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산하 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가 발간한 ‘2021년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으로 조사대상 149개국 가운데 62위다. 핀란드가 7.84점으로 1위이고, 덴마크, 스위스 등 북유럽 국가들이 그 뒤를 이었다. 경제 대국인 미국은 18위, 중국은 84위, 일본은 56위였다. 이 지수는 지난 3년 동안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사회적 지원, 건강수명, 삶 선택의 자유, 관용,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 등 6개 항목으로 점수가 집계된다.
한국의 1인당 GNI(국민총소득)는 2020년 3만2000달러로 G7국가인 이탈리아를 넘어섰고, 명목GDP도 1조6240억 달러로 세계 10위권 안으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율(균등화 중위소득의 50% 이하에 해당되는 가구 비율)은 2018년 기준 16.7%로 OECD 37개 국가 중 미국 다음으로 높고, 지니계수(소득불평등 지수로 0은 완전한 평등, 1은 완전한 불평등을 의미)는 0.34로 7번째로 높다.
한국의 2011~2020년 연평균 고령인구 증가율은 4.4%로 OECD 평균 2.6%보다 1.8%p 높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도 2018년 기준 43.4%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연간 노동시간도 2019년 기준 1967시간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 한국 노동자들은 OECD 국가들의 노동자보다 연간 241시간을 더 일하고 있다.
한국은 OECD에서 자살률 1위, 노동시간 1위,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 1위, 소득 불평등 7위, 행복지수 35위다. 우리나라는 양적으로는 전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치켜세울 만큼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삶의 질은 열악해졌고, 경제적 불평등은 심화되었으며, 국민들은 불행해졌다.
북유럽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를 소득이나 복지시스템보다는 경제적 평등과 남과 비교하지 않는 문화에서 찾는 전문가들이 많다. 북유럽은 역사적으로 심각한 계급 갈등을 겪지 않았다. 혹독한 기후와 척박한 토지 때문에 토지생산력이 낮아 노예제와 농노제 발달하지 않았고, 대신 바이킹으로 대표되는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었다. 계층 이동성도 덴마크 1위, 노르웨이 2위, 핀란드 3위 등 세계 최상위권이다.
2020년 국회미래연구원이 개통한 ‘대한민국 행복지도’를 보면 제주도의 행복지수는 1.16점으로 세종시 다음으로 높다. 행복지수는 안전, 경제 등 객관적 지표로 측정되는 행복역량지수와 삶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를 수량화한 삶의 만족도를 합산하여 계산된다. 제주도의 경우 행복역량지수는 0.45점으로 평균 정도지만 삶의 만족도는 0.71점으로 서울의 0.49점, 부산·대구의 0.36점보다 훨씬 높다. 제주도가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이유는 다른 지역에 비해 경제적 불평등이 덜하고 공동체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화와 숲의 나라라고 알려진 북유럽과 세계 보물섬이라고 알려진 제주는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숲이 많다. 또한 경쟁이 일상화된 거대도시가 없고 자연과의 거리도 가깝다.
이는 어느 정도의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 양극화가 덜 한 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연결이 강한 공동체일수록, 자연과 벗하며 사는 삶일수록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학자 피케티(Thomas Piketty)가 말한 세습자본주의가 자리를 잡은 나라, 계층이동의 통로였던 교육에서조차 수저계급론이 공고화된 나라, 강강술래처럼 동반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너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내가 올라가지 못하는 사다리 타기 경쟁을 당연시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는 파이 자체가 커야만 나눌 수 있다는 성장론자의 깃발을 내리고, 모두가 공존하는 공정사회로 걸음을 내딛어야 할 때이다.
그렇다면 제주의 미래비전은 관광과 개발보다는 제주가치와 공존에서 찾아야 한다. 정책목표 또한 투기 환경을 원천차단하고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주는 복지시스템을 구축하여 양극화를 방지하는 것, 불리하고 척박한 자연조건을 이겨냈던 조상들의 공동체성을 새롭게 살려내는 것, 바다·해안·중산간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 특히 핵심 자원인 지하수와 농지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엄격히 보전하는 것 등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정책목표를 실현할 분야는 농업, 농촌이거나 농업·농촌에 발을 걸치고 있다. 따라서 제주 농업·농촌의 비전을 무엇으로 삼을지와 그 비전을 어떻게 실현하는가가 제주사람들의 행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재에 급급한 농업계는 농업·농촌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소홀하다.
코로나로 인해 지금의 시간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코로나가 양적 성장에 매몰됐던 한국의 경제정책 방향을 심각한 불평등·빈곤 문제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바꾸고, 우리 자신들도 ‘넘버원(Number One)’보다 ‘온리원(Only One)’이 되려고 노력하며, 연대의식을 가질 수 있다면 지금의 고통은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다.
필자도 코로나 덕분에 지금까지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상상을 하며, 새롭게 정의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또한 가족, 친구 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하늘, 땅, 생명체 등 내 주변의 모든 것들과의 연대의식을 쌓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립과 단절을 가져온 코로나가 새로운 시선과 연대의식을 일깨워 준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 새로운 길이 열린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코로나가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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