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 세 번째 주자로 나선 홍명환 제주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4일 ‘다른 제주를 위한 새로운 정책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다.(사진=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

제주 옛 이름인 탐라국은 고려시대로 접어들며 중앙정부의 관리지역으로 편입된다. 건널 제(祭) 고을 주(州) 제주. 바다 건너 큰 고을이라는 타자화된 명칭은 이때 얻어진다. 중앙집권 체제가 강화된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관부 수탈이 격심해진다. 수탈과 억압의 역사는 제주4·3으로 이어지고, 이를 겪은 사람들 입에서는 "일제강점기가 오히려 나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 세 번째 주자로 나선 홍명환 제주도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제주의 긴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으로 ‘다른 제주를 위한 새로운 정책이야기’ 주제 강의를 열었다. 중앙정부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제주역사를 모르고 ‘자치도’가 어떤 의미를 갖는 지 파악할 수 없어서다. 

그럼 현재 제주도는 정말 특별한 '자치'중일까?

제주도가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건 지난 1963년. 제주도를 홍콩처럼 자유무역항으로 개발하는 계획이 검토되면서부터다. 

관광개발 정책으로 제주시는 1970년대부터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도농 간 소득격차와 이로 인한 지역 간 불평등 심화는 농촌지역의 과도한 인구유출을 가져왔고 1980년대부터는 남서쪽으로 신도시가 확산되며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개발의 제도적 토대가 마련된 것은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을 두고 제주사회는 개발과 보존을 둘러싼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개발을 또 다른 착취로 본 양용찬 열사는 당시 이 법을 저지하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목숨을 건 반대에도 정부는 1994년 도서지역을 제외한 제주도 전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한다. 같은 해 개발법을 근거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을 탄생시켰고, 이에 따라 3개 관광단지와, 20개 관광지구로 제주도를 구성하는 미래 청사진이 다듬어진다. 

난개발의 온상이 된 지금의 밑그림을 완성한 건, ‘2002년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에 따라서다.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는 국제자유도시라는 이름으로 제주도에 입도했고, 사람·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 2006년 만들어진다. 

정부는 제주를 지금의 특별자치도로 승격하며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을 내밀었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중문관광단지, 초대형 호텔, 조악한 박물관들, 신화역사공원, 대규모 주택단지, 드림타워 등이 제주를 구성하고 있다. 사방에서 보였던 한라산은 이제 옛이야기다. 이들을 잇기 위해 건설된 노선 수만 2019년 기준 4147개. 면적 대비 전국 최고 수준이다. 

지역내총생산(GRPD)은 2019년 기준 20조를 넘었지만, 그 과실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와 대형 면세점 등에 집중돼 도내 인구의 약 절반은 무주택자로 살고 있다.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한다는 특별자치도는 개발일로를 달려왔다. 그 결과 저임금, 고용불안, 부동산값 폭등, 쓰레기 매립장 포화, 하수 처리 용량 초과 등 사회지표를 악화했고 도농격차, 소득격차, 주거격차 등 불평등을 초래했다.

홍명환 의원은 “봉쇄와 고립의 역사를 가진 제주도가 드디어 국제도시로서 희망을 가져볼까 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 개발 과실은 누가 따 먹었냐”며 “‘(제주개발법)이 도민의 살과 뼈를 갉아 먹으며 노리개로 만들 것’이라던 양용찬 열사의 경고는 지금 현실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비용 비효율 도시라는 멍에를 쓴 국제자유도시를 저비용 고효율 도시로 전환해야 할 때"라며 진짜 "도민 복리를 증진하는 제주도로 공간을 재구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홍 의원은 자치, 주거, 교통 이 세 가지 틀에서 제주도를 재구성할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했다. 

◆ 첫 번째 제안 : 자치권 부활= 2006년 특별자치도가 출범하며 4개의 자치 시·군이 사라지고 2개의 행정시만 두는 현재 단일광역자치 체제가 시작됐다. 도민의 자기 결정권 훼손과 '제왕적 도지사'라는 말이 나온 것이 이때부터다. 

홍명환 의원은 “기초자치단체가 없으니 제주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정책들이 도지사나 도의회 중심으로 결정된다”며 “제주도를 지속가능한 도시로 재편하기 위해서는 도민 의사나 합리적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기초 부활이 최우선 과제”라고 했다.

