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꽃과 봄꽃을 올린 빵. (사진=김은영 제공)
귤꽃과 봄꽃을 올린 빵. (사진=김은영 제공)

과거에 급제하던 해 1775년에 내 나이 25살이었다. 아잇적부터 이상하게도 가본 적도 없는 제주 꿈을 자주 꾸었다. 꿈에 본 제주는 귤나무꽃 향이 가득하고 하늘과 구름 해와 달이 한 빛깔, 날씨는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한번은 내가 방백이 되어 도착하는데, 그곳 사람들이 몰려들어 몸을 솟구치며 구경을 하고 ‘구(舊) 목사는 이제 검은 관이 되었구나!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정조 시해 사건에 연루된 이들의 집안의 몸종이 나의 아내에게 드나들었다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제주로 유배를 떠난 것은 27세의 일이다. 

놀랍게도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이 꿈에 보았던 산천과 성곽, 별도니 조천이니하는 지명이 그대로여서 악연의 조짐이 있어 꿈을 꾸게 되었던 것인가 싶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것을 데자뷔라 하는가? 

나는 제주에 세 번을 온 셈이다. 한번은 꿈에, 한번은 유배를 당한 13년 동안, 한번은 복권이 되자 임금의 명을 얻어 환갑의 나이에 목사로 부임했다. 한번은 초췌했고 한번은 영화로웠다. 조선 왕조 500년 동안 제주로 유배 온 사람은 나를 포함해 200여명이다. 가진 것 없는 유배인들은 벌레와 동물들이 사는 들판에 움막을 지어 살아야 했다. 

나는 다행히 인가에 소라 같은 오막살이 와옥(蝸屋)을 얻었으나 잇달아 부임한 목사들은 조정의 뜻을 따르지 않고 내가 옮겨가는 곳마다 두렵게 하고 주인에게 공갈을 하여 음식을 단속하는 것은 하찮은 일에 속했다. 그런 것에 위축되지는 않으나 독서를 못 하게 하는 것이 가장 괴로웠다. 서당도 열 수가 없었다.  

귤꽃 봉우리를 넣은 물김치. (사진=김은영 제공)
귤꽃 봉우리를 넣은 물김치. (사진=김은영 제공)

제주 사는 13여년 동안에 꿈에서는 보았던 백록담을 가보기는커녕 3년여 동안은 마당 바깥을 나가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오직 자신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수식이 세밀하지 못한 불행한 글을 쓰기도 여러 날이었지만 지은 글들을 맡겨두었던 이웃이 관가의 수색이 두려워 불태우고 말았다. 이 또한 운명이 궁한 소치이다. 

먼 훗날 다행히 남겨진 글들을 읽게 될 사람들은 반드시 그 사연을 슬퍼 할 것이며, 충효에 뜻을 두고 태평성대를 꿈꾸었다 하기를 바란다. 내가 책이름에 영해(瀛海·신비한 산이 있는 바다)라 한 것은 어려서부터 꿈을 꾼 제주가 운명적인 곳이기 때문이며 처굴(處堀·구덩이에 처한다)이라고 한 것은 그 생활이 기구하였기 때문이다. 

곤궁은 군자가 힘쓸 일, 음식 절제는 옛사람의 말.
가난한 거처라 연기 피우지 못하는 부엌, 배고픈 때 텅 빈 술항아리.
이미 눈엔 불꽃이 보이고, 다시 배속엔 우렛소리 들리네.
갖가지 고달픔 도리어 웃음으로 견디니, 누가 옛날 높은 벼슬아치인 줄 알아나 줄까.

내 삶에 여인이 둘이 있었으나 두 사람 다 자결하였다. 정조 시해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을 쓰게 했다는 자괴감에 8개월 된 아들을 두고 자결한 부인 홍씨와 자신의 죽음이 공이 살길이라며 자결한 의녀 홍씨이다. 

그 애통한 죽음을 추궁 받을까 두려워 글로도 남길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35년이 지나 목사로 다시 제주에 돌아와 묘비를 세우고 한 집안의 두 절개, 형제가 현숙하다고 위로의 시를 지어 바치었다.

