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든 연두부. (사진=김은영 제공)
직접 만든 연두부.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두부는 희고 무르다. 안을 보호하는 가죽도 없고 자신을 세우는 뼈도 없다. 그래서 95% 이상 소화되는 완전식품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른 두부가 여덟 개의 각을 잡아 모나게 존재한다. 무른 놈마저도 깨지지 않기 위해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모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니 세상은 참으로 무섭다. 

두부 중에서도 어머님의 노련한 손으로 만지지 않으면 문드러진다는 연두부를 페이스북 친구로부터 받았다. 연두부 100g의 시장가격은 1000원 내외다. 하지만 직접 콩을 골라 물에 불리고, 갈아서 끓인 뒤, 베주머니로 짜서 나온 콩물에 바닷물을 넣어 살짝 굳히는데 들어간 공력을 생각하면 가격 자체를 매길 수 없다. 

가심비라는 용어가 있다. 가성비가 가격 대비 성능비의 줄임말이라면 가심비는 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도를 일컫는 용어다. 가심비는 점심은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나, 커피는 꼭 원두로 로스팅한 것을 먹어주어야 하는 것과 같이 합리성을 뛰어넘는 주관적 소비패턴을 말한다. 

지금 당장의 내 행복을 위해 가성비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소비다. 필자가 ‘페친’으로부터 받은 연두부는 가성비로 따지면 2000원 언저리일 것이다. 하지만 연두부 반 모에서 필자가 누린 행복을 생각하면 그 가치는 무량대수(無量大數)다. 

연두부를 만드는 과정. (사진=김은영 제공)
연두부를 만드는 과정. (사진=김은영 요리연구가 제공)

두부는 동북아시아 삼국 공통의 음식이다. 하지만 요즘엔 두부를 안 먹었던 서양에서도 채식주의 열풍에 힘입어 건강식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2002년 개봉한 산드라 블록과 휴 그랜트가 주연한 영화 ‘투 윅스 노티스(Two Weeks Notice)’에서 휴 그랜트가 두부를 스펀지케이크로 알고 먹는 장면이 나온다. 그만큼 두부는 서양에서 흔한 식재료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7년, 프랑스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0%가 두부를 섭취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식물성 단백질이 동물성 단백질에 비해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이 적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또한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을 사육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 담수 고갈, 삼림파괴와 같은 환경오염이 발생하지 않는다. 건강과 환경보호를 위해 두부 시장이 급성장한 것이다. 프랑스에서 두부는 건강식품을 파는 바이오식품 전문점에서 판매된다. 

미국에서도 소비자들의 85%가 콩을 건강식으로 인식하여 두부 매출액이 연 80%씩 증가하고 있다. 미국 두부 시장의 75%를 점유한 풀무원의 2019년 미국 매출액은 2000억원을 넘겼다. 두부는 머지않아 전 세계인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될 것 같다.

문제는 두부 원료로 사용하는 콩이 대부분 외국산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의 콩 생산량은 2020년 기준 8만1000톤이고, 수입 물량은 132만8000톤이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콩의 94%가 외국산이다. 우리나라는 곡류 중 유일하게 원산지가 만주와 한반도라는 콩을, 동양농업탐험대(Oriental Agricultural Exploration Expedition)가 1929~1931년 우리나라에서 수집(강탈)해간 3379점의 콩 유전자원을 이용하여 품종을 개량한 미국에서 주로 수입한다. 

구좌농협 직원들이 콩을 수확하고 있다.
콩을 수확하는 모습. (사진=제주투데이DB)

현재 도매기준으로 국산 콩은 kg당 평균 6200원, 외국산 콩은 3900원으로 거래된다. 두부는 소매기준으로 100g당 국산은 1000원, 외국산은 350원 내외로 거래된다. 콩에서는 가격 차가 2배가 나지 않는데 두부에서는 3배 가까이 나는 것이다. 더 분통 터지는 일은 국산 콩 두부가 외국산 콩 두부보다 마진이 큰 데도 일부 두부 가공업체나 두부 전문 음식점에서는 원산지를 속여 판다는 사실이다. 

지난 1월에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제주지원에서는 두부 제조·유통업체, 두부요리 전문음식점을 대상으로 대한 원산지 단속을 실시했는데, 19개소가 적발되었다. 어떤 업체들은 외국산 콩으로 만든 두부를 조리하여 판매하면서 메뉴판에는 ‘국내산 제주콩’으로 표시하여 팔다가 허위표시로 적발되었고, 또 다른 업체들은 옥외간판과 메뉴판에는 ‘제주콩 100%’로 표시하고 손님이 잘 보이지 않는 곳의 원산지 일괄표시판에는 외국산으로 표시하여 판매하다 혼동우려 표시로 적발되었다. 

원산지 거짓표시인 경우 농수산물의 원산지 표시에 관한 법률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원산지 표시 사범에 대하여 법원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보통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한다. 그래서 당사자들은 식품위생법 위반에 따른 영업정지 처분보다도 약하게 인식한다. 원산지 허위표시가 근절되지 않고 있는 원인 중의 하나다.    

필자는 원산지 위반 행위를 높은 가격에도 국산을 찾는 소비자와 묵묵히 우리 농식품을 재배·생산하는 생산자 모두를 기만하여 우리 농산물 생산 기반을 무너뜨리는 국가범죄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원산지 사범도 내란죄나 외환죄 같이 높은 형량을 부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다 쓰면 쪽파를 썰어놓은 간장을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연두부에 뿌리고 막걸리 한 병을 딸과 함께 마시며 무르고 모난 두부 이야기를 나눌 계획이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숟가락으로 떠먹는 제주산 수제 연두부 맛을 독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 황홀한 안주가 있는 행복한 저녁이다.

고기협.<br><br><br>​​​​​​​<br>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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