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위한 노래》
메리 올리버, 민승남 옮김, 미디어창비

스물 몇 살이었더라. 친구들과 간 여행에서 혼자서 아침 일찍 깨어났다. 숙소 근처를 산책이나 할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가 위험에 빠지고 말았다. 산골마을의 오솔길에서 개 한 마리와 마주 선 것이다. 흠칫 놀라 가만히 멈추어 서자 상대 녀석도 네발을 단단히 딛고선 움직이질 않았다. 나는 그때까지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었다. 태연함을 가장하여 그냥 자연스럽게 지나갈 용기는 없었다. 뒤를 돌아 도망갈까?

어릴 때부터 이런 도망을 많이 해봐서 아는데, 명백히 개가 더 빠르다. 그래서 다가오지만 말아 달라고 속으로 간절하게 빌었다. 만약 더 이상 저 개와 가까워지지 않는다는 보장만 되면 이렇게 하루 종일이라도 서 있을 작정이었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이미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다리도 덜덜 떨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나 이것은 명백한 위험이었다. 그때의 나에겐 그랬다.

나는 귀인의 등장으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산나물을 캐던 허리가 굽은 노부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그들을 불렀다. “저기요. 저 좀 구해주세요.” 그들은 듣지 못했다.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여기 좀 봐주세요. 할머니!” 이번에는 개만 그걸 들은 것 같았다. 두어 발 내게로 다가섰다. 최악의 상황, 다급해졌다. “저 좀 구해주세요, 할아버지!” 노부부가 나를 돌아봤다. 구해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그러게. 누가 뭘 어쩌고 있는데 구해달라는 것인가. “제가, 개를 무서워하거든요. 저 개 좀 어떻게 해주세요.” 나는 거의 울먹거렸다. 할아버지가 휙 고개를 돌려 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딱 한 마디를 했다. “저리 가!”

거짓말처럼 개가 사라졌다. 내게서 등을 돌리더니 어딘가로 뽀르르 달려 나가버리는 것이다. 나는 나물 캐던 노부부에게 “감사합니다!”를 크게 외친 다음 뛰기 시작했다. 잠깐 두렵기는 했다. 개가 어디엔가 숨었다가 나를 쫓아오면 어쩌지? 친구들 중에 누군가 물었다. 왜 그렇게 개가 무서워? 내가 답했다. 개는 사람 말을 못하잖아. 모두들 끄덕이는 가운데 다시 튀어나온 반론. 그런데 새벽에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개를 만나는 것보다 더 무서울 것 같아. 쿵. 나는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약간 충격적이기도 했다. 그날 이후로도 개를 무서워하는 이유로 곧잘 ‘말 못하는 짐승’ 핑계를 댔지만, 스스로 좀 비겁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의 나는 무릇 내가 말하는 바를 그가 정확히 이해하는 완전한 소통의 모습이라고 확신을 했던 것 같다.

나는 지금 두 마리의 개를 키운다. 같이 살게 된 나름대로의 개판 스토리가 여럿 있지만, 아무튼 한 마리는 십 년, 다른 한 마리는 이년 반이 되었다. 그 사이에 내가 이 시대에 걸맞은 반려인으로 성숙했는가 하면,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다. 다만 좀 더 구체적으로 깨알같이 비겁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나는 남의 개가 무섭다. 남의 개들이 내게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나는 그들을 일단 경계부터 하고 본다. 나의 개들과 달리 그들은 나의 표정 언어나 몸짓 언어를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이제는 이른 아침 작은 오솔길에서 개와 마주친다고 해서 제발 날 좀 구해달라고 울먹이지는 않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우리 개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게으른 몸을 이끌고 산책을 나가는 일에도 열심이고, 남의 개를 이해해보려고 유튜브에서 온갖 개 영상은 다 찾아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메리 올리버는 ‘작은 개, 밤의 랩소디’에서 이렇게 썼다.

그 개는 내 뺨에서 뺨을 마주 대고

마음을 표현하는 작은 소리들을 내.

내가 깨어 있거나 잠에서 깨어나면

발랑 몸을 뒤집어 네 발을

공중으로 들어올리지.

그 열렬한 검은 눈.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줘.” 개가 말하지.

“또 말해줘.”

이보다 더 달콤한 편곡이 있을까? 자꾸만 자꾸만

개는 묻게 되지.

나는 말하게 되지.

나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하기 전에 해야 할 말이 있다. 너의 언어를 모르는 채로 살아서 미안하다고. 개의 언어도 알지 못하는 인간 주제에, 너는 그저 가만히 존재해기만 했는데, “구해주세요!”라고 말해서 미안하다고. 개를 위한 나의 노래는 온통 사과의 언어들로 흘러넘칠 텐데, 우선 개들이 미안하다고 할 때는 어떻게 하는지 나는 아직 그것도 알지 못하는 처지다.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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