雜詠. 여러 가지 사물을 읊음
막막한 바다에서 세월 보내
누가 이세상의 생애 묻는다면
영산(靈山)의 색다른 맛, 채소밭에서
바다 고장의 뛰어난 향기, 귤꽃이리
쌀을 구걸하였던 도정절이나 매한가지-도정절 東晉의 시인
란(蘭)을 읊었던 가장사(낙양, 좌천 되었던 인물명)와 더욱 닮네.
임금의 은혜 갚지 못하고 몸만 곧 늙어가
빈 창가에 홀로 앉으니 눈물이 흘러 아득하네.

정헌처감록(조정철 지음)
조정철의 정헌처감록.(사진=제주투데이DB)

조선시대 제주에서 쓰여진 기록물 중에 음식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는 글은 많지 않은데, 17세기의 내용은 이건의 제주 풍토기, 18세기 후반의 것은 조정철의 처감록, 19세기의 것들은 김인택의 탐라지와 추사 김정희의 기록 정도가 있다.

그 중 영해처감록은 조정철이 유배 온 27세였을 때부터 (정조가 후손을 보았을 때, 기대했던 사면에서 제외되자)절필하였던 38세까지 11년동안의 유배의 기록인데, 내용에 들어 있는 음식들은 나물국에 보리밥, 멀건국 현미밥, 채소와 콩잎국, 조밥 오이국 등 소박하기 그지없는 그 시대의 제주인들의 음식문화를 짐작해보게 한다.

29년의 유배 생활 동안 조선은 개혁의 시기였다. 제주와 추자에서만 27년을 사는 동안에 그를 호기롭게 도왔던 몇몇 제주인들도 있었다. 61세 환갑의 나이에 정쟁의 피해자로, 분하고 억울함, 슬픔과 괴로움, 부끄럽고 욕됐던 탐라의 방어사로 돌아와 그들로부터 한 끼니의 덕 입은 것을 다 보상하고 사소한 섭섭함은 씻어버려 관원과 백성들로부터 대장부로 칭송을 받았으며, 후에 조선 기로사 회원으로도 올랐다고 한다. 

연잎귤잎떡. (사진=김은영 제공)
동정의방, 연잎귤잎떡. (사진=김은영 제공)

처감록에는 귤에 대한 시구나 문장이 열 다섯번 이상 나온다. 4~5월에 탐라는 온통 귤향기가 진동한다. 관가에서는 풍악이 넘쳐도 민가의 삶은 고달팠던 시대, 귤은 가둘 수 없는 향기만은 그에게 허락되어 애달픈 시간의 위로가 되었다.

귤꽃은 물론 귤잎도 향이 좋다. 쌉싸름한 맛도 있어서 입맛을 돋운다. 송편 빚을 때 솔잎 대신 쓰거나 즙을 내서 떡 반죽을 해 보시길 권한다(정조지에 수록되어 있다). 물김치에 귤꽃 봉우리 몇 개만 넣어도 향이 가득하다. 꽃은 달콤한 맛과 어울려서,  빵에 꿀과 함께 여러 봄꽃을 얹어 먹어 본다면 떨어져 시드는 귤꽃이 미안하게 느껴질 거라 믿는다.

홍랑 홍윤애가 자결하였던 날짜가 윤5월 15일이다. 그녀의 무덤은 현재 애월읍 유수암에 있다. 

김은영 요리연구가(가운데).
김은영 요리연구가(가운데).

우리는 현재에 산다. 과거에서 발원해 끊임없이 흐르며 미래를 향한다. 잊혀져 가는 일만 가능한 흐름 속에서 음식도 그렇다. 냄비 안에서는 늘 퓨전이 일어난다. 잊어버린 현재의 것들을 통해 현재 음식의 지평을 넓히는 것도 의미있겠다. 최근 출간된 서유구 선생의 <임원16지> 중 '정조지'에 수록된 음식을 직접 만들어 맛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한다. 오래된 미래의 맛을 통해서. 

 

김은영 요리연구가.

코삿헌 음식연구소 운영. 뉴욕 자연주의 요리학교 NGI 내츄럴고메 인스티튜드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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