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현악기 전문가인 프리츠 야넬은 ‘기타와 구조’라는 책에서 사냥용 활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활의 한쪽 끝을 입으로 물고 활줄을 튕겨 ‘팅’ 하는 울림을 즐겼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거북껍질이나 호리병박을 울림통으로 사용하여 울림 효과를 키웠을 것이라고.

미국에선 노예선을 타고 건너온 아프리카 악기인 라본퀸(Rabonquin)이 기타의 시초라고 본다. 노예들의 가장 중요한 악기는 드럼이었다. 그러나 비트의 강약으로 신호를 하며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됐다. 그리하여 흑인들은 라본퀸을 원형으로 비누상자나 담배상자에 현을 달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 발명품은 울림통이 커지고 정교해지면서 블루스 연주자들의 주요악기로 쓰이게 된다.

1930년대 스윙재즈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빅밴드 내에서 기타의 위상은 초라했다. 색소폰과 트럼펫, 혼(Horn) 등의 관악기가 엄청난 블로잉을 뿜어댔다. 이때 어쿠스틱 기타의 작고 초라한 소리는 그저 구석에서 코드 반주만 하는 악기로 머물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전기기타와 앰프가 발명되면서 기타는 드디어 솔로악기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 되었다. 이후 잇따라 다양한 이펙터가 개발되면서 락과 퓨전재즈의 시대에는 메인 악기로 자리잡게 된다.

일렉기타의 첫 번째 영웅은 오클라호마의 소년 기타리스트 찰리 크리스찬(Charlie Christian)이었다. 그가 태어난 오크라호마 거리는 언제나 활기에 차 있었다. 블루스와 재즈음악이 끊이지 않고 흘러 넘쳤다. 찰리는 처음 재즈를 들은 이후로 재즈 이외의 어떠한 음악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학교 수공예반에서 시가 상자(Cigar-Box)로 만든 첫 기타로 연습을 시작했고 곧이어 가족밴드를 만들어 클럽공연을 시작했다.

1938년 무렵 드디어 그는 첫 일렉기타를 손에 넣었다. 새로운 악기로서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싱글스트링 솔로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앰프를 통해 확장된 찰리의 독창적인 톤과 프레이즈는 기존 기타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었다. 그는 솔로악기로서 기타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스윙의 왕’ 이라 불리던 베니굿맨 악단과의 첫 녹음곡인 <Flying Home>에선 당당하고 박력넘치는 32마디 솔로연주를 들려준다. 블루지하면서도 세련된 프레이즈. 그의 싱글스트링 연주는 대중들의 귀에 전기기타의 오리지널 사운드를 각인시켰다. 뒤이어 그는 자작곡인 <Solo Flight>에선 더욱 진일보한 톤 어프로치와 절묘한 비밥 라인들을 쏟아내며 솔로주자로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된다.

한편 버드와 디지, 몽크 등의 진보적 음악가들은 새벽이면 <민터스 클럽>에서 잼세션을 열었다. 그들은 빅밴드에서의 연주와는 다른 좀 더 복잡하고 난해한 코드진행에 빠른 템포의 연주를 실험하며 새로운 음악세계를 탐닉하고 있었다. 이들과 함께 찰리는 독특한 톤과 독창적인 프레이즈로 비밥(Bebop)재즈의 초창기를 이끌었다. 계속되는 순회공연과 레코딩, 밤이면 음악을 다듬고 연구하며 연습에 몰두했던 그는 지병이던 폐결핵이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1942년 3월 2일 줄곧 기타의 혁신을 꽤했던 시골소년의 음악은 멈추어버린다.

사후 발매된 <The Genious of The Electric Guitar> 기타에 모든 걸 쏟아 부었던 그의 숨결이 담겨져 있다. 음표 하나하나마다 느껴지는 그의 비범한 연주는 현재에도 수많은 기타리스트들의 교본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Jazz 속의 Guitar 이야기>

양진우
양진우

음악행위를 통해 삶의 이면을 탐구해나가는 모험가,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양진우 씨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The Moon Lab 음악원 대표이며 인디레이블 Label Noom의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다. 매달 네번째 월요일 음악칼럼으로 독자들을 만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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