행정시로 격하된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법인격으로 되돌리고 시장을 도민들이 직접 선출하자는 논의는 민선 5기부터 본격화됐다. 이후 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는 제주도를 4개 행정시로 개편하고, 각 시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방안을 권고한 바 있다. 

홍 의원은 이에 반대했다. "4개 구역 개편은 오직 개발 관점으로 제안된 안"이라며 주민자치가 가능한 체제를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도농 격차와 도심 공동화 등 도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구 편차를 줄여야 한다고 봤다. 따라서 서귀포시는 기존대로 놔두고, 전체의 약 73% 인구가 밀집해 있는 제주시만 2개 구역으로 나누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했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

국회의원 지역구나 동부와 서부로 나뉜 경찰 구역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해보자고 했다. 

다만 시장 직선제는 시기상조라고 했다. 홍 의원은 “절차장 문제 등 추진동력이 불투명하다”며 행정시장 예고제 의무화로 예열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시장 직선과 함께 기초의회 부활까지 이야기하지만 홍 의원은 재정과 입법 등 법인격까지 회복하려면 절차가 복잡하고 저항이 심해 당장 현실성이 없다고 했다. 

우선 기득권 반발을 무시할 수 없다. 자기 지역구를 없애야 하는 도의원들이 과연 기초의원 부활에 동의할지 회의적이다. 

또 특별자치도 설치 목적을 지방자치의 실현으로 밝힌바, 과거 제도로의 회귀는 중앙정부 스스로 정책 실패를 인정하는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내년 지방선거부터 현행 행정 권역에 따라 행정시장을 선출할 경우, 비대한 제주시 정치력이 도지사와 비슷해질 우려가 크다. 

홍 의원은 정책적·정치적 수용 가능성이 희박한 시장 직선제를 내세우기보다 행정시장 예고제로 선회 후 주민투표 동력을 얻어보자고 했다. 

그는 행정시장 예고제 임의조항을 강제조항으로 특별법을 개정하고, 2년 임기를 4년으로 연장해 내년도 지방선거를 치르자고 했다. 이 구상에는 2026년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본격화하는 주민투표 추진 방안도 포함돼 있다. 

행정체제 개편으로 주민자치 회복이 가능하냐는 질문에는 "도내 읍면 자연부락의 경우 주민자치가 국내에서 가장 고도화됐다"며 "문제는 왜곡이 심한 도시 내 주민자치"라고 했다.

그는 “복지·주거·쓰레기·교통 문제 등 생활환경 정비는 도 관할이 아니고 행정시 관할”이라며 도시형 주민자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자치 부활의 핵심이라고 부연했다. 

◆ 두 번째 제안 : 적정 규모 주거정책= 전 세계적으로 일자리 문제와 주거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고 제주도 예외는 아니다. 

홍 의원은 그중 주거 불평등에 주목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주지역 주택보급률은 2018년 기준 107.0%로 2015년 대비 6.3%p 상승했지만, 무주택자 가구는 전체 가구의 약 45%. 이를 해결하지 않고 저비용 고효율 도시는 언감생심이다.

공동체 해체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지목했다. 공동체 연대가 주민자치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핵심이라서다.   

도시가 진행된 곳은 지역 문제 해결에 있어 해당 지역 주민들의 숙의・결정과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가령 도남은 인구가 2만 명이다. 총회 한 번 못한다. 읍·면은 전국과 비교해 주민자치가 잘 이뤄지고 있는데, 인구가 과밀한 '동'의 경우 왜곡이 심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자치 가능한 도시형 주거 복지가 가능할까. 

그는 "인구감소시대를 대비한 적정규모의 주거정책이 요구되고 있다"며  "공동주택 단위를 500~1000명 정도로 제한하는 도시형 주민자치 모델"을 제시했다. 주민 참여가 용이한 인원으로 주택단지를 구획하고 더불어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대규모 택지 개발을 막자는 구상이다. 토지는 묶고 건물만 풀면 600만원 선에서 분양도 가능하다고 했다.

