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제토(Roseto) 효과, 다시 이웃을 생각하다!

흥미로운 연구보고 하나.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어느 조그만 마을 얘기다. 이 지역 사람들 심장병 사망률이 주변 마을보다 자그마치 40%나 낮은 것을 발견했다. 1935년부터 30년에 걸친 통계치다. 중독자나 치매 발생률도 훨씬 낮았다. 게다가 범죄율은 제로였고 대학 진학률도 높은 편.

처음에는 식생활이나 운동량,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나를 보호해 준다는 확신, 내 옆 사람이 나를 지켜줄 것이란 믿음. 이웃 간의 촘촘한 네트워크가 그 비결이었다. 바로 로제토 효과. 이탈리아 이주민들이 터전을 잡은 출신지 이름에서 따왔다.

이토록 놀라운 로제토 효과도 1960년대 중반 이후 서서히 무너졌다. 심장병 발생률이 오히려 미국 평균치를 웃돈 것. 이유는 자명했다. 사람들이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길에서 만나 잡담을 주고받는 대신 울타리가 세워진 쾌적한 단독주택에서 따로따로 살면서부터다. 이웃 간의 관심과 도움이 사라지면서 건강 또한 잃기 시작했다. 다른 기록도 나빠졌다. 결국 가족을 벗어나면 그 어떤 지지망도 찾아보기 힘든 고립된 환경으로 내몰렸다. 

우리도 매한가지. 더하면 더했지 그에 못지않다. 거의 꼴찌나 다름없는 저신뢰 국가로 추락한 지 오래다. 오죽하면 돌봄 공백이 한창이던 코로나 한가운데서도 주변에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설까. 

(사진=강종우)
(사진=강종우)

◇ ‘나는 별일 없이 산다’... 고령화의 우울한 그늘, 잊혀진 이웃 

십여 년 전인가 보다. 모 방송국에서 방영된 ‘나는 별일 없이 산다’가 퍼뜩 떠오른다. 작고한 국민배우 신성일이 타이틀 롤로 화제를 뿌렸던 드라마다. 대체로 가뭇하지만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70대의 노신사 정일의 한 마디는 아직 또렷하다. “내겐 밥 먹었냐고 물어봐 줄 사람이 필요하다. 하루를 살더라도 그렇게 살아야지.”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안에 들어가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던 그의 중얼거림. ‘별일 없이 산다는 건 정말 사는 게 아니다.’

홀로 어르신이 아무도 모르게 숨졌다거나 질병과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자살했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은 모두 세계 1위. 제법 많은 제도와 정책이 갖춰졌지만 아무리 발 빠르게 대처한대도 치닫는 고령화 속도를 따라잡긴 역부족이다. 여전히 많은 어르신이 우리들 관심 밖에 머물러 있다. 

우리 사회 어르신. 그들 대부분은 경제발전의 주역이었으나 지금은 성장의 그늘에서 돌봐줄 사람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해방과 이념 광풍, 개발독재라는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터널을 거치면서, 온갖 고초와 굴절을 오로지 몸뚱아리 하나로 버텨왔던 분들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녀의 성공과 체면 때문에 자신을 숨기고 살아왔다. 오로지 친구라곤 바보상자밖에 없어 방구석에서 온종일 뒤척이는 ‘잊힌 이웃’. 더 기다리는 이도, 기댈 이도 없는, 어쩌면 평생을 기다리는 일에 지쳤는지도 모르는 어르신들. 그렇게 생의 마지막을 외롭고 쓸쓸하게, 우리와 이웃하여 잊혀져 왔다.

◇‘또 하나의 이웃’... 소셜 프렌즈(Social Friends) 동네삼춘 프로젝트

“어르신들은 거동이 불편해도 살던 곳에서 여생을 마치고 싶다 곧잘 그러세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을을 떠나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가길 원치 않는 거죠. (중략) 대부분 시설은 장례식장과 함께 있거나 근처에 화장터가 있어요. 제 눈엔 그게 쓸모가 없어진 사람을 죽을 때까지 머물게 하다가 돌아가시면 폐기하는 과정처럼 보여요. 그냥 효율적인 시스템이죠. 씁쓸하죠.” 언젠가 농촌에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가 꼭 필요하다 열변을 토하며 강원도 후배가 건넨 말이다. 제주가 더 시급하다 맞서며 대작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래선지 모르겠다. 마을단위 통합돌봄 사회적경제 협동화사업, 소셜 프렌즈 '동네삼춘 프로젝트'. 2019년부터 이어온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기획사업이다. 살던 곳에서 건강한 노후를! 지역사회 통합돌봄 커뮤니티 케어, 제주시 용담 2동이 시범지역이다.

사회적경제가 한데 모여 신뢰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마을을 중심으로 돌봄 생태계를 회복하려 애썼다. 일상돌봄(제주이어도돌봄센터)이나 정서지원(사회적협동조합 컬쳐마루)은 물론 밑반찬(제주수눌음지역자활센터)도 빼놓지 않고 갖다드렸다. 어르신이 손수 하기 어려운 이불빨래(제주인사회적협동조합)나 방역소독(클린서비스보금자리), 그리고 소소한 집수리(하나하우징)까지. 공적서비스가 미치지 못한 빈틈을 메우는 ‘새로운 이웃’. 소셜 프렌즈는 그렇게 생겨났다.

누구보다 주민들이 달라졌다. ‘오멍 가멍 돌봄 워크숍’에 참여하더니 마을돌보미를 자청하고 나섰다. 올해는 어르신들과 설 명절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용담2동 연합청년회와 주거환경개선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게다가 요즘은 동네반찬가게도 차리고 마을돌봄협동조합도 만든단다. ‘또 하나의 이웃’ 동네삼춘으로 거듭난다. 주민들이 스스로 챙기고 함께 돌보며 서로 보살피는 마을. 이것이 수눌며 살던 제주공동체의 참모습 아니던가.

괜스레 동네삼춘들이 그립다. 온갖 궂은 일 마다 않고 동네살림 거념하던(돌보다의 제주어) 너무나 소중한 이웃. 그 많던 동네삼춘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던가.  

가족의 달이다. 아이들은 온 몸으로 배우고 익힌다. 우리가 부모세대를 대하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한다. 오늘 우리 세대가 하지 않으면, 내일 우리 또한 ‘잊혀진 이웃’으로 따돌림 당할 수밖에 없다. 성장신화가 막을 내린 지금,  ‘또 하나의 이웃’을 찾아 나서야 한다.  ‘사회적 연결은 튼튼하게, 사회적 관계는 든든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어느 광고 문구처럼.

 

강종우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 그가 매달 세번 째 금요일에 연재하는 '호박벌의 제주비상'은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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