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이제윤 학생이 그린 삼춘 그림

목요일, 드로잉 수업이 있는 날이다. 원래 수요일 수업이지만, 일정 때문에 하루 미루어졌다. 드로잉 수업에서는 목탄 연필 색연필 등 여러 가지 도구를 써서 그림을 그린다.

드로잉 수업에서는 이 도구들을 무기라고 말한다. 우리는 수업마다 이 무기를 들고 동네 삼춘(연장자를 부르는 제주어)들의 창고를 그리고 있다. 창고의 외부를 그리기도 하고 내부를 넓게 그리기도 하고 어떤 물건을 지정해서 그리기도 한다. 그린 그림으로 삼촌의 창고를 갤러리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우리 커뮤니티'라는 큰 건물에 전시하기도 했다.

첫날에는 연필 한 자루와 A4용지 5장을 들고 가서 간단한 스케치를 해보고 소감을 나누었다. 또 우리는 그림을 그리며 삼춘께 창고에 대한 인터뷰를 청하기도 한다. 어떠한 특정 물건에 대한 질문도 드리고 창고에 담긴 이야기를 듣기도 하며 그림이 더욱 디테일하고 풍성해지는 것 같다.

3일, 김순덕 삼춘의 창고를 그렸다. 아침에 수업하는 스튜디오에 도착하면 무기를 보급받는다. 마치 출격 전에 병사들처럼 자신의 무기를 챙긴다. 이날의 무기는 연필과 색연필이었다.

이날은 다른 날과 조금 다른 그림들을 그렸다. 보통은 그냥 보이는 걸 기록했다. 하지만 이날은 드로잉에 대한 3가지 키워드가 있어서 그걸 담아서 그려야만 했다. 그 3가지는 바로 #드로잉의 기록, #드로잉의 자유로움, #드로잉의 상상력이었다.

드로잉의 기록은 말 그대로 보이는 걸 그대로 따라 그리면 되는 거였고 드로잉의 자유로움은 물건이 똑같아도 각각 자유롭게 다른 표현방법을 쓰는 걸 말한다. 마지막으로 드로잉의 상상력은 상상력을 불어넣어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상을 그림 속에 담아내는 것이다. 이 3가지 키워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순덕삼춘의 귤밭 안에 있는 창고로 출발했다. 전에 알바하러 온 적이 있는데 창고는 처음 들어가 보아서 안에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창고는 컨테이너로 꽉 차 있었다. 

우리는 먼저 순덕삼춘의 모습을 ‘기록’했다. 삼춘은 우리가 삼춘을 그릴 동안 의자에 앉아 계셨다. 가끔 움직이기도 하셨다. 움직이는 모습까지 기록해보았다. 처음 하는 거라서 조금 어색해 보였다. 원래 그림에 이어서 움직임을 그렸는데 그랬더니 한 사람 같기도 하고 두 사람 같기도 했다. 삼촌의 모습을 세세하게 기록을 하다 보니까 디테일한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본 것은 삼춘 왼손 약지에 껴있는 결혼반지였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언제 결혼하셨냐고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삼촌은 24살에 결혼하셨고 남편분이 44살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잠시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창고도 그렇고 귤밭도 그렇고 삼춘도 그렇고 쓸쓸히 느껴졌다. 

삼춘을 다 기록하고 나서는 창고 내부에서 그릴 것을 찾아보았다. 나는 창고 천장에 있는 전구를 선택했다. 그 전구는 주황빛이었는데 어두침침해서 켰는데도 별 차이가 없었다. 게다가 뒤쪽과 앞쪽에 전구가 하나씩 있었는데 뒤쪽은 꺼져서 더욱 어두웠다. 삼촌이 일하실 때 어둡지 않으실까? 궁금해서 “창고 전구가 어둡지 않으세요?”하고 여쭤보았다. 그랬더니 삼촌은 “이제는 필요 없으니까 하나만 달아했지” 하셨다. 그렇게 보니까 안 보이는 물건도 없고 주황빛 분위기가 매력적이게 느껴졌다. 또 따스한 느낌이었다. 창고를 그리며 자세히 보다 보면 그저 공간, 장소가 아니고 세월과 이야기가 담긴 친구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은 세 번째 키워드인 드로잉의 상상력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전에 어떤 친구가 삼춘께 “비 오는 날 좋으세요?”라고 질문했는데 삼춘은 감사한 날이라고 하셨다. 생명이 피어나고 귤밭에 귤들이 물을 먹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쑥쑥 자라는 잡초들과 넝쿨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넝쿨에 완전히 뒤덮인 창고를 그리기로 했다. 이전까지는 연필로 스케치 했지만 마지막 세 번째는 색연필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무조건 두 가지 색깔만 써서 그려야 했다.

나는 생명이 피는 풀색, 초록색으로 했고 다른 부분을 채워줄 갈색을 선택했다. 먼저 창고와 그 외에 땅 등을 다 갈색으로 하고 그 위에 넝쿨을 그리기 시작했다. 몇 가닥을 그렸는데 알바에 가야 할 시간이 와서 정말 아쉽게 미완성하고 떠나야 했다. 드로잉 수업을 하며 창고를 그리면서 매번 느끼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여러 물건에 담긴 이야기와 그저 공간만이 아니고 사연이 담긴 공간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되고 그 창고라는 곳 만으로도 어떤 사람을 알아갈 수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수업을 하면서 다른 삼춘들도 만나게 되면 재밌고 좋을 것 같다. 

 

3일 김민찬(왼쪽)과 글쓴이 이제윤 학생이 드로잉 수업을 받으면 장난치는 모습. (사진=볍씨학교)
3일 김민찬(왼쪽)과 글쓴이 이제윤 학생이 드로잉 수업을 받으면 장난치는 모습. (사진=볍씨학교)

이제윤
저는 올해 처음으로 제주학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자립을 연습하고 내면에서의 성장을 위해 제주학사에 내려왔습니다. 일상의 패턴이 바뀌고 정신적인 힘듦도 따르지만 그만큼 성장하고 있고 성장하리라고 믿기 때문에 제주학사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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