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 네번째 주자로 나선 고병수 전 정의당 제주도당 위원장(사진=박소희 기자)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 네번째 주자로 나선 고병수 전 정의당 제주도당 위원장(사진=박소희 기자)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잘해줄게’가 아니라 ‘우리의 빨래는 내가 매일 할게’와 처럼 무엇을 어떻게 잘해줄 것인지 약속해야 한다. 구체적인 실천이 없으면 사랑은 오래 유지되기 힘들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 네번째 주자로 나선 고병수 전 정의당 제주도당 위원장은 제주특별자치도가 속도를 내는 ‘제주형 뉴딜’을 전면 비판했다. 온실가스 감축 등 설정 목표에 대한 단계적 실천방안도 없는데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핵심 내용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발표한 ‘제주형 뉴딜’은 카본프리 아일랜드 제주(CFI)의 확장형으로 온실가스 저감 정책이자 신·재생 에너지 전환 구상이다. △그린뉴딜 △디지털 뉴딜 △안전망 강화 3개 분야로 구성된 '제주형 뉴딜'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청정제주를 비전으로 하고 있다. 즉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그린뉴딜' 유럽의 '그린딜'의 제주형인 셈이다. 

국제사회의 흐름인 '그린뉴딜'은 1930년대 경제 대공항을 극복하기 위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 정책의 녹색 버전이다. 루스벨트가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뉴딜의 합의 주체는 노동자였고, 따라서 고용과 복지의 틀을 만드는 것이 초기 뉴딜의 핵심이었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고용사회안전망을 먼저 마련한 것이다. 

고병수 전 위원장은 “루스벨트 뉴딜은 경기부양책이기도 했지만, 핵심은 일자리 대책이었다”며 “제주형 뉴딜에는 산업구조 변화로 직격타를 맞을 노동자에 대한 고용과 복지 대책이 전무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새로움만 있고, 계약 주체와 합의 내용이 빠졌다는 것이다. 

미국의 그린뉴딜 초기 전략은 에너지 전환이었다. 정부 주도로 신·재생에너지를 육성해 산업의 지형을 바꾸면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억제는 물론이고, 화석연료를 기반한 기존 질서 대신 새로운 국제질서를 선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서다. 도널드 트럼프 재임 시절 민주당 소속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 의원은 경제 재편에 초점이 맞춰진 그린뉴딜에 정의로운 전환 부분을 강화시켰다. 불평등과 기후변화를 극복하려면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자기회복력을 갖춘 사회로 가야한다는 판단에서다. 코르테즈는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온실가스 순 배출 제로'라는 국가 목표를 달성시키는 동시에 모두에게 깨끗한 환경과 건강한 먹거리, 질 좋은 노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무를 그린뉴딜에 추가한다. 

산업화 대비 온도상승 1.5℃ 이하가 "인간 생존 한계선"이라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의 간 협의체(IPCC)' 경고에 따라 파리협약에 참여한 195개국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 0으로 만들어야 한다. '기후악당' 한국도 여기에 포함된다. 문제는 오염배출원이 사라지게 되면 관련 노동자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화석연료를 기반한 사업장 노동자들이다. 

이미 세계 각국 노동자들의 일자리, 수입, 생활방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특히 전통적인 에너지 산업과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서의 급격한 고용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기후변화 정책이 석탄산업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통해 2010년까지 1990년 수준으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경우 1500만 개의 일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 지역의 경우 2030년까지 도내 운행 차량의 75%에 해당하는 37만7000대를 전기차로 대체하고, 내연기관 자동차는 등록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전기차 보급 사업 추진으로 기존 내연기관 산업 종사자 5000여 명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제주시 화북공업단지, 화력발전소, LPG 가정용 공급업체 등 관련 산업 종사자들의 피해는 아직 추산도 되지 않은 상태.

고병수 정의당 전 위원장은 "제주형 그린뉴딜’은 에너진 전환과 전기차 보급에 대한 (선언에 가까운) 목표치만 설정했을 뿐 불평등을 해소 할 정의로운 전환은 아직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며 "고용사회안전망이 시급하지만 제주특별자치도의회조차 관심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우려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 19)로 현실로 나타났다. 코로나 19는 현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을 수면위로 올렸다는 점에서 기후변화가 초래 할 위기의 예고편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난해 발생한 제주지역 실업자만 1만 명이지만 퇴직금도 없는 일회성 공공근로 외엔 별다른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 종사자에 국한해서만 그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있는 상태”라며 “공업단지, 발전소 등 광범위한 접근은 아직 시작도 못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고 전 위원장은 특히 교육 부재를 심각하게 바라봤다. 

그는 "공업고등학교 등 특성화고나 대학 내 관련 학과가 새로운 산업 구조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철기 시대가 도랬는데, 여전히 구석기 시대 도구를 쥐어주고 있는 도내 교육 현실을 우려했다. 

고 전 위원장에 따르면 '제주형 뉴딜'은 지속가능한 기반시설과 산업에 대한 투자 대책이어야 하며, 질 좋은 일자리 창출과 경제 번영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경제 체제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노동자에게 보상, 교육, 재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까지 설계돼야 한다. 그 과정은 반드시 공정해야 한다. 

그도 뾰족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이제부터라도 '제주형 뉴딜'의 구체적 내용을 도민들이 주체가 돼 채워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의사가 본업인 고 전 위원장은 '감염병과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시민들(감기꺽시)'을 조직해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틈틈이 나누고 있다. 

한편 다음달 6일 진행되는 '수요정책라이브러리'에서는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이 '노동 존중 제주 사회를 위하여'에 대해 들려준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