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플랫폼으로 음악을 즐기는 시대다. 온갖 장르의 음악이 넘실댄다.

첨단의 음악장비는 예전 음악에 비해 좀 더 다채롭고 세밀한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음악가들 역시 새로운 장비들을 이용해 기존에 없던 파격적인 음악을 만들어 낸다.

물론 여전히 구닥다리 로우 파이(LO-Fl)를 표방하는 음악들이 있고 오래된 아날로그 장비를 사용하는 뚝심있는 음악가들이 있다.

많은 음악학자들은 대중음악의 뿌리를 블루스라고 말한다.

블루스는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계 흑인의 고난한 노동속에서 터져나오는 부르짖음(Howl)과 복음성가에서 파생된 이 음악은 그들의 Soul이 온전히 담겨져 있다. 12마디를 기본 악절로 때론 4마디 혹은 8마디의 짧은 구성으로 이루진다. 그래서 누구라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밭매는 소리’처럼 Call and Response라 불리는 ‘선창과 후창‘의 전형적인 노동요의 구성도 지니고 있다.

블루스 음악엔 블루노트(Blue note)라 불리우는 독특한 음이 가미되는데 이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지닌-장조와 단조의 묘한 경계에 위치한- 원초적인 선율에 삶의 희로애락을 녹여낸다.

블루스는 거리에서 깡통을 앞에 놓고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노래했던 흙냄새 가득한 델타 블루스를 지나 일렉기타가 개발된 40년대에는 밴드 음악으로 발전한다. 머디 워터스로 대표되는 좀 거칠고 풍부한 악기들이 어우러지는 다채로운 사운드로 변화한다. 이후 비비 킹을 위시한 블루스 음악은 세련되고 도회적인 색채까지 띄게 된다.

이 블루스 음악은 지미 핸드릭스를 비롯해 바다 건너 영국의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레드제플린, 크림등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들의 초기 음반은 블루스의 리프와 코드진행을 차용해 오버 드라이브와 갖가지 이펙터들을 사용해 소리를 확장시킨 또 다른 방식의 블루스 음악이었다.

우리나라의 블루스 선율은 1930년대 발표된 ‘외로운 가로등’ ‘다방의 푸른 꿈’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 후에도 ‘대전 블루스’, ‘애수의 블루스’처럼 애조띤 트로트 음악을 블루스라 부르기도 했지만 정통 블루스와는 태생부터 달랐다.

60년대 애드포와 히식스 등의 밴드음악 속에는 당시 유행하던 영미 기타리스트들의 블루스사운드가 묻어있기도 했다. 그러다 1980년대 신촌 블루스가 결성되고 1집 음반 <신촌 Blues>가 나왔다. 블루스 음악이 본격적으로 연주되기 시작했다.

한영애와 정서용, 김현식의 걸쭉하고 애절한 보컬과 이정선과 엄인호의 진득한 기타 선율은 당시의 어떤 음악보다도 블루스 느낌을 흠씬 풍겼다. ‘골목길’, ‘아쉬움’, ‘건널 수 없는 강’ 등이 널리 알려져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한창 기타를 연습하며 미국 본토의 음악만을 탐닉하던 시절이었다. 심야 라디오에서 처음 듣는 노래 한 곡이 흘러 나왔다.

기타의 저음부가 두터운 소리로 뚱땅거리고 묘한 느낌의 고음현이 리듬을 타며 연주되고 있었다. 당시에는 너무나 생소했던 랙타임(Rag-time) 방식의 연주에 얼른 녹음 버튼을 눌렀다. 당연히 미국의 본토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자연스럽게 우리말이 흘러나왔다.

‘내 얘기 좀 들어봐요 사람들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 노래는 나의 얘기 우리들 얘기

끝도 없이 사랑하고 헤어지는 그런 얘기들은 너무 많아

내가 하는 이 노랜 김치RAG'

너무나 환상적인 그 곡이 끝나자 멍하니 몇 분을 보내고는 집을 나섰다. 레코드방을 돌아다니며 그 앨범을 구했지만 어디에서도 이 곡과 뮤지션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몇 년 후에야 음악다방에서 그 노래를 다시 듣게 되었다. 그의 음반은 한국 블루스 음악의 숨겨진 걸작이었다. 윤명운의 노래였다. 한영애의 ‘누구없소‘의 작곡자이기도 한 윤명운은 1983년 1집 음반을 발표했다. 하지만 판매 금지를 당하고 만다.

이후 야심차게 블루스 음악을 담아낸 2집 <명운이의 BLUES>을 냈지만 역시 국적불명이라는 오명을 쓰며 방송금지를 당했다. 윤명운의 음악활동은 그렇게 날개를 꺽여버렸다. 이 음반엔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여러 악기들이 첨가되는 다양한 형식의 블루스 음악이 담겨 있다.

보편적인 삶의 정서를 담은 ’할머니의 블루스‘, ’어떤 하루‘, ’명운이의 Blues' 등의 가사에는 그가 구사하는 토속적인 블루스 선율이 기가 막히게 스며들어 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땐

할머니 옛날 얘기를 들으며 컸지

무릎 베고 기다리면 졸리 우신 할머니는

두 눈을 비비시며 하품을 하시네

너무 많이 들어서 다 아는 얘기지만

한 번 더 듣고 싶네“ <할머니 블루스>

 

사랑을 잃은 남녀들과

자유 위한 그 함성들

내 머리는 조금씩 자라

바람에 자유로이 흩날리네 <명운이의 Blues>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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