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살던 마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아이는 부모님이 슈퍼를 운영하시는 일명 슈퍼집 아이였다. 부모님을 아무리 졸라도 소용없어서 몰래 겨우 먹을 수 있었던 달달구리한 불량식품은 물론, 무더운 여름에 침까지 흘리며 지켜봐야 하는 빨간 쮸쮸바. 누구나 한번쯤은 이 다음에 커서 슈퍼집 사장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이 얘기를 하느냐고? 어쩌다 이장이 된 내가, 이제 어쩌다 사장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그 사연을 풀어보고자 한다.

우리 선흘2리에는 마을의 자랑인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이 있다. 그리고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있다. 그 유산센터 내에 마을만 운영할 수 있는 작은 매점이 있는데, 10여 년 동안 특정 개인이 운영해왔다. 유산센터 내 매점은 그곳이 유일하다. 게다가 거문오름에는 물만 들고 올라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보기에 따라서 매점 독점운영에 대한 특혜시비를 걸 만했다. 유산센터가 생긴 뒤 마을주민들의 좋은 술안주거리였다.

세계자연유산센터(사진=이상영 제공)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사진=이상영 제공)

이에 대한 논란이 일자 제주특별자치도 감사원은 마을에 임대한 공유재산을 특정개인에게 재임대해  운영해온 것은 문제가 있다며 유산센터와 마을회에 시정을 요구했다. 마을은 임대공간을 포기할 것인지, 매장을 직접 운영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6개월 전 이장이 된 뒤 행정기관에서 마을로 심심치 않게 날아오는 공문과 '물이 안 나온다', '쓰레기를 누가 몰래 버렸다'는 등의 주민 민원을 처리해 내면서 이제 이장 업무에 좀 적응하나 싶었다. 그런데 이제 매점운영 사업을 마을이 맡아서, 즉 이장의 책임으로 운영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결정까지 내리게 된 것이다.

'마을에서 직접 운영하면 되지!' 하고 생각하긴 쉽지만 사실 가게를 창업하는 일은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에겐 전 생애를 거는 일이 아니던가? 어떻게 됐냐고?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울며 겨자먹기로 사업권을 회수해 지난 한 달 마을가게를 운영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자영업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인지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쉽다(?)라고 알게 되는 뼈 아픈 교훈을 얻었다.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챙겨야 할 일들이 상당히 많았다. 비영리법인인 마을회가 영리사업을 위해 갖춰야 할 서류들은 참 복잡했다. 세무사를 만나 상담하면서 최저임금을 주고 매점을 운영하는 매니저를 뽑으려면 하루에 65만원의 매출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조언도(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입장에서는 거의 '협박'처럼 느껴지는) 들었다. 또 사업을 위한 통장과 법인카드를 새로 만드느라 뻔질나게 농협을 드나들어 농협 직원과 안면까지 트게 되었다.

함께하는 주민들과 마을이 운영하는 가게는 어떠해야 할지에 대한 방향성을 논의했다. 우리가 팔고 싶은 상품을 구하기 위해 업체들과 연락했다. 납품단가를 정하는 일은 참 어려웠다. 마침 선흘2리로 이사 온 디자이너 그린씨는 집 계약서에 ‘마을 디자이너’로 손을 보태야하는 추가 조항이 있었느냐고 농담처럼 웃었다. 마을공방사장님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저건 버릴 수 밖에 없겠다’ 싶던 가게 매대를 튼튼하게 바꿔주셨다. 그냥 그런가게를 운영해서 돈을 남길것인가. 아니지, 마을이 운영하는 가게이니 사람이 남고 가치가 남아야하는 게 아닐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가 시작되었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탐방안내소 내에 위치한 마을가게(사진=이상영 제공)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탐방안내소 내에 위치한 마을가게(사진=이상영 제공)

세계자연유산을 지키기 위해 하루 탐방객 수를 제한하고 있는 거문오름에서, 더구나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로 자영업이 무너지고 있는 판국에 가게를 오픈하다니. 그것도 돈이 되기 힘든 친환경용품, 제주와 연결된 자연을 배려하고 지역을 생각하는 제품이라니. 계획한 오픈 예정일인 4월 29일이 다가올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오픈까지 모든 과정이 이렇게 힘들었다. 이렇게 힘이 드니 그동안 재정자립이 힘든 제주 마을들은 쉽게 행정이 생색내는 지원금에 기대거나, 개발업자들이 내미는 일명 ‘마을발전기금’에 쉽게 넘어가는 게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꿔서 생각해보면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의 자연을 지키려면 가치있는 의사결정에 무게를 실을 수 있도록 마을의 생태적 자립이 중요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대규모 관광 사업으로 제주의 자연을 이용하려 하는 자본은 상대적으로 재정이 취약한 마을에 수억에서 수십 억원에 이르는 마을발전기금을 제시하며 유혹한다.

그 해결책으로 제주도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이장과 사무장의 월급과 마을회관의 유지보수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마을 운영자금은 제주도가 감당하는게 맞겠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데 얼토당토 않은 대규모 개발사업(이명박의 한반도 대운하사업, 전두환의 평화의 댐 등등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은 주로 나라에서 앞장서지 않았던가. 행정에도 자본에도 기대지 않은 마을이 이래서 참 중요하다.

이장이 되고 보니 마을재산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선흘2리 주민들이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과 7억원의 발전기금을 거부하기로 결정한 건 참으로 위대하고 기적과 같은 일이다. 동시에 마을 스스로 자립해야만 하는 숙제가 남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 개인 생계 문제와 이장 업무에 무리가 되더라도 마을이 직접 매점 운영을 맡기로 한 가장 큰 이유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제주동물테마파크반대대책위를 꾸려서 대기업과 싸울 때 아내가 늘 했던 말이 있다. “지더라도 잘 져야한다.” 이제 바꾸어 말한다. “망하더라도 잘 망해야 한다.” 망하기 참 쉬운 일에 선뜻 마을기금 천만원을 집행한 선흘2리 개발위원들과 주민들께 감사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 좀 울고 싶다.

제주도민 여러분! 제주를 찾은 여행자 여러분! 4월 29일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탐방안내소 내에 선흘2리 마을가게 일명 ‘오름보러가게’를 오픈했습니다. 한라산 중산간 작은 마을이 자립할 수 있도록, 제주 곶자왈을 지킬 수 있도록 많이 방문해주세요!”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이상영 선흘2리장(사진=김재훈 기자)

 

선흘2리 마을회장 이상영 씨는 '20년간 학교에서 지리와 사회를 가르치다 제주로 이주한 지 3년째인 초보 제주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2년 전에 참여한 마을총회에서 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이 된 후, 최근 이장으로 선출·임명되었다. 1973년생인 이상영 이장의 고군분투 마을공동체회복기를 매달 1회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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