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의 품격을 높이는 하나의 요소가 발디딤이다. 한복의 치맛자락을 살포시 옆으로 끌어 올리면 하이얀 버선이 드러난다.

버선을 신은 발의 움직임을 통해 만들어지는 곡선미는 한국 전통무용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다. 사뿐사뿐 움직이며 위로 솟은 버선코를 돋보이게 하는 발 매무새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간드러지게 만든다. 두 발의 움직임은 마치 밀당하는 연인같다.

어느 무용에서나 발과 하체의 힘은 중요하다. 무용 동작에서 기둥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무용은 앞으로 발을 디뎌 나아갈 때 무게 중심을 앞발로 옮겨야 하고, 뒤로 움직일 때는 무게 중심이 뒤로 실려야 한다. 이때 상체가 흔들리지 않게 강한 코어의 힘과 엉덩이에서 엄지발가락까지 허벅지 안쪽으로 연결되는 근육의 힘이 필요하다.

발동작에서도 호흡이 중요하다. 발디딤과 함께 호흡을 제대로 해야 상체가 흔들거리지 않게 지탱하면서 안정적인 동작이 나온다. 선생님은 호흡이 들어가지 않으면 예술이 아니라 동네잔치에서 흥에 겨워 덩실덩실 어깨와 팔을 흔드는 모습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앞으로 갈 때는 코어에 힘을 준 상태로 뒤꿈치부터 엄지발가락까지 꾹꾹 누르면서 걸어가되, 새끼발가락은 땅에 닿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신다. 더욱 힘든 것은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은 위로 향하게 하여 걷는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을 머리로는 잘 이해를 하지만, 마음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카랑카랑한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새끼발가락 올~려!"

한국무용 발디딤을 할 때는 다리가 벌어져선 안 된다.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꼭 붙어있어야 한다. 허벅지를 붙이고 단전에 힘을 이용하여 호흡을 끌어 올리면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면 다리를 붙였기 때문에 뒷발도 자연스럽게 따라와야 한다. 바늘이 가면 실이 가는 것처럼. 무용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평소의 발걸음이 아니라서 어렵기만 하다. 어느 정도 무용을 한 나도 정신을 집중해서 하지 않으면 다리가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그걸 놓칠 선생님이 아니시다. 아니나 다를까 호령이 떨어진다.

 "다들 요실금이세요? 왜 질질거리나요? 다리 붙이고 엉덩이에 힘을 주면서 다리 안쪽 근육에도 힘을 주세요!"

선생님의 호령에 수강생들은 웃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곤 다시 자세를 잡는다. 어떤 수강생은 다리가 붙여지지 않는다. 다리 안쪽 근육에 힘이 없나 보다. 선생님은 링을 갖다주면서 다리 사이로 집어넣어서, 떨어지지 않게 안쪽 근육에 힘을 주고 걸어가라고 한다.

무용 기본수업을 받은 지 한두 달쯤 지나서 기존에 췄던 춤을 다시 춰 보았다. 몸놀림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그토록 어렵던 동작들도 부드럽게 연결이 되지 않는가! 그동안 내가 몸놀림이 늘어지고 무거웠던 것은 발동작과 하체 때문이었다. 발디딤 기본 동작을 정확하게 계속 연습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체에 무용 근육이 생기면서 내 춤의 기둥도 튼튼해지는 것을 느낀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이 재미없고, 지루하긴 해도 발디딤이 무용 동작의 기둥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요즘 길가에는 봄꽃들이 한창이다. 봄 햇살을 하루 종일 먹은 탓인지 알록달록 선명한 색깔에 생기 넘치게 활짝 웃고 있다. 오후가 되면 나도 나의 사랑스러운 봄꽃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문득 함민복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오늘 아침 식사는 따뜻한 봄 햇살"

나는 나의 봄꽃들에 봄 햇살을 듬뿍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힘들고 지칠 때 한 권이 책이 봄 햇살처럼 따뜻한 위로와 버팀목으로 느끼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있는지 발동작을 다시 배우면서 나를 되돌아보게끔 만든다.

양정인

뒤늦게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양정인씨는 전문 무용가가 아니라 춤을 즐기는 춤꾼이다. '방구석 노인'이 아니라 '푸릇한 숙인'이 되고 싶은 그에게 춤은 삶의 전환점이 됐다. 춤은 끝없이 익히는 과정이다. 그가 점점 겸손해지는 이유다. 춤에서 배운 이치를 가르치는 아이들과 나누기도 한다. 배움과 가르침이 뫼비우스의띠처럼 연결되는 세상은 이야기가 춤추는 교실같다. 독서지도사이기도 한 양정인의 '춤추는 교실'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제주투데이 독자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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