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소희 기자)
(사진=박소희 기자)

"제주 노동자 2명 중 1명은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 정책 라이브러리' 다섯 번째 주자로 나선 임기환 민주노총 제주본부장은 6일 제주의 노동 현실을 조명하며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노동체제가 제주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국에서 가장 나쁜 제주 노동현실 = 대한민국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근로조건 기준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지만 그가 들려준 제주 노동 환경은 참담했다. 

우선 전국 시도중에 임금이 가장 적다. 월 272만6806원으로 전국평균 79% 수준. 이도 5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라 이보다 적게 받는 노동자는 더 많다.

비정규직 비율도 전국 최고 수준이다. 임금노동자 중 44%가 비정규직이다. 거의 2명 중 1명 꼴로 비정규직이라는 소리다. 

맞벌이 가구도 제주가 61.7%(전국 평균 44.6%)로 전국 최고다. 낮은 임금과, 가족노동이 불가피한 영세사업장이 많은 탓이다. 

무엇보다 근로기준법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도내 5인 미만 사업장이 82%다. 영세사업장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임금은 낮고, 비정규직은 많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임 본부장은 "저임금, 고용불안, 노동기본권의 차별과 배제 등 제주의 노동환경은 전국 시도 중에 가장 나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노동체제를 위해 뭘 해야 할까.

◆ 근로기준법 11조 폐지= 제주 임금노동자는 추산 26~27만으로, 이중 9만 명(34%)이 근로기준법이 적용 안되는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한다. 3명 중 1명이 부당해고 당해도 법적으로 다투기 힘들며, 하루 12시간 일해도 가산수당(근로기준법에 따라 시간외근로의 경우 통상임금에 가산해 지급하는 임금) 적용이 안 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올해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도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이 제외됐다. 

임 본부장은 "사장이 '내일부터 나오지 마!' 라는 말 한마디로 부당 해고 해도 이들은 법적으로 다툴 수 없다. 하루 8시간 노동제도? 딴 세상 이야기다. 이들은 코로나19로 휴업을 해도 휴업수당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는 이들 뿐만이 아니다. 

주당 15시간 미만의 단시간 노동자, 농·수·축산업 노동자, 경비업 등 감시·단속업무 노동자들 등 이들까지 포함하면 제주지역 노동자 2명 중 1명은 노동기본권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근로기준법 11조는 상시 5명 이상 노동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만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임기환 본부장은 "4와 5 숫자 하나 차이로 인간의 존엄과 인격이 결정된다"며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위해 우선 해당 조항부터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 지방정부로서의 기본 역할 강화 = 근로기준법, 노조법, 중대재해처벌법 등 노동법 개정은 국회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자본 친화적 정권 하에서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정치구도가 변해야 하지만 그에 앞서 지방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갈길이 멀다. 그는 "모범을 보여야 하는 행정에서 최근 퇴직금 지급을 피하기 위해 기간제근로자 쪼개기 계약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최악의 노동환경을 부추긴 제주도정에 개탄했다. 

따라서 민주노총 제주본부는 이달 중으로 △노동정책과 신설, △민주 노·정관계 정립을 의한 노정교섭 정례화, △생할임금 민간부분 확대, △공공부문 완전한 정규직화, △출자·출연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노동자작업복공동세탁소 설치, △노동권익센터 설치, △서귀포지역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설치 등을 제주도에 요구 할 계획이다. 

◆ 관건은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그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쟁취를 위해 5인 미만 사업장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했다. 이와 더불어 산업·업종별 교섭을 통해 초기업 산별협약 적용 확대 필요성도 이야기했다. 

그러자 박찬식 제주대안연구공동체 원장은 "고용 구조가 파편화 되고 있어 산별협약 확대가 과거만큼 큰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제주지역 영세 사업자 및 비정규직들의 필요를 먼저 파악한 뒤 그들의 공동 요구안을 만들고, 그 요구안을 토대로 노동자 조직을 묶어내는 방안이 작금에 더 현실적이지 않냐"고 물었다. 

임 본부장은 노동 착취 구조를 노동 존중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노동 문제를 지역사회 의제로 확장해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내부 자원의 한계가 있다"는 점을 토로했다.

따라서 탈자본주의적 경로를 상상할 수 있는 "노동자 진보 정치 확대가 중요하다"며 "결국 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문제"라고 했다. 

그는 "지난 1년 팬데믹을 겪으며 사람보다 돈이 우선인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가 우리의 삶과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그래서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노동자 진보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주의 노동문제가 지역의제로 확장하기 위해서는 제주가치나 제주대안연구공동체처럼 시민사회의 정치적 역할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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