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무쇠솥. (출처=픽사베이)
 무쇠솥. (출처=픽사베이)

‘짓는다’는 말은 ‘만들다’의 지극한 의미일 것이다. 만드는 행위의 에스키스(esquisse·밑그림, 스케치;편집자) 너머 더 깊은 무엇을 포함한다는 뜻이지 않을까? 밥을 짓고, 집을 짓고, 시를 짓고, 노래를 짓고, 약을 짓고, 옷을 짓는다고 한다. 

나는 거의 한국인만 사는 내 나라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신이 한국사람이라는 자각을 할 필요가 없었고, 당연히 내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별달리 궁리해 본 적이 없음을 맨해튼에 있는 자연요리학교에서 수업받던 어느 날 깊이 깨달았다. 

설마 누군가 너희 나라의 주식이 무엇인가를 물었다면 “쌀!”이라는 답은 했겠지만, 우리의 주식이 ‘쌀’이자 ‘밥’이어서, 서양인들의 식탁 차림과는 다른 형식의 ‘밥상’을 차린다는 것까지는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 깐깐한 식견이 돋보이던 프랑스 출신의 강사가 동양의 여러 나라 (아쉽게도 대부분이 일본이지만) 음식 중 한국의 음식을 설명하며 “There are many BanChans on the small table….”이라고 하는 말하는 순간이었다. 

‘아,아, 그렇지!’ 뇌의 회로가 공중으로 스프링처럼 튕겨 나간다. 우리는 쌀을 익힌 ‘밥’이라는 것을 그릇에 담아 상에 올려놓고, 그것을 먹기 위한 적당한 반찬들을 올려놓지!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던 3첩반상 5첩반상 그런 형식은 밥과 반찬의 구조에서 몇 가지 반찬이 상위로 올려지느냐에 따른 분류다. 

5첩 반상. (사진=전주시 유튜브 채널 전주맛 영상 갈무리)
5첩 반상. (사진=전주시 유튜브 채널 전주맛 영상 갈무리)

우리는 서양처럼 다이닝룸이 따로 있지도 않고 큰 식탁을 쓰지도 않으며 밥 먹을 시간이 되면 아주 조그만 포터블한 상을, 자고 먹고 책 읽는 공간에 펼쳤다가는 접는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주해 온 온갖 민족들이 사는 맨해튼이지만, 클래스에서 나이도 많은데다 유일한 동양학생이 느끼던 고독감이 갑자기 유니크한 문화를 가진 코리안의 자부심으로 바뀌고 나서는 주식이 쌀이 아닌 사람들이 쌀을 이해하는 방식을 가볍고 즐겁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조선 사람들은 청나라사람 장영이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設)에 “밥알이 반지르르하며 부드럽고 매끄러운 데다가 향기롭고 윤기가 돌게 밥을 잘 짓는다. 이른바 가운데와 가장자리가 모두 기름지다”라고 했던 동아시아 중에서도 밥 잘 짓기로 알려진 민족이다. 

‘짓는 것’의 디테일이 있는 것이다. 쌀의 불림, 단계마다 적절한 불의 세기가 있고, 밥물이 넘치면 안 되는 압력이 필요하고, 짓는 용기의 다름이 있고, 진밥이 있는가 하면, 된밥이 있고, 뜸 들이기가 있고 누룽지가 있고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여 먹는 숭늉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밥을 칭하는 글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한 번 찐 밥 분(餴)이 있고, 다시 쪄서 김이 맺힌 밥 유(餾), 잡곡밥 뉴(粈), 물에 만 밥 손(飱), 국물을 부은 밥 찬(饡), 색을 낸 밥 신(䭀) 등등이 있다.

영어로 ‘밥 짓는다’는 단어는 단순히 ‘cook’이다. 밥에 대한 이해가 단순하고 고정관념이 없는 사람들은 쌀을 이해하는 방법이 자유롭다. 밥은 쌀로 만든다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밥을 짓는다고 하면 ‘Cook the rice(쌀)/quinoa(퀴노아)/lentil(렌틸콩)’이다. 그저 곡물을 익히는 것이다.

맛으로 치자면 심심하기만 한 밥을 그리워할 리도 없지 않은가? 곡식도 아닌 콜리플라워로 밥이라는 것을 해 먹는다. 얼핏 정말 밥처럼 보이는 콜리플라워 라이스를 한 공기 정도 만들려면 콜리플라워 헤드 하나는 거뜬히 들어가니 채소를 많이 먹는 좋은 방법도 된다.

컬리플라워로 지은 밥. (사진=김은영 제공)
컬리플라워로 지은 밥. (사진=김은영 제공)

콜리플라워를 잘게 다져서 쪽파나 허브 다진 것 소금을 약간 섞어 뜨거운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살짝 볶아 숨만 죽이면 된다. 압력밥솥이 시간 맞춰 밥을 지어주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밥상이 아닌 식탁을 쓰고, 접시에 밥을 덜어 먹는다. 

한국에는 빵집들이 늘어가고, 미국 슈퍼마켓에는 거꾸로 글루텐과 아무 상관도 없는 상품에도 글루텐프리 마크가 무슨 건강한 음식이라는 보증이라도 되는 양 무수히 박혀 있다. Non-GMO와 함께. 학교 커리큘럼에 글루텐프리 베이킹 시간이 있었다. 밀가루를 대신해 쌀가루나 병아리 콩가루, 혹은 여러 가지 전분이나 씨앗들을 쓴다. 

2019년 봄, 뉴욕의 쿠킹박람회에 일본 정부는 쌀로 만든 카스테라용·식빵용·과자용 베이킹 가루 부스를 차리고 레시피까지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일본 쌀은 품질이 높고 베이킹에 쓸 수 있다며 쌀가루로 만든 빵을 들고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만두로 유명한 C기업의 미국 직원들이 고추장을 가지고 나와 있었다. 한국 쌀에 대한 홍보는 없고 기업 제품으로만 소개하고 있어 아쉬웠다. 

지난 2019년 뉴욕에서 열린 쿠킹박람회에서 일본 정부는 자국의 쌀을 적극 홍보(위)한 반면 한국 한 식품기업은 한국 쌀에 대한 홍보는 없고 기업 제품만 소개(아래)했다. (사진=김은영)
지난 2019년 뉴욕에서 열린 쿠킹박람회에서 일본 정부는 자국의 쌀을 적극 홍보(위)한 반면 한국 한 식품기업은 한국 쌀에 대한 홍보는 없고 기업 제품만 소개(아래)했다. (사진=김은영)

역사는 늘 퓨전의 시간이고 퓨전의 속도는 더욱 가속이 붙고 있는 것 같다. 표층에 파도가 끊임없이 친다. 하지만 길을 떠날 때 짐 보따리에 자기가 먹을 쌀을 챙겨 넣어 두었다가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집에 내놓거나, 만나면 밥 먹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인사이기도 한 우리의 밥 중심의 정서가 심해 저 깊은 곳의 모비딕처럼 살아있다면 파도는 순환의 역할을 하는 좋은 일일 텐데…. 우리의 모비딕은 살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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