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3살인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장학금도 종종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항구에서, 어머니는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는 지적장애를 가진 큰 누나를 굳건히 지키고, 작은 누나의 조카에게 용돈을 쥐어주던 청년이었다. 그는 군대에서 전역한 후 조금이라도 생계에 보태겠다며 작년 1월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항구로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3개월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인력공급업체 작업반장인 그의 아버지는 원청업체로부터 급하게 사람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마침 앞에 있던 그에게 이주노동자를 찾아보라고 했다. 일을 부탁받은 이주노동자는 그와 함께 작업현장으로 갔다. 그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지게차 기사가 그에게 잔일 처리를 지시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같이 간 이주노동자도 그럴 필요 없다고 말렸지만, 그는 덤덤히 지시를 따랐다. 잠시 후 그가 올라간 컨테이너의 날개가 갑자기 그의 몸을 덮쳤다.

다른 지게차 기사가 반대편 컨테이너 날개를 제거하면서 생긴 진동으로 그가 있던 곳의 날개도 넘어진 것이었다. 날개의 무게는 300킬로그램이 넘었다. 현장에 있던 관리자들은 날개에 깔린 그를 보고 119가 아닌 원청회사로 먼저 연락을 했다고 한다. 그를 살려 보려고 안간힘을 쓴 것은 함께 간 하청 이주노동자뿐이었다. 그렇게 몇 십 분이 흘렀고, 23살의 청년은 끝내 눈을 감아야 했다.

4월 22일, 평택항에서 하청업체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선호 씨는 컨테이너 쓰레기를 치우다가 황망하게 생을 달리 했다. 원청회사가 안전관리 지침만 지켰더라면, 현장에 위험 예방 역할을 하는 관리자만 있었더라면 이선호 씨는 지금 가족들과 함께 아늑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을지 모른다. 원청회사의 비용절감 때문에, 관리자들의 안일한 인식 때문에 한 청년의 삶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안전관리 인건비 하루 10만원, 한 달 300만원만 제대로 배정하고 감독했더라면 300킬로그램의 무게가 이선호 씨의 몸을 덮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필 아들을 심부름 보낸 아버지가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챙기려는 자본의 탐욕이 멀쩡한 23살 청년을 죽였다. 그 가족까지 철저하게 망가트렸다.

정부 통계로만 해도 2020년 산업재해 사망자가 800명이 넘는다. 하루에 2명 이상이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사망자를 줄이겠다며 중대재해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현행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하지 않거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도 적용을 3년 유예하는 등 법 취지에 턱없이 모자라다. 정부는 법 제정 과정에서 경제단체나 야당이 강력하게 반발해서라고 핑계를 댔다. 하지만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려는 정부, 여당의 의지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법을 제정하는 것만으로 중대재해를 대폭 줄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법의 유무와 내용에 따라 사회의 구조와 의식 전환의 가능성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최소한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이 위협받지 않는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사용자의 책임이라는 인식과 법을 위반하게 되면 엄중한 처벌을 받는다는 강제성이 사회적으로 확산된다면, 그래서 억울한 죽음을 한 명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법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김용균, 이민호, 이선호…, 그들 모두 누군가의 자식이었다. 모두 이 사회의 구성원이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일했다. 모두 탐욕스러운 자본의 불길 앞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회적 타살이다. 자본과 이윤, 경쟁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답이 보이는데도 문제를 풀지 않는 정치가 그들을 죽였다. 이제라도 방법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한국사회는 야만적인 구조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조문이 아니라 죽음을 막을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이다.

다시 한 번 이선호 씨의 명복을 빕니다.

부장원 민주노총제주본부 부장원 조직국장
부장원 민주노총 제주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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