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세종청사, 광역시·도 청사 등 전국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건물 내 개설한 카페다. 전국 54개 매장에 약 250여 명의 장애인이 채용돼 일하고 있다. (사진=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아이갓에브리씽(I Got Everything)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중증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세종청사, 광역시·도 청사 등 전국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건물 내 개설한 카페다. 전국 54개 매장에 약 250여 명의 장애인이 채용돼 일하고 있다. (사진=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아이 갓 에브리띵(나는 모든 것을 가졌다), 도청 팔각정의 즐거운 변화

도청에 가면 으레 들리는 데가 있다. 팔각정 까페. 바리스타로 일하는 청년장애인들이 보기 좋아서다. 아담한 공원 안쪽, 고풍스런 외관과는 달리 실내는 세련된 인테리어와 알록달록 꽃 무리로 한껏 멋을 부렸다. 장애인 까페 ‘플로베(flove)’로 유명한 사회적기업 일배움터가 운영법인. 원두커피는 물론 제주야생차나 생과일주스도 나온다. 가격도 착하다(?). 그래선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참 다행이다 싶다. 

주문받고 차를 내는 일은 죄다 장애인 바리스타 청년들 몫. 목소리엔 자신감이 묻어난다. 자부심 가득한 얼굴이다. 덩달아 손님들도 즐겁다. 아이갓에브리띵(I got everything). 까페 이름 맞다. ‘모두를 위한 공간’이다. 커피를 사고파는 사회적 나눔을 통해 즐거움을 누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다름을 이해할 때 행복이 찾아온다며 출발한 식음료분야 소셜 프랜차이즈. 벌써 전국에 오십여 개나 생겼다. 도청점은 여덟 번째. 비교적 이른 편으로 2018년 문을 열었다. 

이처럼 즐거운 변화엔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제주도청 얘기다. 자신들이 직영하던 매점을 선뜻 까페 공간으로 내줬다. 장애인식 개선이란 사회적 목적에 공감한 것. 어쩌면 대수롭지 않다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청년장애인에겐 소중한 선물, 일할 기회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도움이나 받는 ‘능력 없는(Disable)' 대상이 아니다. ‘다른 능력을 가진(Different Able)' 어엿한 직업인이다. 시각장애인이 서빙하는 영국 ‘블라인드 레스토랑(Blind Restaurant)’에 비할 바 아니다. 장애인 바리스타 카페 ‘아이갓에브리띵’도 그에 못지않다. 이해타산만 앞세우는 시장논리로는 도저히 엄두내지 못할 일, 생각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선물경제(膳物經濟), 호혜(互惠)가 밑바탕인 사회적경제의 뿌리다.  

작년부터 이곳에서 제주도청 여성공직자회 ‘참꽃회’가 텀블러 이용 캠페인을 진행한다. 아이갓에브리띵과 함께. 코로나19로 갑자기 늘어난 일회용품을 줄이자는 공익마케팅. 도청에서 1년간 60만 개나 되는 종이컵을 쓰지 않으면 6톤 이상 이산화탄소가 감소한단다. 공공의 역할과 비중이 커진 요즘, 사회적경제와 공동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니 필자로선 기꺼울 따름. 계속 이어갔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웨이스트 제로(Waste Zero)를 표방하는 '함께하는 그날' 협동조합과도 같이하면 어떨까.

사회적경제기업 제품을 소비자가 직접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심(四心) 가득한 체험단’  참가자에게 4가지 테마로 제주사회적경제 물품꾸러미를 선물했다. (사진=강종우 센터장)
사회적경제기업 제품을 소비자가 직접 접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심(四心) 가득한 체험단’ 참가자에게 4가지 테마로 제주사회적경제 물품꾸러미를 선물했다. (사진=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센터장)

△가치사심(四心),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윤리적 소비 바이 소셜(Buy Social)

“생활 속 가치두기 실천달력과 귀여운 스티커가 함께 들어있어서 하루하루 어떤 가치 있는 소비를 했는지 체크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재미도 있었는데요. 이건 아들이 보자마자 본인이 하겠다고 책장에 붙여놓고 어린이집 다녀오면 하나씩 붙이더라구요”

