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심은 옥수수밭. (사진=고기협 제공)
딸과 함께 심은 찰옥수수. (사진=고기협 제공)

봄비가 내려 백곡이 기름지게 된다는 곡우가 막 지났다. 단색이었던 자연은 천연색으로 찬란하게 물들어 간다. 새싹을 내고 꽃을 피우려고 온 힘을 집중하는 식물들의 생명력에 감탄하게 된다. 영원히 푸를 것 같았던 보리밭도 누렇게 변하면서 알곡이 영글어간다. 나의 고갱이는 무엇으로 남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딸과 과수원 빈터에 찰옥수수 한 판을 심었다. 한 판이 128공이니 120여개의 잘 익은 옥수수가 눈에 보인다. 먼저 유별나게 옥수수를 좋아하는 둘째 딸에게 스무 개를 배당하고, 어머니에게 열 개, 형제자매에도 스무 개씩, 농사도 못 짓는 무능력한 지인들에게는 열 개씩을 나누어 주는 상상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불현듯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를 후후 불어가며 건네주던 아버님이 떠오른다. 광복절 어린이 사생대회가 열리기 전날, 밥상머리에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필자는 어머니에게 크레파스를 사달라고 졸랐다. 누나가 쓰던 할머니 이빨처럼 군데군데 색깔이 빠진 몽당 크레용으로는 끝없이 뻗어나간 파란 하늘을 색칠할 수도, 강렬한 햇빛에 익어가는 빨간 고추를 그릴 수도, 불타는 해바라기는 더더욱 그릴 수 없다고, 12색이 온전히 들어있는 ‘왕자파스’를 사달라고 떼를 썼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고구마를 팔면 새 크레파스를 사 주마. 검은색과 회색은 그래도 쓸만 하니 미술대회에서는 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한 검은 돌담 그림을 그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떻게 창피하게 시커먼 돌담을 그리느냐”고, “고흐의 해바라기 그림은 본 적도 없냐?”고 따지며 크레파스 안 사주면 학교에 안 간다고 뻗댔다가 “남자새끼가 아침부터 찡찡거린다”고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았다. 그래서 새 크레파스 없이도 엉덩이에는 파란색을, 눈동자에는 붉은 색을 칠하고 등교했었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그날 오후 아버지는 풀 죽은 채 학교에서 돌아온 나를 맞았다. 그리고 옥수수를 건네주며 턱으로 가리키며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담배를 무셨다. 담배 연기 사이로 보였던 아버지 눈동자에는 미안함과 좌절감과 쓸쓸함이 겹쳐 있었다. 필자도 아버지가 삶아 준 옥수수를 혼자만 먹는 첫 선물에 가난에 대한 분노가, 아버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면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먹었던 눈물 간이 배어 짭지롱해진(‘짭짜래해진’의 제주어) 옥수수의 맛이 어땠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그 추억은 필자에게 지금까지도 ‘사람은 본래 따뜻하다’는 믿음을 견지하게 하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은해야,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 식구가 모여앉아 먹었던 고기국수 한 그릇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할머니가 소매로 쑥쑥 닦아 입에 물려 준 토마토가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아빠는  집에서 키워 마련한 음식을 식구와 다투어 먹으면서 자랐다. 

음식을 같이 먹었던 추억은 사람이 미워질 때마다 불쑥 나타나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돌아간다. 아빠는 혈연을 강조하는 가족이란 말보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의미를 지닌 식구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좋은 음식은 요란하고 비싼 외식보다 식구와 같이 먹는 집밥이라고 생각한다.

식구보다 친구가 중요한 대학생 딸에게 필자의 말은 바람 같이 그냥 스쳐가는 말이 될지 모른다. 그러나 딸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믿었던 사람에게 걸려 넘어지다 보면 필자의 말이 생각날 수도 있다.

낭푼밥상 이미지. (사진출처=제주특별자치도)
낭푼밥상 이미지. (사진출처=제주특별자치도)

부모와 자식은 음식을 통해서 진짜 부모와 자식이 될 수 있다. 특히 아빠가 직접 만들어 주는 음식은 효과 만점이다. 텃밭에서 함께 채소를 심어서 가꾸고, 수확해서 요리하고,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는 부모 자식은 어떤 갈등도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7.7kg으로 30년 만에 절반으로 줄었다. 쌀 재고량은 2020년 말 기준 95만 톤이다. 그리고 쌀 재고관리에 1만 톤 당 연간 31억 원이 소요되기에 2020년에는 3000억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었다.

중학생이 되면 문을 걸어 잠근다고 한다. 단절이다. ‘엄마랑은 도무지 말이 안 통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가 엄마와 자식 간의 레퍼토리다. 불통이다. 

식사를 같이 하면 단절과 불통에서 벗어나 눈빛과 몸 컨디션을 확인하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같이 밥 먹는 시간을 의식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루 한 끼는 식구가 같이 먹는 규칙, 그게 도저히 안 되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끼는 함께 먹는 규칙을 세우고 행해야 한다. 

집에서 식구가 함께 식사하는 것은 가족애를 통해 인간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고, 청소년 문제를 줄이는 길이며, 사라지는 농촌을 살리는 길이자 국가 예산을 아끼는 일이다.       

봄 햇살이 살랑거린다. 아버님이 그 햇살 사이로 미소를 보낸다. 딸이 “다른 친구들은 용돈 5만원 올리기 투쟁하는데 난 용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약속 지키지 않았다고 벌금 5만원을 내는 처지”라며 삐죽거리던 표정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오늘은 딸에게 딸이 좋아하는 순댓국을 만들어줘야겠다. 좋은 추억은 대물림된다.

고기협.<br><br><br><br>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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