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보리빵. (사진=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홈페이지)
제주보리빵. (사진=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홈페이지)

제사상에 빵을 올리게 된 유래를 찾아 올라가면 고려가요 <쌍화점(雙花店)>에 ‘상화(霜花)’가 판매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상화는 밀가루를 삭임이란 술로 반죽하여 채소 등의 소를 넣고 둥글게 빚은 빵이다. 

예빈시(禮賓寺)에서 상화를 만들어 사신을 영접했다고 하고, 양반가 부인이 쓴 <음식지미방(飮食知味方)>과 <규합총서(閨閤叢書)>에 조리법이 기록된 것을 보면 상화는 고급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음식지미방>은 이문열의 소설 <선택>의 주인공 정부인 장씨가 1670년경에 쓴 한글로 된 가장 오래된 조리서이고, <규합총서>는 1809년 서유구의 형수인 빙허각 이씨가 엮은 여성생활백과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상화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제주에는 상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보리빵이란 이름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상화는 100여 년 동안 탐라를 지배했던 원나라 목호(牧胡: 원나라가 13세기에 제주도에 설치한 목장 관리를 위해 파견한 몽골인)들로부터 전래되었다. 

제주풍토에 맞게 제주에서 구하기 힘든 밀가루는 보릿가루로 대체되었고, 채소 소는 사라졌다. 이렇게 정착한 상애떡이 제사상에 오르게 되었고, 1970년대에 빵집이 생기면서 카스텔라가 상애떡을 대신하면서 빵도 제사상에 올라가게 된 것이다. 

상애떡은 떡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는 빵이다. 떡과 빵을 딱 잘라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떡은 쌀을 주원료로 해서 쪄낸 전통음식이고, 빵은 가루를 발효시켜 오븐에서 구운 서양에서 도입된 음식이다.’라는 정의에 따르면 상애떡은 보리가 주재료이고 발효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최초의 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애떡은 우리나라 최초의 빵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빵의 역사는 “1902년 개관한 서양식 호텔 정동구락부에서 ‘면포(麵麭)’라는 이름의 빵을 최초로 제공하였다. 그러나 일반인이 빵을 접한 것은 해방 후 군산에서 이석우씨가 일본인이 경영하던 제과점 이즈모야(出雲) 적산가옥을 구입하여 이성당이란 상호를 달고 단팥빵을 팔면서이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최초로 만든 빵은 면포이고, 최초로 판매된 빵은 단팥빵이라는 이야기다.

제주보리빵. (사진=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홈페이지)
제주보리빵. (사진=제주관광공사 비짓제주 홈페이지)

서두가 길어졌으나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딸에게 ‘빵보다는 떡을 먹자’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떡이 빵보다 건강에 좋은 세 가지를 들어보겠다. 

첫째, 주재료의 차이다. 정제된 밀가루는 당지수(GI)가 높아 혈당수치를 급격히 상승시키는데 몸은 신속히 반응하여 혈당을 낮추어 저혈당 상태가 된다. 그러면 짜증이 나고 집중력도 저하된다. 또한 글루텐(Gluten)은 소화 장애를 야기하여 영양흡수를 방해한다. 약을 먹을 때 밀가루 음식을 먹지 말라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반면 쌀은 당지수가 밀보다 낮고 글루텐이 없다. 

둘째, 부재료의 차이다. 빵에는 생크림, 잼, 설탕 등 칼로리가 높은 가공품이 들어가지만 떡에는 콩, 팥, 깨 등 칼로리가 낮은 곡물이 들어간다. 

셋째 신선도이다. 떡은 금방 딱딱해지거나 쉽게 상해 유통기한이 짧다. 그러나 이 단점도 달리 보면 그만큼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된다.  

특히 보리빵은 빵이지만 떡의 장점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보리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변비와 다이어트에 좋다. 보리밥을 먹으면 방귀가 자주 나온다. 보리의 식이섬유는 수용성으로 소장에서 흡수되지 않고 대장에서 왕성하게 발효되면서 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방귀는 장운동이 활발하다는 증거이다. 칼슘, 인, 비타민 B2 등도 쌀보다 2∼16배 많다. 

아쉬운 점은 보리빵이 ‘제주보리빵’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면서도 원재료에 제주산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팥과 밀가루는 중국산이 대부분이고 보리도 제주산이 아닌 경우가 많다. 원재료의 원산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빠는 투박함 때문에 보리빵을 좋아한다. 부드러운 식감과 달달함에 길들여진 혀가 거친 식감과 막걸리 냄새에서 편안한 고향 맛을 느낀다. 그리고 ‘보리방학(보리 수확기에 일손을 돕기 위해 실시했던 방학)’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해수 바람과 맑은 공기를 마신 친환경 보리]
보리밭. (사진=제주투데이DB)

보리가 베어져서 묶이고, 묶인 보릿단이 풀려 탈곡기에 먹여지고, 고시락(까락) 때문에 돋은 붉은 반점을 긁는 까만 손톱이 보이고, 할머니가 굽은 허리로 당근네를 끌며 보리를 뒤집고, 보리를 실은 경운기들이 새벽을 가르며 공판장으로 달리고, 더미를 이룬 마대에 ‘1등’, ‘2등’, ‘등외’ 도장이 찍히고, 등급에 따라 기쁨과 아쉬움이 쏟아지고, 오랜만에 쥔 돈으로 수박 한 덩이를 산 아버지의 기쁨과 슬픔이 버무려진 웃음이 마지막으로 클로즈업된다.    
  
그 시절엔 직접 지은 보리를 정미소에서 도정해서 밥을 지었다. 그리고 가족 모두가 둥근 상에 둘러앉아 보리밥에 자리젓을 올려서 먹고 물외(노각) 냉국을 들이켰다. 사 먹는 것은 소풍갈 때 김밥을 싸기 위한 김과 소시지가 전부였던 것 같다. 이제 식탁은 국적불명의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식 대체식품)이 점령하고 있다. 농(農)과 식(食)의 거리가 엄청나게 멀어진 것이다.  

딸아! 너는 살아가는 땅을 아끼고, 이 땅에서 나는 것을 즐기며,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첫 출발은 아침을 함께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아빠의 싱겁고 맹맹하고 채소를 좋아하는 토종 입맛은 할머니가 차려준 아침 식사에서 형성되었고, 식사 때 형제들의 지지발언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새 크레파스를 살 용돈을 탈 수 있는지가 결정됨을 배웠기 때문이다. 

오늘따라 맹맹한 보리빵을 맛있게 먹는 아빠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딸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아빠의 장광설을 끝까지 들어준 딸에게 희망을 품는다.

고기협.<br><br><br><br>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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