2020년 ‘사심 가득한 체험단’ 참여자 이용후기다. 가치사심(四心), 제주사회적경제가 추구하는 네 가지 마음을 담았다. 환경과 건강, 그리고 함께 나누고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 이렇게 4가지 테마로 선물꾸러미를 체험토록 했다. 반응은 남달랐다. 다소 낯설고 생소해 보였던 사회적경제. 이렇게 다양한 물품을 만드는 줄 몰랐다, 가치 있는 기업이 많아 놀랍다 등등. 다들 자신이 무심코 쓰던 상품이 지역과 사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새삼 느꼈다 한목소리다. 앞으로 사회적 가치를 공감하고 윤리적 소비에 나선다고 다짐한다. 정말 달라졌다. 이것이다! 가치를 사는(Buying) 행동 하나하나가 모여 같이 사는(Living) 세상을 만들어 간다. ‘더불어 숲’이 된다. 사람을 살린다. 지구도 살릴 수 있다. 다름 아닌 바이 소셜 제주(Buy Social JEJU)의 가치살림이다. 

‘바이 소셜’은 2012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가치를 사는 경험을 통해 삶의 변화를 직접 느끼도록 하자는 취지. 시민과 기업, 공공이 사회적기업 제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면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가치구매 캠페인이다. ‘바이 소셜’이 주목받는 건 소비자를 대상화하지 않기 때문. 억지로 상품을 사도록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소비행위를 통해 변화를 익히고 스스로 생활방식을 바꾸는 계기로 만든다. 이렇게 영국 사회적경제는 10만 개의 기업, 90조 원의 시장규모로 커졌다. 가히 사회적기업의 메카라 불릴 만하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뒤늦게나마 이 캠페인에 합류했다. 

소셜 토요일(Social Saturday)은 매년 가을 토요일 하루를 정해 사회적경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하는 캠페인. 이날 사회적기업 제품을 구매할 뿐 아니라 사회적기업 팝업 스토어, 지역 축제, 워크숍 등도 함께 즐기며 사회적경제의 가치가 일상 속에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강종우 센터장)
소셜 토요일(Social Saturday)은 매년 가을 토요일 하루를 정해 사회적경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체험하는 캠페인. 이날 사회적기업 제품을 구매할 뿐 아니라 사회적기업 팝업 스토어, 지역 축제, 워크숍 등도 함께 즐기며 사회적경제의 가치가 일상 속에 스며드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진=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센터장)

△‘더 나은 제주’로 나아가는 지렛대, 사회책임조달.

코로나19가 던진 파장은 엄청났다. 기후위기나 불황에 그치지 않는다. 대량실업과 양극회, 공동체 해체. 결코 녹록지 않은 과제다. 사람들이 겪는 불안과 고통 또한 눈물겹다. 제주도 마찬가지. 되레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갖가지 문제들로 넘쳐난다. 주거나 교통, 심지어 쓰레기까지. 이대로는 성장은커녕 사회를 유지하기도 벅차 보인다.

더 이상 과거의 패러다임으로 해결할 수 없다. 어림도 없는 일이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시대, 공공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무엇보다 공공부터 가격이 아니라 고용, 사회통합, 환경 같은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는 사회책임조달로 탈바꿈해야 한다. 이미 영국에선 사회책임조달을 효과적인 정책수단으로 활용해 왔다. 사회적가치법(Social Value Act)이나 새로운 공공(New Public)을 통해서다. 우리 제주가 먼저 발 벗고 나서자. 사회적 가치가 공공에서 자리 잡히면 민간에도 자연스럽게 확산된다. 사회책임조달이야말로 공공과 민간,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더 나은 제주’로 나아가는 지렛대다.  

사회책임조달과 윤리적 소비가 활성화된 ‘사회책임도시, 제주’...사회적 가치와 지역경제 선순환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 ‘아이갓에브리띵’과 ‘가치사심’이 보여준 것처럼. 작지만 되돌릴 수 없는,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다. 안전하고 건강한 제주를 위해.

제주에서는 
어린이도, 노인도, 여성도, 장애인도, 가난한 사람도, 관광객도 
누구나 자연과 벗하며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오랫동안 품어왔던 주정꾼 몽상가(Drunken Dreamer)의 꿈, ‘모두를 위한 제주’. 오늘 다시 나지막이 되뇌어본다. 

 

강종우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 그가 매달 셋째주에 연재하는 '호박벌의 제주비상'은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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