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갈이를 하지 않고 감자를 심은 밭. 풀멀칭을 두껍게 해주고 감자 싹이 나기를 기다린다. (사진=김연주 제공)
밭갈이를 하지 않고 감자를 심은 밭. 풀멀칭을 두껍게 해주고 감자 싹이 나기를 기다린다. (사진=김연주 제공)

어제까지는 매우 더운 여름을 방불케 하더니 오늘은 세찬 바람과 함께 기온이 뚝! 마당 한 켠에 키우고 있는 단호박 모종이 걱정스럽다. 자꾸만 옷깃을 여미게 되는 날씨에 맨흙이 드러나게 심어진 씨앗은 얼마나 힘이 들까? 뭐라도 덮어주면 조금 나을 텐데…. 오늘도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밭으로 나선다. 

무경운(논밭을 갈지 않는 것;편집자) 자연재배는 주로 직파(씨앗을 밭에 직접 파종)를 한다. 무경운이라 밭에는 항상 풀이 충분히 자라고 있고, 씨앗을 한 알 한 알 심으면서 베어내거나 뽑아낸 풀들로 그 자리에 고스란히 멀칭(mulching)을 해 준다. 멀칭이란 농작물을 재배할 때 흙이 마르는 것과 비료가 유실되는 것, 병충해, 잡초 따위를 막기 위해서 볏짚, 보리짚, 비닐 등으로 땅의 표면을 덮어주는 일이다. 

요즘은 커다란 트랙터로 밭을 갈고 멀칭을 하게 되면서 비닐 멀칭을 주로 한다. 비닐 멀칭은 기계로 하게 되니 많은 양을 한꺼번에 할 수 있다. 수천평, 수만평이라 해도 하루면 뚝딱 해치울 수 있다. 하지만 작물이 자라고 수확을 마치고 나면 다시 수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구멍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무성하게 자라난 풀들을 정리하고, 작물 잔사를 일일이 정리하고 나서야 비닐을 걷을 수 있으니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닐멀칭을 한 단호박 밭. (사진=김연주 제공)
비닐멀칭을 한 단호박 밭. (사진=김연주 제공)

흙이 덩어리가 되어 붙어 있고, 찢어지는 비닐들을 수거하다 보면 한번 사용하는 비닐에 너무 많은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경운과 비료 농약 사용으로 더 많은 표토가 유실된다는 데 비닐에 딸려서도 또 유실되는 구나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1cm의 표토가 만들어지는데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 우리는 순간에 그 시간을 거꾸로 흐르게 하는 셈이다. 수거된 비닐은 농업 폐자재가 되어 온갖 농약병들과 함께 동네마다 쓰레기통을 넘쳐나게 한다. 

단호박 모종을 심고 비닐을 이중으로 치고 있는 밭. 안에는 철사가 하나씩 박혀있다. (사진=김연주 제공)
단호박 모종을 심고 비닐을 이중으로 치고 있는 밭. 안에는 철사가 하나씩 박혀있다. (사진=김연주 제공)

반면 무경운 자연재배에서는 ‘풀멀칭(잡초로 잡초를 억제하는 방식;편집자)’을 주로 하게 된다. 풀멀칭을 하려면 우선 충분한 양의 풀이 있어야 한다. 그런 연유로 보통의 밭처럼 깨끗하게 맨흙이 드러나 있지 않고 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다른 곳에서 볏짚 등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이로움을 생각하면 그리 힘들지 않다. 

충분히 자란 풀들을 뽑아 밭을 정리하고 준비한 씨앗을 직파한다. 파종한 자리에 풀을 충분히 덮어주면 아무리 심한 가뭄이라 해도 씨앗은 곧 싹을 틔운다. 싹을 틔우고 자라는 동안 풀멀칭은 비료가 되어 작물이 자라는 데 도움을 주고, 온도를 낮춰주는 역할도, 온도를 올려주는 역할도 하여 성장을 여러모로 돕는다. 

