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숨막힌 날들에도
변함없이 피어나는 들꽃처럼
봄 들판에 햇망아지 피어난다.

들판에 들어서 어미말 판박이인 햇망아지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눈 마주치면 슬그머니 어미말 뒤로 숨다가
무심한 어미의 반응에 점차 경계를 풀더니 
어느새 개구쟁이처럼 성큼 내게 다가온다

곁에서 지켜보면
말들이 참 영특하고 감수성이 섬세함을 실감한다

어린 새끼를 돌보는 어미말은
낯선 이가 나타나면 위협적인지 판단하고
지체없이 새끼를 데리고 멀찍이 피해버린다

새벽녘이나 해질녘에 나타나 별빛아래 잠들때까지 자기들 곁에 쪼그려 앉아 있다보니 어떤 어미말은 내 눈앞에서 드러누워 코를 골기도 한다

망아지는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카메라 렌즈에 콧김도 내뿜고
내민 손을 핧거나 손가락을 깨물며 놀다가
내 옷을 물어 당기며 제 몸을 들이댄다

'아! 자기들끼리 하듯 내게 몸을 긁어달라는가 보다'

목덜미랑 몸통을 박박 긁어주니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털속 피부에 박힌 콩알같은 진드기들이 손끝에 느껴진다

팔이 지칠때쯤 깡총거리며 어미곁으로 달려가 젖먹고 털석 주저앉아 졸린 눈 감더니 금새 드러누워 꿀잠 잔다

망아지들은 또래끼리 어울려 놀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때론 너무 멀리 떨어져 어미를 부르며 구슬프게 울기도 한다

한참을 울다 저멀리 어디선가
높은 음정의 어미말 소리가 들리면
바람처럼 어미곁으로 달려간다

간혹 어미말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새끼를 부르는 모습에
해가 지도록 동무들과 놀다가 어머니에게 혼나던 어린시절이 떠오른다

들판에서 뛰놀다 배고프면 삥이를 씹고
여름이면 땡볕에 바당에서 종일 놀다가
등판 가득 물집 생기고
그렇게 뱀허물벗기를 두어번 반복하면
어느새 여름이 끝나던 유년시절

멀리 아련하게 한라산을 바라보는 망아지의 모습이
우리 아이들의 일상과 대비되어 마음 아리다

사라져가는 유년의 추억과 함께
오늘도 햇망아지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한때 유행하던 광고 카피를 읖조리며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김수오

제주 노형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오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한의학에 매료된 늦깍이 한의사다. 연어처럼 고향으로 회귀해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낮에는 환자들을 진맥(診脈)하고 출퇴근 전후 이슬을 적시며 산야를 누빈다.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다움을 진맥(眞脈)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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