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철 저물어가는 오월 어느날
최악의 황사로 숨막히던 날들을 보내고
퇴근하자마자 오랜만에 들판에 들었다

평소 살갑게 다가와 안기는 망아지가
기다렸다는 듯 유난히 반갑게 안겼다

망아지 등 긁어주며 노닐다가
어둠속 힘겹게 드러누운 흰 말을 보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곁에 검은 그림자가 보였고
가만히 지켜보니 갓 태어난 망아지였다

새끼 낳느라 힘겨웠던 어미말은
새끼 곁에 지친 몸 누인채
꼼지락거리는 새끼를 지켜보고 있었다

겨우 몸을 일으킨 망아지가 
어미말을 찾아 젖을 물었다

새끼는 어미젖을 실컷 먹고나서 드러눕고
어미는 새끼 곁에서 열심히 풀을 뜯었다

젖먹고 눕기를 반복하면서 
금세 다리에 힘이 붙은 망아지는
어미 주위를 기웃거리다

한켠에 쪼그려 앉아 지켜보던 나를 향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다가왔다

망아지가 카메라에 코를 들이대는 순간
순식간에 달려온 어미말이 온몸으로
새끼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새끼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때까지
묵직한 뒷다리와 엉덩이를 내 코앞에 두고 한참을 서 있었다

혹여 예민한 어미말이 새끼를 보호하려 뒷발질하면
한순간에 카메라는 물론 내 얼굴도 날아가겠다 생각하며
가만히 숨죽인 시간이 제법 흐르고

종아리에 쥐가 나려던 찰라
어미말도 새끼 곁으로 돌아가 지친 몸을 뉘었다

경계심이 사라진 어미말과 
평화로운 눈길을 주고 받으며
어둠속 조용히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밤이 깊어지면서
새끼의 발걸음에 제법 힘이 붙자
어미말은 새끼를 데리고 어둠속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지뢰밭같은 말똥들 사이에 
장화차림으로 두어시간 쪼그려 앉아있다 일어서려니
다리가 저리고 허리마저 시큰거렸다

어미말 떠난 자리에 남아있는
망아지를 감쌌던 양막과 태반만이
어둠속 어미말의 힘겨웠을
산고를 말해주고 있었다

“반가웠어,망아지! 귀빠진날 축하해~
 힘들었지,어미말! 무심히 받아줘서 고마워~”

 

김수오

제주 노형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수오 씨는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뒤늦게 한의학에 매료된 늦깍이 한의사다. 연어처럼 고향으로 회귀해 점차 사라져가는 제주의 풍광을 사진에 담고 있다. 낮에는 환자들을 진맥(診脈)하고 출퇴근 전후 이슬을 적시며 산야를 누빈다. 그대로가 아름다운 제주다움을 진맥(眞脈)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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