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가의 열두 달》카렐 차페크 글,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펜연필독약 펴냄
《정원가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글, 요제프 차페크 그림, 배경린 옮김, 펜연필독약 펴냄

차페크는 1890년에 태어나서 1938년에 죽었다. 48살을 살았다. 그는 체코에서 태어났다. 그때는 히틀러 나치당이 세계를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차페크 형제는 나치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글을 쓰고 활동을 했다. 나치 게슈타포는 카렐 차페크를 ‘공공의 적 3호’로 불렀다. 그는 1939년 독일이 체코 프라하를 점령하기 몇 달 앞서 폐병으로 삶을 달리했다. 3살 많은 형인 요제프 차페크도 1939년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 6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 죽었다. 이렇듯 형제 모두가 나치 전체주의에 온몸으로 맞서 싸웠다.

카렐 차페크는 자신이 쓴 희곡 ‘R.U.R'에서 ’로봇‘이란 말을 처음 썼다. 1921년이다. 올해가 2021년이니 딱 100년이 되었다. 그는 사람이 편하게 살려고 만든 기계가, 사람을 괴롭히고 자연을 더럽힐 수 있다는 것을 100년 전에 이미 알았다. 그는 나치에 맞서기도 했지만 자연을 참 사랑했다. 《정원가의 열두 달》도 그래서 쓴 것이 아닐까.

《정원가의 열두 달》은 1929년에 나왔다. 책이름 그대로 1월부터 12월까지 꽃밭과 풀, 나무를 일구는 사람 이야기다. 책 사이에 있는 그림은 형인 요제프 차페크가 그렸다.

꽃밭을 일구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당연히 꽃이다. 그 말도 맞지만 차페크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흙과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지렁이와 벌과 새를 귀하게 여겼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면 땅이 좋아야 하고, 땅이 좋으려면 좋은 거름도 있어야 하고 때맞추어서 비가 내려 주어야 한다. 그 꽃밭에서 벌과 나비가 춤을 추고 새가 지저귄다.

차페크는 말한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누구나 작은 땅을 일구며 살아야 한다고. 먹을 수 있는 것을 심는 것도 좋지만, 눈으로만 봐도 아름다운 꽃과 풀과 나무를 가꾸는 것이 훨씬 좋다고. 땅과 꽃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과 자연을 죽이는 사회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차페크 형제처럼 말이다.

꽃밭을 일구는 사람들은 1월부터 12월까지 즐겁게 바쁘다. 식물도 그렇다. 씨앗이 땅 속에서 움트는 것은 11월이다. 사람들은 11월 12월 1월 2월에는 날이 추워져서 나무와 풀과 꽃이 그냥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다. 새로운 씨앗을 움트게 하려고 땅 속에서 뿌리를 내리며 끝없이 움직인다.

땅을 일구며 뭔가를 가꾸어 본 사람은 안다. 발을 딛고 있는 땅이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지. 길에 눈 개똥이나 말똥이 얼마나 좋은 거름인지. 지금은 먹을거리를 만드는 농사꾼만이 아니라, 꽃을 파는 사람들도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쓴다. 땅에는 지렁이와 벌레가 살지 못한다. 땅이 죽어간다. 죽은 땅에서 나는 먹을거리와 꽃이 정말 튼튼하고 아름다울까.

아마 차페크가 살아서 이런 현실을 보면 땅을 치며 울부짖을 것이다. 그는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글도 쓰겠지만 자연을 더럽히면서 땅을 일구는 사회도 싫어했을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집에서 작게 가꾸는 꽃밭에는 화학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쓰지 않으리라. 점점 꽃밭을 가꾸고 풀을 돌보는 사람들이 줄어들 뿐이다. 그럴수록 사람들 마음속은 자연과 멀어진다.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면 나무와 숲과 강과 바다와 꽃을 죽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차페크는 말한다. ‘더 좋은 것, 더 멋진 것들은 늘 한 발짝 앞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시간은 무언가를 자라게 하고 해마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더한다. 신의 가호로 고맙게도 우리는 또다시 한 해 더 앞으로 나아간다!’ 땅을 일구며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도 작은 꽃밭을 가꾸고 싶다. 가꾸지 않더라도 꽃이 피는 땅을 짓밟진 말아야겠다.

은종복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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