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항에서 본 형제섬과 송악산.(사진=고진숙)
화순항에서 본 형제섬과 송악산. (사진=고진숙)

한라산은 활화산이다. 그렇다고 걱정은 마시라. 1만년 이내에 화산활동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지 진짜로 화산활동이 일어날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근거가 되는 기록인 <고려사> 등 옛 문헌에는 1002년과 1007년 두 번 화산활동이 있었다고 한다.

-1002년 목종 5년, 6월에 산 네 군데 구멍이 열려 붉은 물이 솟아나오더니 5일이 지나서야 그쳤는데, 그 물은 모두 기왓장 같은 돌이 되었다. 

-1007년 목종 10년, 상서로운 산이 바다 가운데서 솟아났는데, 탐라사람들이 말하기를 산이 처음 나올 때 구름과 안개로 깜깜해지고 천둥이 치는 것 같은 진동이 있었고, 7일 밤낮으로 계속되었다. 태학박사 전공지를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다.

이 두 개의 화산기록 중 사람들이 관심을 끈 것은 바다 가운데 솟아난 그 상서로운 산이 어디일까였다. 여러 섬들이 후보에 올랐지만 조선시대 기록을 바탕으로 비양도라고 여겨져왔다. 비양도는 서산 즉 상서로운 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천년의 섬으로 굳히기에 들어갔다. 

지질학자들의 연구결과는 전혀 달랐다. 비양도의 나이는 약 4500살 이상이었고, 도저히 천년의 섬이 될 수 없었다. 다른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연대측정 방식으로 허탕을 친 지질학자들은 다른 것을 눈여겨봤다. 화산폭발에 대한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한 묘사다. 저것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나올 수 없는 것이니 거짓은 절대 아닐 것이다. 폭발양상을 통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오른 것은 송악산과 그 앞 형제섬이었다. 이들의 나이는 3800살 쯤이다.

어째서 화산폭발이 일어난지 2800년이나 지나 마치 그날 일어난 것처럼 <고려사>에 기록된 것일까? 지질학자들은 조심스럽게 그것은 탐라국이라는 당시 제주에 있었던 작은 왕국의 시공간에 대한 관념이 고려와 달랐기 때문이라는 가설을 제시한다. 그럴 듯한 얘기다. 고대인들은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한 시간과 공간의 표기법이 우리와 달랐다. 그것이 신화나 설화의 문법이다. 전설은 거짓이지만 신화나 설화는 사실이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래된 화산폭발들은 제주를 오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설문대할망 같은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반면 시간적으로 좀 더 가까운 마지막 화산폭발은 목격자가 많았고, 신화나 설화가 아니라 생생한 목격담으로 이어져왔을 것이다. 

탐라국은 고려왕국과 조공관계를 갖고 있으나 독립된 왕국이었다. 탐라국 사신들은 물넘고 산넘어 개경에 와서 고려 최대의 축제인 팔관회에 참석했다. 당시 이웃 강대국인 송, 일본의 사신들과 동등한 지위로 대접받았다. 탐라국 사신은 틈만 나면 ‘라떼는 말이지...’하면서 탐라국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고려인들에겐 진기한 화산폭발 얘기로 좌중을 휘어잡곤 했을 것이다. 

그런데, 평소라면 그냥 이웃나라 뻥쟁이 이야기로 흘려들었을 이 이야기가 귀에 꽂히기 시작했다. 그것이 목종 즉위 후 숨가쁘게 돌아가던 고려왕실의 사정 때문이었다.

29명의 아내에게서 25명의 아들을 낳은 태조 왕건은 자신의 직계후손이 단 한명만 남게 되는 상황을 짐작이나 했을까? 왕건이 죽은 지 불과 40여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목종은 자식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여자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이제 왕건의 자손은 목종의 이복동생인 왕순만이 남았다.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벌인 근친혼이 낳은 무서운 결과였다.

섭정 중이던 목종의 어머니 천추태후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김치양이란 신하와 정을 통해 낳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 했다. 천추태후에겐 왕순만이 눈엣가시였다. 왕건의 손녀인 천추태후의 자매는 역시 왕건의 손자인 경종과 결혼을 했고 각각 목종과 왕순을 낳았으니 권력다툼에는 피도 눈물도 없었다. 

왕순은 매일 목숨의 위협을 느꼈고, 마침내 왕건의 후손이 모두 사라질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탐라국 화산이야기는 국면전환의 카드로 선택되었다. 

고려가 과거제도를 실시한지 50년, 새롭게 부상한 신흥 세력들은 왕순에게 고려의 미래를 걸었다. 과거출신 태학박사 전공지는 팔관회에서 탐라국 사신들에게 들은 화산이야기를 왕실을 구할 카드로 제안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신인 땅이 노한 것은 태후 때문이다!’

이후 역사는 숨가쁘게 전개되어서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목종이 폐위되고 천추태후도 유배길에 올랐으며 왕순은 왕위에 올랐다. 아슬아슬하게 살아남아 왕이 된 그가 현종이다. 현종은 위기에 강한 임금답게 세 번의 거란침입을 견뎌냈다. 14명의 후비를 거느리며 다섯 명의 아들을 두어 왕실의 안녕을 이끌었다. 이후 고려의 국왕들은 모두 현종의 자손이다. 

전공지가 진짜로 제주에 오자 탐라국 사신들이 더 소스라치게 놀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곧 전공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어쩌면 탐라국 사람들이 비양도가 그 섬이라고 말하고 끝내버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전공지는 아주 만족했고, 과거출신 세력들과 현종은 역사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리고 제주도는 먼훗날 전세계가 주목하는 화산섬이 될 수 있었으니 윈윈게임인 셈이다.

고진숙

고진숙 작가

고진숙 작가는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 밖에서 바람처럼 살았다. 지금은 일 년의 절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반서(울)반제(주)인이다. 역사동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최근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까지 다양한 역사콘텐츠들을 쓴 고 작가. 매월 첫째주 수요일 독자들과 만나는 [제주예썰]은 고진숙 역사작가의 눈으로 제주가치를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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