주거 안정은 저비용 고효율 도시로 가는 첫 단추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홍 의원은 도시계획은 멀리 내다보고 주거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지만 제주도는 여전히 도로교통 기반시설 확충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제주도 올해 주거부분 예산은 고작 200억원에 불과하다. 그것도 임대주택 관리 비용이 대부분이다. 전기차 1년 예산이 2000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도민이 세금은 (업자 배불리는)대규모 택지 개발이나 도로 건설이 아닌 도민복리를 위해 제대로 분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명환 의원이 제시한 트램 운행 노선도. (그래픽=홍명환 의원)
홍명환 의원이 제시한 트램 운행 노선도. (그래픽=홍명환 의원)

◆ 세 번째 대안 : 신교통 수단 트램= 저비용 고효율 도시 전환을 위해 홍명환 의원이 뽑아 든 세 번째 카드는 도시재생과 연결한 트램이다.

그는 "교통혼잡과 교통사고비용 등 교통관련 예산에 매년 1조 원 가량이 투입되는데, 지금까지 어떤 대책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자동차 중심 도시를 대체 할 새로운 교통수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제주도 승용차 분담률은 54.4%, 렌터카까지 합하면 71%다. 자동차보유대수 전국 1위를 차지한 제주도 도심은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자동차 중심 정책 결과라 할 수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도시교통정비 중기계획 및 연차별시행계획(2019~2023)'에 따르면 제주도는 도시교통정비를 위해 5년간 잡아 놓은 예산만 3조 8000억 원이다. 대중교통에 8123억 원. 주차장 건설에 3828억 원, 전기차 보급에 1조 4412억 원, 도로건설에 1조 645억 원을 투입한다. 

올해 편성한 도로 예산만해도 제2도시우회도로(번영로~삼화지구)개설사업60억원, 제주시 구국도대체우회도로(회천-신촌) 건설공사 95억 원 등이다. 

홍 의원은 "예산은 잡아놨으니 도로는 확장해야 하고, 도심 내 확장은 불가능하니 외각으로 자꾸 뺀다"며 이제 도로공급의 한계를 인정하고 자동차 중심에서 대중교통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도시재생과 맞물리는 교통 정책이라야 저비용 고효율 도시를 완성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도시재생을 위한 미래 도시교통 정책으로 도보, 자전거, 버스, 택시를 결합한 '트램+4' 정책을 제안했다. 

트램 도입 논의는 사실 처음이 아니다. 민선5기 우근민 도정이 추진하다 폐기된 전력이 있다. 하지만 홍 의원이 제기한 트램 도입 방안은 궤가 다르다. 

우근민 도정이 추진했던 트램은 ‘대중교통수단’이 아닌 ‘관광자원의 일환’이었다. 홍 의원이 제안한 '트램+4'는 교통혼잡 분산과 원도심 공동화 현상 해결을 위한 '신교통 수단'이다. 

교통량을 줄여 사람의 길을 되찾는 이 구상은 먼저 △트램으로 뼈대(간선)를 먼저 세우고 △마을버스자전거 등으로 살(지선)로 붙인다. △외곽은 BRT(간선급행전용버스)로 연결한다. △교통 취약 지역은 마을택시를 운영한다. 

비용편익이 나오냐는 질문에 "검토 결과 50㎞ 이하 노선은 BRT, 바이모달트램, 트램(노면전차) 모두 경제성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며 "도민의 약 20%가 이용하면 (1500원, 5만 명 2회, 365일=547억 수입) 운영비까지 충족한다"고 답했다. 

노형-삼양(12㎞), 탑동-아라(8㎞)를 열십자(+)로, 외곽(30㎞)은 순환으로 놓으면 경제성을 담보할 수 있고, 역세권을 중심으로 원도심 재생 효과까지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건설비용과 관련해서는 "트램의 경우 1조 1371억원에 상당하는 건설비가 들지만 유지비용이 적다. 3조 8000억원을 엄한데 투입하지 말고 제주 미래교통에 투자하는 게 더 타당한 세금사용법"이라고 강조했다. 

경사로 문제에 대해서는 "가장 가파른 지역이 시청과 연북로를 잇는 고산동산인데 경사율이 11%다. 9~11%까지 운행 가능한 것으로 안다. 한 번 멈추면 힘들 수 있지만 탄력 붙으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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