풀이 두껍게 흙을 덮고 있으므로 새로운 풀 씨앗이 싹트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내가 재배하는 작물과 풀이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풀멀칭이 어느 정도 흙으로 돌아가고 새로운 풀 씨앗이 자라난다 해도 그때는 이미 작물이 꽤 자라 있으므로 크게 방해받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다.

모종을 심고 풀멀칭을 한 모습. (사진=김연주 제공)
모종을 심고 풀멀칭을 한 모습. (사진=김연주 제공)

모종을 심을 때에도 풀멀칭은 아주 효과 만점이다. 모종을 심고 주변의 풀들로 두툼하게 멀칭해 주면 대부분 튼실하게 잘 자란다. 따로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물이 없는 밭에서도 풀멀칭만으로 충분히 작물을 키울 수 있으니 여러 가지로 이롭다.

한 달 전쯤 단호박 모종을 붓는 이야기를 동네 농민과 나누고 있었다. ‘모종을 키우려면 적어도 비닐하우스여야 한다’, ‘지금은 그나마 기온이 올라가서 그렇다’…. 올해는 단호박 농사를 조금 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었던 터라 의논도 할 겸 어찌할지 궁리 중이었다. 작년에 재배하고 받아 둔 씨앗은 있었으나 어찌 모종을 낼지 결정을 못 하고 있었다. 육묘장에 맡길까? 

어렵지만 깻잎 하우스 한켠을 빌려 달라 부탁해서 모종을 내 볼까? 그도 아니면 더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마당에서 한 번 해봐? 여러 가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복잡했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정 안되면 늘 하던 방식으로 직파를 하리라 마음먹기도 하면서 이야기는 모종 정식(온상에서 기른 모종을 밭에 내어다 심는 일;편집자)으로 이어진다. 

“그러니까 수확을 장마 전에 마무리하기 위해선 지금 모종을 붓고 한 달 후에는 정식을 해야 하는 거지, 비닐을 한 겹 깔고 모종을 거기다 심는 거지. 그리고 터널처럼 위로 한 겹 더 씌워야 하던데?”
“비닐은 무사(왜) 두 개나 씌웁니까?”
“아직 날은 추운데 빨리 키워야 장마 전에 수확하니까 그렇지 않을까?”

비닐멀칭 이야기가 나오자 ‘비닐을 한 겹만 씌우면 안되나, 간격은 어느 만큼 심어야 하나, 그러면 평당 모종은 얼마나 필요한가’ 등을 가늠해 보다가 “나는 비닐 안씌우고 할 거다”라는 말에 이웃은 “비닐 안 덮는다는 건 언니 고집인 거지예?”라는 말이 돌아온다. 

풀멀칭을 한 밭에서 상추 모종이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사진=김연주 제공)
풀멀칭을 한 밭에서 상추 모종이 튼실하게 자라고 있다. (사진=김연주 제공)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동안 나의 농사 방식을 보아오던 사람이 뜬금없이 또 던진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비슷한 방식으로 농사짓는 데 왜 그리 (똥)고집을 부리냐는 말로 들렸다. 씁쓸하다. 하루종일 머릿속에 ‘(똥)고집’이 맴돌았다. 처음에는 일일이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려고도 해 보았지만 이제는 그냥 웃고만 있다. 많은 말들을 쏟아낸다 한들 짧은 시간 동안에 결론 날 일이 아니기에. 

자연재배 농사를 몇 년간 하면서 주로 직파를 해 왔지만 사람인지라 욕심이 스멀스멀 올라와 더 많이, 더 잘해보고 싶어지는 마음에 모종을 만들어 보고 있다. 한 걸음 양보하면 훗날 두 걸음 더 뒤에서 밍기적거리는 나를 발견하게 될지 모르겠다. 모종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고 대견하지만 또 한편 이게 최선인가하는 물음을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오늘의 쌀쌀하고 드센 바람을 잘 이겨내어 당당하게 밭으로 나갈 호박 모종을 생각하며 힘!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3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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