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공=안혜경)
글 브렌다 백 선우 그림 리사 보르겐 번역 임광숙 (제공=안혜경)

찬란한 봄빛이 호사롭게 느껴지는 아침을 맞고 있다. 한 겨울을 견뎌내고 연이어 내린 봄비를 꿀떡 꿀떡 삼키며 이 반짝이는 봄빛을 흡수해 피어난 꽃들과 연두 빛 새잎이 참 곱다. 개화가 며칠 당겨진 것이 지구온난화 영향이라는 걱정스런 뉴스도 잠시 잊었다. 힘겹게 이어가는 자연의 순환이 고마워 내 얼굴에도 새싹 같은 엷은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그런데 겨울을 지내고 맞은 따뜻한 봄볕을 한가롭게 누리기엔 상상조차 못할 너무도 참혹한 기억이 4월에 꾹꾹 눌려 담겨있다. 73 년 전 4·3과 7년 전 4·16! 4월의 자연은 봄빛으로 따뜻하게 피어나는데 인간사회는 분노와 슬픔으로 싸하게 움츠러든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그 날의 힘든 기억을 7년 째 또 맞고 있다. 봄빛이 찬란할수록 4월의 고통스런 집단 기억이 더욱 서럽게 느껴진다. 

벗들과 깔깔대며 깊고 푸른 바다를 항해해 도착지 제주를 향하는 거대한 여객선 세월호는 영원히 제주에 닿지 못했다. 뉴스 화면을 보면서 호수처럼 평온한 바다에 침몰해 누워있는 거대한 배에서 그들은 곧 구조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그림과 영상과 대화가 전 지구적으로 순간 이동하고 우주선도 날려 올리는 때인데! 그러나 모두가 아시다시피 이해할 수 없는 구조 실패에다 침몰 원인에 대한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당시 그 충격으로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로 들끓었건만, 지금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그 기억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제주해녀를 수년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글과 사진으로 엮은 책 Moon Tides(달맞이)을 2011년에 출간한 재미교포3세 브렌다 백 선우가 최근 웹북 <세월호를 추모하며 In Memory of Sewol>을 펴냈다. 브렌다는 눈앞에서 수장된 자식들과 가족들로 7년 째 단장의 고통과 뚫린 가슴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었다고 했다. 브렌다 역시 등교 후 갑작스런 심정지로 사망한 둘째 아들에 대한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아픔이 있다. 웹북에는 수장된 자신들 때문에 매일 밤 아프고 그리운 마음으로 악몽에 시달리는 엄마를 돌고래의 도움을 받아 꿈속으로 찾아가 위로하고 싶은 딸의 안타까운 마음이 따뜻한 글과 아름다운 바다 속 장면 그림으로 담겼다. 

(제공=안혜경)
세월호를 추모하며 In Memory of Sewol (제공=안혜경)

그 책에 위로를 받았다는 유가족의 응답을 받았다는 브렌다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냥 인사치레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브렌다의 진정성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세월호를 추모하며> 웹북이 세월호 침몰 7년을 겪어온 부모들에게 얼마나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당연히 구조될 수 있다고 믿은 자식들이 눈앞에서 처참히 수장되었고 촛불로 일으켜 세운 정부조차도 그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결 못(안?)하고 있는 지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개봉한 주현숙감독의 다큐멘터리 <당신의 사월>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읽고 브렌다의 웹북이 세월호를 겪은 가족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라는 내 의문이 지나치게 냉소적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신의 사월>은 세월호가 사람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가슴에 남겨져있는지 인터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해결되지 않은 세월호의 문제를 꺼내는 것이 “7년을 매달리면서 시민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지겨워하진 않을까?” 라고 궁금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그 날을 기억하며 슬퍼하고 자신들이 그 상황에 처하면 어떤 행동을 했을지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 위안을 받고 있다고 했다. 

책임규명이 선행되지 않았는데 섣부른 위로가 오히려 더 상처를 입힐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기억하는 것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는 것임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설익은 비판적 시선을 가졌던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였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막, 브렌다가 기억걷기 행사에 참여하러 사계로 가고 있는 중이라며 제주와 해외에서 열리는 세월호 7주기 기억행사 웹포스터를 카톡 메세지로 보내왔다. 누군가에겐 늘 함께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힘이 된다는 걸 기억해야 하는 4월이다. 그런데 제주엔 아직 <당신의 사월>개봉관이 없다!

주현숙감독 시네마달 배급 (제공=안혜경)

 

안혜경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예술은 뜬구름 잡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 굳어진 뇌를 두드리는 감동의 영역이다. 안혜경 대표가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예술비밥'은 예술이란 투명한 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엿본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