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사업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제주도에서도 제주시 원도심이 가장 큰 규모로 재생사업을 시작하였다. 2017년 2월 8일에는 재생사업의 마중물 사업인 관덕정 광장 조성사업에 대한 주민설명회가 있었다. ‘차 없는 거리 조성계획’이 지역 주민들에게 쟁점이 되면서 열리게 된 것이다.

총사업비 200억이 투입되는 원도심 재생사업 중 ‘차 없는 거리 조성계획’은 2016년 9월부터 2020년 말까지 국비 20억원, 지방비 45억400만원 등 총 65억400만원이 투입되는 규모 있는 사업이었다.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차 없는 거리 조성계획’은 무산되었다. 그 후 계획은 수정되어 진행되었으며 마중물 사업은 올해 말에 종료된다고 한다. 

상생모루 전경. (사진출처=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 홈페이지)
상생모루 전경. (사진출처=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 홈페이지)

그 사업의 하나로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가 칠성통 입구의 제주감귤협동조합 건물에 세워졌다. 1969년에 준공된 제주감귤협동조합 건물을 2018년 6월에 매입하고, 34억3500만원(매입비 19억3500만원, 리모델링비 15억원)을 투입하여 2019년 10월에 완성되었다. 

건물은 지하층 교육, 공연, 주민회의 공간 총 50인 규모, 1층은 주민 쉼터와 전시공간, 2층은 교육공간 및 회의실 총 50인 규모, 3층은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공간, 4층은 주민회의 공간 30인 규모, 아동 돌봄센터 20인 규모, 옥상 쉼터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서 마련된 공간이다.  

건물의 이름은 상생모루다. 상생모루는 둘 이상이 서로 북돋우며 다 같이 잘 살아간다는 ‘상생’과 대장간에서 불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공구인 ‘모루’를 합친 말이라고 한다. 상생모루라는 뜻에 걸맞게 시민들이 제대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쉬운 점은 대관 운영 시간이다. 현재 이용 시간이 평일(월요일~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토·일요일은 대관 신청 불가이다. 시민들이 일과시간 이외의 시간과 주말에 활용할 수 있도록 조정이 되었으면 한다. 문화재뿐만 아니라 공공시설물들의 적극적 활용으로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상생모루가 들어선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단발령 시행 이후, 갓을 쓰던 문화에서 서양식 중절모를 쓰는 문화로 바뀌면서 모자점이 흥행할 때 ‘갑자옥’이라는 모자점이 있었다. 갑자옥은 근처의 제주약방, 중앙이발소와 함께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 회원들이 주로 모여 어울리던 곳이었다. 

갑자옥 사장 이상희는 서울신문 제주지사장을 맡고 있었고, 중앙이발소 주인 김행백은 민전 선전부장, 제주약방의 김두봉은 도립병원 약제과장을 겸하고 있었다. 가게를 운영하던 이상희는 4·3으로 희생되었다고 한다.

건물의 지하에는 호수다방이 있었다. 어린 시절 작은아버지를 따라 호수다방에서 시화전을 보았던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있다. 60~70년대에는 문화공간이 절대 부족하여 간담회, 전시회, 문학의 밤, 영화의 밤, 출판기념회, 동창회, 동호회 등이 다방에서 열렸었다. 그런 걸 보면 다방이 초창기 제주문화예술의 산실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60~70년대의 다방은 호수다방, 청자다방, 산호다방, 심지다방, 회심다방, 대호다방 등 주로 한자어를 상호로 사용하였다. 주 고객층인 중장년층 남성, 문화예술인, 재력가 등 기성세대들이 이용하는 문학 다방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가람, 동인, 가베, 한밝, 포엠 등 한글, 한자, 영문 등 상호도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다방이라는 표현은 점차 사라졌다. 주 고객층도 청년, 대학생, 여성, 직장인 등 젊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누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아리랑백화점 지하에 있었던 포엠은 대학 시절 여름방학 때 여행 온 같은 과 친구들과 아내의 친구들이 미팅했던 추억의 장소이다,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제주특별자치도 연합회 전경. (사진=고봉수 제공)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제주특별자치도 연합회 전경. (사진=고봉수 제공)
건축물대장. (사진=고봉수 제공)
건축물대장. (사진=고봉수 제공)

상생모루 맞은편에 있는 노인회관 건물터는 우체국과 함께 성주청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해방 후에는 도지사 관사가 있었다. 지금도 건축물대장을 확인하면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지만, 현장에 없는 지사관사가 서류상에는 남아있다.

노인회관은 1991년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이 제주 노인복지를 위하여 거금을 쾌척하여 건립되었다. 2010년에는 제주목 관아 전시관으로 사업비 30억원을 투입하여 리모델링 설계 용역을 추진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성주청 터의 발굴을 위해 2011~2018년에 걸쳐 노인회관 이전 협의 및 우체국 매입 협의를 했으나 잘 진행되지 않아 현재까지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노인회관 건물 뒤편에는 예쁜 Sunken Garden(지하 정원)이 있다. 사람의 출입이 없이 방치된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노인회관은 제주 원로 건축가의 작품으로 지붕 선은 제주의 초가를 연상시키고 외벽은 송이석, 지붕은 현무암 판석(제주석) 등 제주 지역의 건축재료를 활용하여 제주의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나는 노인회관 건물이 잘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노인회관 지하정원. (사진=고봉수 제공)
노인회관 지하정원. (사진=고봉수 제공)

올해에 제주목 관아 전시관 건립 설계 용역이 발주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의 문화재관리과 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건축물을 철거하여 그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전시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나는 내심 지하 굴착 시 유물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 유물이 나와서 건립이 불가할 경우에 10년 전에 논의되었던 노인회관 건물의 리모델링을 통한 전시관 활용에 대한 재논의가 되었으면 한다. 
 
노인회관에 들어와 있는 모든 기관이 이전할 수 있는 곳으로 현재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인 ‘소통혁신센터’는 어떨까? ‘소통혁신센터’의 운영비 국고지원이 끝나는 5년 후 지상 2개 층 정도를 활용하면 노인회관 시설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노인회관으로 계속 사용되든 리모델링 후 전시관으로 사용이 되든, ‘성주청’ 복원으로 인한 건축물의 철거만은 막았으면 한다. 

명확하지 않은 복원보다는 확실한 보전이 필요하다. 이제 30년이 된 노인회관 건물이 향후 20년 후 등록문화재로 살아남아 있기를 바란다. 우체국은 제주도 전기통신·우편 역사 전시관! 
노인회관은 제주목 관아 유물 전시관!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고봉수.
고봉수.

제주 성안(원도심)에서 태어나 5대째 사는 토박이. 고교 졸업 후 30년만인 2012년 한짓골에 있는 생가로 돌아와 보니, 과거 제주의 중심지였던 원도심의 침체한 모습을 보면서 도시재생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2018년부터 시작된 ‘관덕정 광장 주변 활성화 사업’의 주민협의체 대표로 활동했다. 2020년에는 제주목 관아를 사적공원(시민공원)으로의 개방을 요구하는 주민청원을 도의회에 제출한 ‘원도심 활성화 시민협의체’의 대표를 맡았다. 한짓골에서 건축 관련 사무소 ‘이엠피 파트너즈’를 운영하고 있으며 제주한라대학교 건축디자인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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