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배달을 시작하기 전 오토바이에 오른 정재호(오른쪽)와 동료. (사진=박소희 기자)
저녁 배달을 시작하기 전 오토바이에 오른 정재호(오른쪽)와 동료. (사진=박소희 기자)

오토바이는 차와 차 사이 비좁은 틈으로 지나갔다. 조여지지 않을 것을 알면서 몸을 바짝 조였다. 일명 ‘칼치기’로 아슬아슬하게 차 사이를 빠져나간 오토바이는 신호대기선을 훌쩍 지나 멈췄다. 잠시 후 다른 배달오토바이가 옆에 섰다. 약속이라도 한 듯 오토바이들은 제 갈길로 흩어졌다. 일사불란. 신호위반에도 나름의 요령이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다른 오토바이 한 대가 인도로 올라서더니 앞질러 갔다.

'ㄹ'프랜차이즈에 도착한 정재호(30)씨는 햄버거 세트를 받아들며 “저는 살살 운전하는 편이다. 아까 사무실에서 본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린 친구 오토바이 탔으면 진짜 득음하셨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어찌나 소리를 질렀던지 목이 칼칼했다. 배달통에 음식을 넣고 있는 정 씨에게 “1시간에 몇 건 배달해야 본전치기를 하냐"고 물었다. 

배달대행노동자는 월급제가 아니라 건당 배달료를 정산 받는다. 대략 1.8㎞당 3000원으로 100m당 100원씩 증가한다.

라이더가 최저임금(8720원)을 넘기려면 시간당 4건 배달을 해야 한다. 그럼 1만2000원의 수익이 발생한다. 수익의 평균 10%는  대행업체에 수수료로 지불해야 한다. 해서 300원을 제외하면 시간당 10800원. 물론 오토바이 구매나 감가상각비, 유류비 등 정 씨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빼면 더 적어진다. 정 씨는 오토바이 유지비로 한 달 평균 75만원을 지출한다. 

(사진=박소희 기자)
(사진=박소희 기자)

그럼 배달대행노동자가 도내 평균임금(약 272만 원)을 벌려면 얼마나 달려야 할까.

시간당 4건 배달 기준 한 달에 약 251시간. 하루도 쉬지 않고 8시간 넘게 달리면 전국 꼴찌를 기록한 제주도 평균 임금(전국 평균 344만 원) 정도는 벌 수 있다. 

그는 “왜 빨리 달리느냐 힐난하기 전에 왜 빨리 달릴 수밖에 없냐고 먼저 물어봐 주면 좋겠다”고 했다. 15분. 도내 평균 임금을 벌기 위해 1건 배달을 소화해야 하는 최소 시간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이후 상황은 더 나빠졌다. 전체적인 배달 주문량은 늘었지만, 과잉 경쟁이 부른 ‘단가 후려치기’에 배달노동자 처우는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작년부터 도내 업체들은 기본거리를 2㎞ 넘게 늘렸다. (시청을 중심으로) 아라동, 삼화지구 등 시외요금을 받을 수 있는 구간까지 무력화시키는 추세기도 하다. 최근 제주도에 입점한 쿠팡이츠가 라이더들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을까 잠시 기대도 했었지만, 5월 현재 아무련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관련기사: 쿠팡이츠 제주상륙, 라이더들한테 '약'일까 '독'일까)

정 씨에게는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퇴직금이나 유급휴일도 없다. 하루 달린 만큼이 소득의 전부이다 보니, 이제는 전보다 빨리 달려야 전만큼 벌 수 있게 된 상황. 

이에 라이더들은 "단가 후려치기는 제살 깎아먹기"라며 배달료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들의 요구안을 결집할 조직이 아직 제주에는 없다. 정 씨는 라이더들의 권익을 보장하는 '라이더 유니온'처럼 라이더들의 노동조합을 제주에서도 만들고 싶다고 했다. 학생들 줄 세우는게 싫어 입시를 거부하고 대학 평준화 운동에 몸을 담궜던 반골분자답다. 

