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과 화해하기》루비 탄도 지음, 김민수 옮김, 민음사
《식탁과 화해하기》
루비 탄도 지음, 김민수 옮김, 민음사

우리집 밥상에는 보통 하나는 있고, 하나는 없다. 이런 식이다. 국을 끓인 날은 굳이 반찬까지 애써 만들지는 않는다. 반찬이 있다면 굳이 국물까지 끓이지 않는다. 특별한 요리철학 같은 건 없다. 다만 가능하면 음식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수고로움을 절약하고 싶다. 국과 반찬이 둘 다 있는 날에는, 둘 중의 하나는 어딘가에서 사온 것이다. 아니면 누군가에게서 얻어온 것이거나.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식구들이 삼시세끼가 아니라, 적당히 두 끼만 먹도록 오랫동안 유도해 왔다. 충분히 늦잠 또는 낮잠을 즐기면서 삼시세끼까지 다 챙겨 먹기에는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그러니까 나는 '밥상 위에 어떤 것들을 올려놓으면 좋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밥상을 어떻게 하면 ‘덜 노동스럽게 차릴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는 편이다.

거의 늘 이런 태도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밥풀 한 점 같은 죄책감이 마음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우리 남편의 머리 위에 내려앉은 하얀 백발은 종종 내게 ‘검은콩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검은콩이 검은 머리를 나게 한다는 속설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블랙푸드가 어디 머리만 구원한다던가. 활성산소가 몸에 쌓이는 걸 막아 노화를 더디게 하고, 피부를 오랫동안 젊게 만들어주고, 혈전과 염증, 콜레스테롤 축적을 방해해서 질병에 강한 몸이 되도록 하며, 로돕신 색소의 합성을 촉진해서 시력보호와 안구질환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블라블라블라...

‘다이어트 죄책감’도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의 딸아이의 몸무게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 샐러드와 닭 가슴살, 케일이나 건강한 야채를 갈아 만든 주스 같은 걸 제대로 챙기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가. 날씬하고 예쁜 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어린 시절의 식습관이 출발점이라 하는데 내가 그것들을 등한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어디 고등학교만 졸업해 봐라. 온갖 건강 다이어트 식단을 눈앞에 대령하리라, 다짐도 해본다. 물론 딸아이의 식단에 함께 동참해 볼 의사도 있다.

나에게 식탁은 수고를 줄여야 하는 노동이다. 그러면서도 내가 차린 밥상으로 가족을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식탁 윤리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구원에 이르는 약속이라는 테이블보를 두르고 있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 비추어 보자면, 루비 탄도의 《식탁과 화해하기》는 그 테이블보를 돌돌 말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루비 탄도는 무엇을 먹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어떻게 먹으라거나 어디에서 먹으라는 얘기도 하지 않는다. 음식에 대한 낭만적이고 유토피아적인 그림, 가보지도 못했는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회상을 펼쳐 보이지도 않는다. 도리어 음식을 먹는 옳은 방법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의심한다.

정답 같은 식탁이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다. 하나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라면, 아내라면, 여성이라면, 건강하고 싶다면, 구원받고 싶다면, 등등의 조건들이 들러붙지 않는 각자의 즐거움과 각자의 윤리가 반영된 제멋대로의 식탁을 차리는 것. “높은 체질량 지수가 심장병, 당뇨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들도 있다. 그런데 과체중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기대 수명이 더 길고 특정 질병에 덜 걸렸음을 보여 주는 연구들 또한 있다. 진실은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게다가 윤리적 딜레마가 없는 식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고 그럴 수도 없다. “모든 단계마다, 한 입 한 입 씹을 때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윤리적 딜레마로 가득 차 있다. 동물 복지와 노동자들의 권리문제가 있고, 지속 가능성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딜레마, 문화 주권에 대한 논쟁이 있으며, 대중의 건강에 대한 우려도 있다.” 그러니까 식탁 위의 유토피아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루비 탄도는 어떤 면에서 음식에 관한 혼란스러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직관적으로 아는 식탁의 즐거움이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이 어우러진 한 끼의 식사. 만드는 데서 오는 즐거움, 함께 먹는 데서 오는 일체감, 다음 한 끼에 대한 설렘 등이야말로 식탁 유토피아의 시작이자 끝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니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의 저 유명한 미식의 명제.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내게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다”는 잊어도 좋다. 우리가 먹는 것만 우리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먹지 않는 것 역시 우리다.

p.s. 식탁 화해 선언문으로는 이 책의 95~96쪽을 추천한다. “될 대로 대라지.”로 시작한다. “여자들의 몸에는 푸짐하고 단백질이 풍부한 요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여분의 지방을 배와 엉덩이에 비축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선동하기도 한다. 마무리 구절들은 통쾌하다! “아이들에게는 손가락에 묻은 땅콩버터와 스쿠프에 담긴 케이크 반죽, 지글지글 소리를 내는 얇게 저민 베이컨의 황홀한 맛을 선사하라.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보살피기라도 하는 양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하자. 밀크셰이크로 뼈를 강화하고, 긁히고 멍 들었을 때는 치즈 앉은 토스트로 치료하자. 우리 인생을 위해 먹자.”

그리고 식구들이여! 나의 식탁에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 그저 맛나게 드시라!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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