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나물꽃. (사진=고기협 제공)
광대나물꽃. (사진=고기협 제공)

햇빛이 흐드러진 날, 작은딸과 풀을 뽑았다. 작은딸이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크게 벌린 광대나물꽃에 휴대폰을 들이대며 “이렇게 예쁜 꽃을 왜 뽑아요?”라고 묻는다. 어머님이 답한다. “곡식이 먹을 양식을 검질(‘잡초’의 제주어)이 먹어부난(먹으니까) 뽑아야지. 다른 풀들은 아맹 곱닥해도 다 검질이라(아무리 곱다고 해도 다 잡초다)”고. 같은 광대나물이 딸에겐 꽃이고 어머니에겐 잡초다.  

딸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딸에게 사람 인(人)자의 아래 획은 스스로 서는 것을 뜻하고, 위 획은 더불어 사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스스로 서야 하기에 돈을 받지 않는다는 서약을 받았다. 

대신 다른 사람에게 해만 끼치지 않으면 딸의 삶에 끼어들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성인이 된 딸은 용돈을 위해 주말마다 여러 농가의 밭일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필자의 주머니에서는 시간당 1만원이란 노임이 딸에게 빠져나간다. 

딸이 노동시간을 늘리려는지 할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해서인지 할머니에게 쉴 새 없이 쫑알댄다. 어머니가 필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자청비이야기까지 술술 풀어놓는다. 딸이 아빠의 리듬을 깨려고 아빠가 장광설을 펼칠 질문을 툭 던진다. “아빠, 환경과 생태의 차이가 뭐야?”  

환경은 인간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일컫는 단어로 인간이 있어야 성립하는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용어이다. 

수렵채집시대에는 인간과 환경의 구별이 없었다. 인류는 벼락, 폭풍 등을 무서워했고, 인간생존을 위협하는 자연을 숭배했다. 그리고 동식물뿐만 아니라 해, 바람, 바위 등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토템신앙(totemism)과 정령신앙(animism)이 발달했다. 

하지만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환경은 극복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이 환경보다 우월하다는 사상이 태동했다. 

유가에서는 만물 중에서 인간이 가장 귀하다고 여겼다. 순자는 “물과 불은 기는 있으나, 생명이 없고, 초목은 생명은 있으나 지각이 없고, 동물은 지각은 있으나 의로움이 없다. 인간은 기도 있고 생명도 있고, 지각도 있으며, 의로움도 있다. 고로 인간이 가장 귀하다”고 하였다. 

기독교에서도 “하나님은 자기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셨다”고 하여 하나님의 피조물 중 인간에게만 특별 지위를 부여하였다.

그래도 환경은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자기회복능력에 의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성에 대한 맹신과 진보에 대한 확신이 산업혁명으로 표출되면서 환경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 전락하여 거침없이 파괴되었다. 생태계의 복원능력 또한 현저히 저하되었다. 그 결과 환경문제가 인류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도네시아 파푸아주에서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열대림을 없애고 오른쪽에 단일 작물 플랜테이션이 들어선 모습. (사진출처=환경운동연합)
인도네시아 파푸아주에서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열대림을 없애고 오른쪽에 단일 작물 플랜테이션이 들어선 모습. (사진출처=환경운동연합)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개최된 리우환경회의는 이러한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대응한 첫 국제회의였다. 그때부터 국제사회는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란 의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그 국제적 해결책으로 나온 것이 2015년 파리협정의 ‘2050년 탄소중립(Net Zero)’이다.   

하지만 이러한 국제적인 노력도 지구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지속가능성과 환경보호란 말 자체가 ‘인간은 중심, 자연은 대상’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가능성’은 현세대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미래세대가 사용할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것을 뜻하고 ‘환경보호’란 결국 인간의 이익을 위해 자연을 보호하는 일이 된다. 

아빠는 지구의 항상성을 유지하려면, 이러한 환경론자의 관점에서 벗어나 생태론자의 관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빠는 생태계를 “존재하는 모든 것이 각자 위치에서 자기 의미를 갖고, 서로 연결되어 관계를 맺으며 순환하는 역동적인 복합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서는 인류도 그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한 종에 불과하다. 따라서 인류는 자연을 훼손할 자격이 없게 된다.
          
고기 1kg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곡물 16kg이 필요하다. 전 세계 곡물 생산량의 45%가 가축 사료로 쓰인다. 따라서 사료 생산을 위한 목초지가 개발되면서 숲 또한 사라지고 있다. 외국산 쇠고기가 들어간 햄버거 1개를 먹으면 숲 1.5평이 파괴된다. 

아이스크림, 라면, 화장품 등의 원료인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세계 생산량의 85%를 생산하는 인도네시아에서는 팜유 경작지를 확보하려고 열대우림이 불태워지고 있다. 초지와 경작지 확보, 벌목 등으로 제주도 면적의 72배나 되는 삼림이 매년 사라지고 있다.

열대우림을 불태우는 사람이 제3세계의 농민이라고 해서 집을 짓고, 쇠고기, 아이스크림 등을 먹으며 화장품을 사용하는 우리가 열대우림 파괴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zero)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전반적인 삶이 바뀌어야 한다. (사진출처=World Economic Forum)
2050년까지 탄소중립(Net-zero)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전반적인 삶이 바뀌어야 한다. (사진출처=World Economic Forum)

딸아! 그렇다. 생태계에서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우리가 한 행위가 생태계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생태학자 베리 커모너(Barry Commoner)가 말했듯이 공짜 점심 따위는 없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과 손이 없으면 발이 불편하고, 발이 없으면 손이 고통스러운 것과 같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꽃들이 각기 자기 자태를 빛내면서 그 개성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단을 이루듯이 너도 사람을 현혹하는 화려한 꽃보다는 나비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하는 작은 꽃처럼 세상을 연결하는 매개고리가 되었으면 한다. 

아이코! 그 사이에 어머님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가, 강요배 작가의 <흙>이란 작품처럼 흙과 하나가 되어 있구나.

고기협.<br><br><br><br>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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