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합장묘 신묘역. 군 토벌대에 의해 집단학살된 남원읍 주민들을 모신 세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현의합장묘 신묘역. 군 토벌대에 의해 집단학살된 남원읍 주민들을 모신 세 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오늘은 조금 무거운 얘기를 할까 합니다. 이제 얼마 후면 6월 6일 현충일입니다. 현충일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날인데요. 제주에도 순국선열을 기리는 충혼묘지들이 있습니다. 그중 서귀포시 남원읍에 있는 충혼묘지가 오늘 소개해 드릴 유적지 중 한 곳입니다. 

남원에는 제주4·3을 기억하는 세 가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주4·3 당시 자국 군대에 의해 학살된 주민들의 무덤 현의합장묘.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새벽 기습을 감행했다가 토벌대에 의해 죽은 무장대(인민유격대)의 시신이 방치되었던 송령이골, 그리고 충혼묘지. 망자를 모신 세 묘역의 공통분모는 바로 ‘의귀전투’입니다.

1948년 12월 26일, 남원 의귀국민학교에 2연대 군인들이 주둔하게 됩니다. 이후 군 토벌대는 주둔지 주변을 수색하면서 몸을 숨긴 주민들을 붙잡아 학살했습니다. 대대적인 토벌작전이 전개되었던 것입니다. 일부는 죽이지 않고 주둔지인 의귀국민학교로 압송해 감금합니다. 특히 1949년 1월 9일을 전후하여 100명 가까운 주민이 토벌대의 손에 잡혔다고 합니다. 토벌대는 이튿날부터 감금한 주민들을 끌어내 총살을 하는 등 주민들의 수난이 이어졌습니다. 

남원읍 충혼묘지 내에 세워진 ‘의귀전투’ 전사자 4인의 묘비. 묘비는 가운데 쪽에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남원읍 충혼묘지 내에 세워진 ‘의귀전투’ 전사자 4인의 묘비. 묘비는 가운데 쪽에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1월 12일 새벽 무렵, 이 소식을 접한 무장대는 학교에 구금된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의귀국민학교를 습격합니다. 그러나 토벌대는 무장대의 기습을 미리 알아차리고 학교 옥상에 기관총을 설치하는 등 대비했습니다. 그 결과, 2~3시간의 교전 끝에 무장대원 200여 명 중 51명이 사망하며 패퇴하게 됩니다. 이 전투에서 2연대 군인은 총 4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전투가 끝나고 군 토벌대가 학교에 수감된 주민 80여 명을 학교 동쪽에 있는 밭으로 끌어내 총살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보복 학살이었습니다. 

하루 사이에 130여 명의 생명이 사그라졌지만, 각각의 죽음에 대한 대우는 달랐습니다. 우선 교전 중 전사한 4명의 군인은 충혼묘지에 묻혔습니다. 이들의 묘비는 충혼탑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묘지 가장 우측 눈에 잘 띄는 곳에 세워져 있습니다.

주민들의 시신은 몇 개월 동안 수습도 하지 못한 채 방치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경찰의 명령을 받은 민보단이 성 안쪽에 있는 건천인 ‘개턴물’ 부근으로 시신을 옮겼습니다. 시신들은 구덩이 세 개에 나뉘어 매장되었습니다. 군사정권의 엄혹한 서슬이 살아있던 1976년, 유족들은 ‘삼묘동친회’를 결정합니다. 그리고 1983년에는 이 묘역에 ‘현의합장묘(顯義合葬墓)’라는 이름을 붙이고 묘비를 세우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2003년에는 더 좋은 자리로 유해를 이장합니다. 그곳이 현재의 현의합장묘입니다. 현의합장묘에는 4·3 당시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서술된 표지석과 안내판이 있습니다. 자연스레 옛 현의합장묘는 구묘역이 되었습니다.  

송령이골 전경. 몇 년 전 ‘의귀마을 4·3길’이 개통하면서 코스 중 하나인 송령이골에 안내판이 세워졌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송령이골 전경. 몇 년 전 ‘의귀마을 4·3길’이 개통하면서 코스 중 하나인 송령이골에 안내판이 세워졌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무장대의 시신은 의귀국민학교 인근에 버려졌다가 토벌대의 명령에 따라 마을 서쪽에 있는 속칭 ‘송령이골’로 옮겨져 집단 매장되었습니다. 봉분도 없이 방치되던 이 묘역은 2004년 5월 14일 도법스님을 단장으로 하는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유족회와 시민단체 등과 함께 천도재를 지내면서 그늘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후 매년 8월 15일에는 제주도 내 시민사회에서 이곳을 찾아 벌초를 하고 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 제주다크투어도 창립 이후 매해 성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린 세 곳의 유적지는 제주4·3과 같은 국가폭력 학살이 어떠한 방식들로 기억되고 있는지 선명히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올해 초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될 때 ‘진정한 봄이 왔다’ 등의 슬로건이 제창되었습니다. 

그러나 인민유격대(무장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논외입니다. 4·3의 진정한 해결을 위해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과제인데 말이죠. 4·3이 현재 어디까지 왔는지 피부로 느끼고 싶다면 서귀포 남원읍에 있는 이 세 곳의 유적지에 가보시길 권합니다. 

지난해 8월 15일 제주도 내 시민사회단체가 송령이골을 찾아 벌초와 성묘를 했다. 제주다크투어 함께 동참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지난해 8월 15일 제주도 내 시민사회단체가 송령이골을 찾아 벌초와 성묘를 했다. 제주다크투어 함께 동참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현의합장묘 구묘역. 현의합장묘의 내력이 적힌 유허비와 묘역의 옛 모습이 담긴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현의합장묘 구묘역. 현의합장묘의 내력이 적힌 유허비와 묘역의 옛 모습이 담긴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제주다크투어 제공)
신동원.
신동원.

신동원. 비생산적인 지식이 정말 재밌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청년. 철학과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을 동경한다. 지금은 비영리단체 ‘제주다크투어’에 적을 두고 있다. 다크투어란 전쟁이나 테러, 재난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을 찾아 성찰을 얻는 여행이다. 제주에는 신축항쟁, 일제강점기, 4·3 등과 관련한 유적이 600~800곳에 이른다. 매달 한 차례에 걸쳐 아프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품은 곳들을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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