음식 배달을 마치고 서둘러 나오는 정재호 씨 .(사진=박소희 기자)
음식 배달을 마치고 서둘러 나오는 정재호 씨.(사진=박소희 기자)

2015년 1월 제주에 입도한 정 씨는 일용직을 전전하다 1년 반 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큰 사고도 한 번 있었다. 그는 작년 8월 배달하던 중, 구세무서 사거리에서 택시와 충돌했다. 좌회전 신호를 받고 출발했는데, 깨어보니 병원이었다. 그는 사고 당시 기억이 전혀 없다고 했다.

같은 동선이면 음식을 몇 개 묶어 배달하는 것이 이득인데, 그러다 보면 마음이 급해진다. 그는 사고 이후 욕심을 덜고 웬만하면 묶음 배달을 하지 않는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일하다가 죽을 순 없어서다. 다시 오토바이 타는 일이 무섭지 않았냐고 묻자 웃기만 했다. 라이더가 생업인 그에게 하나마나한 질문을 한 것이다. 우리는 주문받은 김밥을 싣고 전농로로 향했다. 

전농로는 퇴근러시와 맞물려 정체가 심했다. 시간 맞춰 가려면 ‘칼치기’를 해야 했지만, 도로가 좁아 그도 여의치 않았다. “인도로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절로 재촉이 나왔다. 전농로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라이더들이 꺼리는 배달 구간 중 하나다. 

배달시작 1시간만에 구제주 한 바퀴를 돈 것 같았다. 같은 음식점을 다시 들리기도 했고, 지나왔던 길을 여러번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면 구제주 구역 교통신호에 빠삭해 질 터였다. 

서사라사거리에서 구세무서 방향으로 달리는 데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얇은 운동화 사이로 차가운 저녁 바람이 들어왔다. 추웠다. 엉덩이도 아프고, 어깨도 결렸다. 이쯤 동행했으면 충분하다 싶었지만 7시가 넘자 콜이 밀려들었다. 달리는 동안 정 씨가 어떤 말들을 건넸지만 바람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시청 인근 한 족발집에 도착했을 땐 사위가 어두웠다.

족발은 주문양이 많아 배달통이 꽉 찼다. 출발 전 사무실에서 봤던 다른 노동자가 배달통을 2개나 단 이유가 있었다. 정 씨는 "주문한 음식이 많은 경우 묶음배달을 할 수 없으니 라이더들 입장에서는 손해"라며 "한 꺼번에 많은 양을 싣기 위해 배달통을 두 개 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비용과 책임을 줄이기 위해 임시노동자로 많이 대체해 왔다. 1971년 미국 임시인력 공급업체인 캘리서비스 광고를 보면 긱 노동자(Gig Worker)의 특성을 알 수 있다. 광고 내용을 살펴보면 현재 플랫폼 노동자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직종으로는 퀵서비스에 속하는 정 씨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며 플랫폼 노동자라 불리기도 한다. 그는 “그렇지만 우리는 노동자라기보다 프리랜서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착잡해 했다. 

플랫폼 자본은 필요에 따라 사람을 채용한다. 비정규 프리랜서 근로형태가 확산하는 경제 현상을 긱 이코노미(Gig Economy)라고 하는데, 여기서 긱(Gig)이란 단어는 ‘일시적인 일’을 뜻한다. 배달대행 기사 등 플랫폼 노동은 긱 이코노미의 대표적인 노동형태(Gig worker)로 ‘독립 계약자(사업자)’ ‘프리랜서’라는 그럴싸한 명칭을 붙인다. 하지만 실상은 사용자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일반 노동자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 씨는 고용된 노동자라면 응당 누려야 할 권익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비정규직이라도 일정한 기간이 명시된 고용 관계에 있다면 최소 4대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법적 지위는 자영업자. 따라서 차량이나 그에 따른 관리·유지비, 4대 보험 등은 모두 라이더들 몫이다.

