렇게 죽는 것은 피하고 싶다. 한편은 이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서 말을 한다. 먼저 적어 놓은대로, 언제든 총을 쏠 수 있다고 믿는 내 생각이 틀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할 일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말을 거는 것, 높아지는 벽을 두드리는 일이었다. 여기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겁주기식 위협은 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왜 우린 번번이 대화에 실패하는지, 왜 우릴 예비 검속 하는지, 나는 내가 상처받았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아직 벽 너머를 본 적이 없다.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만이 유일하게 허락됐다. 질문해서 대답을 들은 적도 없다. 우리와 저 너머 저들 사이엔 길이 없을까? 담장 너머는 서로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과연 저 벽 너머에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어렵기만 할까? 우린 왜 저 벽 너머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저들의 말을 수용만 해야 하는가? 우린 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까? 이 규칙은 대체 누구를 지키는 건가?

송강호 징역 2년, 류복희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

작년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같은 형이 선고되었다. 불구속 재판 원칙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 송강호는 처음부터 제주교도소 수감 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수갑을 차기 직전, 벚꽃이 보고 싶은데 라며 애써 담담했던 친구는 이번 봄에도 꽃을 볼 수 없었다. 하필 구속된 날은 그의 생일이었고, 4월 3일이었다. 해군은 류복희와 송강호를 군용시설 침입 혐의로 고발했다. 침입이라고 한다. 군대의 벽을 넘어간 것, 그 선을 넘은 것이 이유였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질문이 생겨났다. 내 친구들이 그리고 우리의 행동이 침입이라면, 해군이 제주에 그리고 강정에 한 짓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국가가 국민에게 한 짓은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정부가 절차적인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깊은 유감을 표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8년 가을에 문재인 대통령이 강정에 와서 사과라며 했던 이 말을 나는 매일 질문한다. 국가가, 국가수반이 불법과 폭력을 인정했는데도 문제는 복구되지 않고, 그 불법한 상태가 판단의 기본값이 되는 이 상태는 정당한가? 두 번의 판결은 시민이 국가에 도전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겠다는 협박이 아니고 무엇인가? 

송강호의 구속이 확인된 날이 하필이면 4월 3일이었다. 아직도 이름이 없는 ‘제주 4·3’이 72번째 되는 날이었다. 제주는 국가에 의한 탄압과 대량학살로 말미암은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2005년 1월 27일 '세계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평화의 섬 구상을 이끌어온 10년 이상의 논의에서 ‘비무장’은 평화의 섬을 실현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거론되었다. 그러나 2007년, 노무현 정부는 대다수 시민과 주민들의 거센 반대를 무시하고 제주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강행 확정했다. 정치권은 유독 군대사업 만큼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협력을 이어왔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국가폭력을 동원해 강정마을에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이라는 이름으로 해군기지를 완공했다. 그 과정에서 숱하게 자행된 인권 탄압과 거짓말, 불법과 편법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는데도 세상이 꿈쩍 않는 것은 군대가 옳기 때문이 아니라, 군대가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마 군대도 이걸 알지 않을까? 그러니 2018년 국가와 군이 다시 한번 강정마을의 분열을 반복 획책하며 국제 관함식을 강행하는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국가는 이런 일련의 일들이 평화를 지키는 것처럼, 전쟁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일처럼 말해왔다. 그런데 단 몇 사람이 권력이 바라는 침묵을 깨뜨렸고, 그래서 그것은 ’침입‘이 되었다.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들이 법적으로 부여받은 마지막 권리인 최후진술을 할 당시에도 간섭받았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며 법이 권력을 유지하는 최후의 수단이 되었다며 절망했다. 4·3의 완전한 해결을 외치면서 해군기지 문제에 침묵하는 제주정치권도 책임이 있다. 4·3이 73년 전 일어난 어떤 사건일 뿐이라 이 사건과 관계없다고는 자신도 답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면, 국가권력의 폭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논리로 거듭 반복되는 방식이며 현재에도 유효한 힘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해결하지 못한 채 서둘러 화해하고, 상생을 강요하는 가해자에게 굴복하며, 스스로 빈궁해진 우리 자신이다. 이런 우리가 앞으로 만날 위협엔 질문할 수 있을까? 이렇게 침묵하고, 침묵 당하는 세계는 안전한가? 권장할 만한 미래인가? 과연 누가 침입자인가? 무엇이 진정 평화인가? 우리, 이 질문을 끝까지 한번 가져가 보자. 벽 너머 높은 데서 사이렌을 울릴 것이 아니라,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자. 시민을 단속하는 군대에 전하는 말이다.

작년에 강정에서 나온 성명서의 맨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났다.
“진실을 본 자는 반드시 선을 넘는다. 그것이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한다.”

* 글 제목, ‘진실을 본 자는 반드시 선을 넘는다’라는 말은 인권, 동물권 활동가 홍은전님이 2020년 7월 15일 <동물권리장전> 현장 발언 중에 했던 말다. 이토록 아름다운 말을 본 적 없다. 용기를 내기 위해, 이 말을 끌어안고 산다.

 

 

엄문희 활동가

엄문희 
강정마을주민이자 강정평화네트워크활동가 엄문희 씨는 강정 해군기지 준공식 날 강정마을에 집을 얻었다. 2019년에 마을친구 둘과 함께 여성으로서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그가 하는 모든 활동은 병역을 거부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때 병역이란, 인간을 포함해 존재하는 모두를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해 도구로 전락시키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다. 소중한 별명, ‘멸치’도 그런 고민 끝에 얻어낸 이름이다. 사라질 滅멸, 다스릴 治치. 멸치가 매월 1회 운영하는 [아직,강정]은 먼저 온 미래, 강정에 관한 이야기다. 

전통적으로 마을은 정신적·물질적 공동체성 테두리를 공유한 집단이었고 국가로부터 일정 부분 독립적인 단위였다. 향약이 인정되는 것도 오랜 시간 공동체의 형편에 따라 조정되어 온 경험과 가치가 법보다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가를 내면화한 마을은 내부 민주주의를 지속해서 훼손했고, 국가의 개발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동원하게 되었다. 국가의 척도와 가치가 내면화될 때 그 실행 주체들의 권력은 국가를 대행한다. 심지어 자치규약인 향약을 통해 마을 주민 일부를 외부화 해버렸다. 이런 일련의 광경을 멸치는 ‘기지촌’이라 부른다. 그는 마을서 ‘있으나 없는 존재’가 되고서도 ‘끝까지 살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다. 이미 목격자가 되어버린 이상, 그는 이 이야기를 해야 할 의무를 느낀다. 현재는 과거에서 오는 어떤 ‘결과’이기도 하지만, 미래 때문에 발생하는 ‘시도’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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