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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교실] 배운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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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교실] 배운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
  • 양정인
  • 승인 2021.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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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2학년 친구가 들어왔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다. 그런데 두 손을 자꾸 뒤로 감추는 것이었다.
"손은 왜 뒤로 가니? 선생님께 줄 편지구나! 어서 주렴.” 라고 하자 잠시 망설이다가 "제가 쓰고 싶어서 쓴 거 절대 아니에요. 엄마가 쓰라고 했어요." 하면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살며시 편지를 내밀었다.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1학년 때부터 수업한 친구인데, 마음에 들지 않거나 화가 나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안 해!" 라며 손을 놓아 버리는 친구였다.

2학년이 된 후, 달라지긴 했지만 글쓰기가 싫을 때 간혹 행동이 나온다. 그런 친구가 편지를 쓰고 오다니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 보았다. 순간 나는 입이 벌어졌다.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친구라서 몇 줄만 썼겠지? 라고 생각해서 펼쳤는데 편지지가 글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맞춤법은 군데군데 틀리긴 했지만, 예쁜 글씨체로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쓴 글이었다. 편지를 읽으면서 어린 친구의 솔직함이 담겨 있어서 가슴이 뭉클했다. 엄마가 쓰라고 해서 쓰긴 했겠지만, 조그마한 친구가 얼마나 고민하며 편지지를 가득 채우려고 애를 썼을까 생각하니 기특하고 대견스러웠다.

6살부터 수업을 시작한 친구도 있다. 부모가 맞벌이라서 어린이집 다녀오면 낮에는 아래층에 사시는 할머니와 옆집에 사는 사촌들하고 지냈다. 수업받다가 갑자기 푹 꼬꾸라지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장난하는 줄 알고 일어나라고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침을 흘리며 자고 있었다. 마당에서 신나게 뛰놀아 피곤하기도 했고, 아이들의 집중력은 15분 정도인데 40분 수업을 받으려고 하니 힘들었나 보다. 어쩔 수 없이 수업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언니는 더 심한 돌출행동을 했다. 수업하다가 갑자기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하더니 머리 감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 행동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황당해서 할 말을 잊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만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의젓한 5학년이고 중학생이 되었다. 두 자매가 당당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요즘 나도 배움의 길을 가는 학생이 되었다. 살풀이춤 수업을 새롭게 받고 있다. 제주도에 이매방 선생님의 살풀이춤을 이수하신 분이 계신다고 하여 찾아뵙고 사사 받기로 하였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전통춤 중에서 여성의 곡선미와 정중동의 호흡이 가장 잘 표현된 춤이다. 그래서 강한 코어와 하체의 힘이 필요하다. 기존에 배운 살풀이도 이매방류라고 했지만, 춤을 배워서 익힌 후 자신만의 스타일로 추다 보니 선생님마다 춤사위와 표현법이 다르다. 그러니 다른 선생님에게 춤을 배우려면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견뎌내기 힘들다.

첫 수업을 받았을 때, 놀라움과 두려움이 앞섰다. 기존의 나의 춤사위하곤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다시 시작해야 했다. 호흡법, 손동작, 몸동작, 발놀림까지. 특히 복근에 힘이 약했던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이 책이 너무 어렵다고 하면 ‘쉬운 책을 읽는 것이 재미있고 즐겁지만, 어려운 책도 읽어야 생각이 커져서 또 다른 어려운 책을 만나도 읽을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단다’라고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아이들이 독서 수업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나도 똑같이 경험하는 것이다. 세상의 바퀴는 재미있게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들이고, 아이들이 나의 스승이 된 기분이었다. 

가끔은 선생님께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린 친구들이 생각나서 웃곤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무심하게 의욕을 떨어뜨리는 말을 한 적은 없는지, 감정적으로 행동한 적은 없는지, 수업 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하지 말아야 할 것들, 꼭 해 줘야만 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어쩌면 삶 자체가 가르침과 배움의 연속이 아닐까?

양정인

뒤늦게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양정인씨는 전문 무용가가 아니라 춤을 즐기는 춤꾼이다. '방구석 노인'이 아니라 '푸릇한 숙인'이 되고 싶은 그에게 춤은 삶의 전환점이 됐다. 춤은 끝없이 익히는 과정이다. 그가 점점 겸손해지는 이유다. 춤에서 배운 이치를 가르치는 아이들과 나누기도 한다. 배움과 가르침이 뫼비우스의띠처럼 연결되는 세상은 이야기가 춤추는 교실같다. 독서지도사이기도 한 양정인의 '춤추는 교실'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제주투데이 독자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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