정 씨는 "그나마 보장된 산재보험료의 경우도 회사가 절반 부담해야 하지만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산재보험도) 회사가 전액 부담하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너무 비싼 유상운송책임보험료도 라이더들의 노동을 위협하는 요소였다. 유상보험 역시 의무가입이지만,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싸서 무보험으로 달리는 라이더가 허다하다. 정 씨도 200만 원 넘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일단 80여만 원을 내고 3개월만 가입한 상태다. 

그는 “동료는 보험료 견적을 받았는데, 1000만 원 가까이 나왔다.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사고도 두 어 번 난 탓도 있지만, 버는 돈보다 보험료가 더 나가니 형편상 가입이 어렵다. 그런데 최근 보험회사의 고소로 경찰이 도내 실태조사에 나섰다”고 한숨을 쉬었다. 

(사진=박소희 기자)
정재호씨 배달통에는 ‘눈, 비 많이오는 날에는 날씨수당 받고 일하자’라고 적혀 있다. (사진=박소희 기자)

정 씨는 고깃집 앞에서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장거리 하나만 더 뛰고 사무실로 복귀하자고 했다. 약 7000원짜리 화북행이었다. 

우리는 음식이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라이더들이 잠깐 숨 돌리는 시간. 가게안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정 씨는 밖에 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운터 옆에 마련돼 있던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정 씨가 밖에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저 남이 모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있었을 뿐인데, 왜이리 힘든걸까. 헬멧을 쓴 채 가게 안에 있는 기분이 어쩐지 묘했다. 

밖으로 나가자 그는 “배달원이 가게 안에 서 있는 걸 업주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게 안에서 느낀 묘한 기분은 위화감이였다. 

목이 말랐다. 기다리는 동안 물이라도 드시겠냐는 배려가 고팠지만 이날 하루는 정씨가 되기로 했으니까 갈증을 삼켰다. 정 씨는 “오늘 비가 왔어야 하는데 아쉽다”는 큰일 날 농담을 했다. 비오는 날이었음 기사는 훨씬 더 좋았겠지만, 노동자를 위해서는 비가 내리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그는 "기상수당은 전국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지만 도내 배달대행사들은 도입을 안하고 있다"고 했다. 세워둔 그의 배달통에는 ‘눈, 비 많이오는 날에는 날씨수당 받고 일하자’라고 적혀 있었다. 

준비된 음식을 싣고 뻥 뚫린 도로를 달렸다. '칼치기'도, '인도행'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사업자등록증 없는 사업자였다. 퇴직금도 못 받고, 야간근로수당도 없는 정 씨에게 허용된 사회안전망은 반토막짜리 산재보험뿐. 밤하늘이 캄캄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목에 접어들자 불 켜진 집 한 채가 보였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자 중년 남자가 개와 함께 음식을 받으러 나왔다. 사람이 고팠는지 개는 꼬리를 사정없이 흔들며 다가왔다. 조건 없는 환대였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정 씨는 음료수라도 먹겠냐고 물었다. 사용자도 노동자도 아닌 모호한 노동을 두 시간 남짓 한 그는 수조원 규모를 자랑하는 플랫폼 시장에서 2만 3000원 정도를 벌었다. 

플랫폼 자본은 '특수고용' 형태의 노동자를 양산하며 사용자로서의 책임은 지우는 방식으로 몸집을 키웠다. 정 씨는 국가가 허용한 제도 아래서 누군가에게 고용된 상태다. 그러나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를 수 없는 '기형적 형태'로 고용돼 노동권 테두리 밖에서 사업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 정 씨로부터 문자가 왔다. '몸 잘 풀어주세요. 긴장 많이 하셔서 다음날 근육통에 시달릴거예요'

빨리 달려야 제 삶을 건사하는 다정한 정재호씨는 아직 노동권 바깥에 서 있다. 하지만 언젠가 자신도 '사회의 환대'를 받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틈만 나면 외친다.

"우리를 노동자로 인정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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