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4·3평화기념관에서 4·3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볍씨학교 받침반 친구들. (사진=볍씨학교)
지난 3일 4·3평화기념관에서 4·3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볍씨학교 받침반 친구들. (사진=볍씨학교)

오늘은 4월 3일이다. 4·3이 일어나고 벌써 73년이 지났다. 그동안 크게 생각해본 적 없는 사건이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다. 제주4·3은 1948부터 지금까지 73년 동안 싸우고 있다. 유가족 분들도 힘듦을 이겨내면서 싸우고 계신다. 4·3의 아픔과 평화를 위한 투쟁은 그분들만의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역사다. 무장대 분들의 큰 용기와 노력이 지금 우리의 삶을 만들어냈다.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생각하고 우리들을 위해 희생하신 모든 분들에게 위로와 감사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이 글을 쓰게 됐다.

내가 본 4·3은 미국의 큰 욕심이 요인이 된 것 같다. ‘경찰 발포 사건’이 4·3의 기점이지만 미국이 이 일을 더 크게 만들었다. 미국은 소련과 냉전 중이었고, 소련은 북한을, 미국은 남한을 식민지로 삼으려 했다. 소련을 견제함과 동시에 자신의 나라를 빨리 방어 할 수 있기 때문에 제주도를 군사적으로 이용하려고 했다. 또 잘 이어지던 평화협상도 미군과 토벌대의 ‘오라리 방화 사건’으로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제주도민이 단독정부를 결사반대했다. 이에 미국은 제주도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나는 4·3 평화박물관에서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화가 나고, 속상했다. 아무 이유 없이 죽임을 당한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울지 상상이 안 된다. 엄청나게 힘드셨을 텐데 내가 그 힘듦의 정도를 매길 수 없을 것 같다. 또 억울하게 당한 죽음에도 몇십 년 동안 땅속에 갇히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 아직도 발견되지 못한 희생자들이 많다는 것에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우선 이름부터 정리를 하자. 나는 4·3사건보다는 제주4·3평화운동이 맞는 말인 것 같다. 무장대분들은 항상 평화, 통일을 원하셨다. 총 몇 자루와 죽창으로 미국의 최신식 무기와 맞섰다. 항상 평화를 위해서 싸웠다. 그래서 4·3사건보다는 제주4·3평화운동이 더 맞는 말인 것 같다. 돌아가신 분들도 4·3사건이라는 말을 바꾸길 바라셨을 것 같다.

내가 본 제주4·3평화운동 중 가장 크게 느꼈던 건 첫째는 미국의 욕심이고, 둘째는 무장대들의 통일된 나라를 바라는 마음이다. 제주4·3평화운동을 공부하면서 미국의 욕심이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미국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평화, 통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 미국은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는 제주도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일단 미국의 생각이 너무 궁금하다. 자신들의 마음대로 되지 않자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다시 생각을 해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외국에서만 일어날 것 같았던 일들이 우리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 게 정말 충격이었다. 남의 나라 사람을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해 죽이는 것도 정말이지 화가 난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많이 무시하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나라 국민들을 아무렇게나 죽이고 식민지로 삼으려고 전쟁 아닌 전쟁을 만들어낸 것에 화가 났다.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사람이 할 짓이 아닌 것 같다.

두 번째는 무장대들의 마음이다. 무장대들은 목숨을 걸고 토벌대와 싸웠다. 무장대들은 자신들이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도 있지만, 후손들을 위해서도 있는 것 같다. 건국 5칙에서도 나왔듯이 그 시절 그분들은 학생들을 우선으로 생각한다. 학생들이 편하고 안전한 나라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우신 것 같다.

건국 5칙을 읽으면서 나를 돌아 보았다. 만약 내가 그 상황에서 선택해야 했다면 무서워 도망치거나 했지 목숨을 걸고 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직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 같다. 하지만 왜 그분들은 자신들의 목숨보다 후손들을 중요하게 생각했을까를 생각해 보니 그분들은 자신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가 났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후손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또 생각이 크고 마음이 넓으신 것 같다. 자신의 목숨 하나보다 후손의 목숨 여러 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모두를 위해서 힘들어도 참고 버티고 싸우신 것 같다. 내가 무장대에게 배워야 할 것 중 하나다. 나는 아직도 내 생각만 하고 사는데 앞으로는 넓게 세상을 보며 살아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의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남들과의 생활이 다르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남이 사용하면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님에도 부러워했다. 또 내가 미디어에 빠져있을 때는 피씨방에서 게임만 하는 어른들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게임방송에서는 종일 게임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도 부러웠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 가야 하는 것도 불만이었다.

그러나 4·3을 공부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그분들의 투쟁과 용기 덕분에 우리가 편안하고 안전한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분들에게 고맙다는 마음을 갖고 살 것이다. 배움을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고 미디어에 빠지지 않고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강새누

저는 4살 때부터 지금까지 볍씨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8학년까지 육지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부모님이 없는 제주도로 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없이 살면서 독립심을 키우고 또 저의 무기력함을 떨쳐내려고 왔습니다. 제주 학사에서 친구들과 지내고, 또 저를 무기력하게 만든 미디어가 없으니 많이 밝아졌습니다. 앞으로도 제주에서 지내면서 나태함을 없애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년 동안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