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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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드라곤을 그리며

90년대 초로 기억한다. 우연찮게 친구한테서 책 하나를 건네받곤 날밤 지새웠던 때가. 

'해고 없는 기업이 만든 세상'이란 부제를 단 책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스페인 변방 바스크에서 시작해 반세기만에 100여 개 기업, 수만 명의 조합원이 일하는 몬드라곤협동복합체(Mondragon Corperation Cooperative・MCC/ 스페인 기푸스코아주 몬드라곤시에 본부를 둔 MCC는 시민들이 꾸린 조합 100여개가 모여 글로벌 기업처럼 운영하는 조직)에 대한 기록. 한때 제주에서 '하늘버스협동조합'을 부르짖던 김성오가 번역한 책이다. 

퍽이나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그 무렵 무정부주의에 빠져있던 필자가 제주에도 몬드라곤을 만들자며 너스레를 떨 정도였다. 그래도 흰소리는 아니었다 싶다. 근 30년이 지난 지금 그 친구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필자는 사회적경제를 업(業)삼아 서로 안간힘 쓰고 있으니 말이다. 

몇 년 전 스페인 빌바오에 다녀왔다. 필자를 이 길로 이끌었던 몬드라곤도 직접 가본 건 다시없는 행운. 하지만 잔뜩 기대하고 다가선 바로 그 순간부터 충격 그 자체였다. 그야말로 깨몽(?) 뒤통수를 된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는 척 나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혼났다.

# 이익공유와 임금연대...몬드라곤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들

2003년 몬드라곤에 뒤늦게 합류한 울마(ULMA)그룹. 인구가 1만여 명 남짓인 아담한 시골 온야테(Onate)에 있다. 비닐하우스, 지게차, 포장기계, 건설프레임 등 8개 협동조합이 뭉쳐 만들었다. 그룹 전체 매출이 9000억 원을 넘어선다. 직원은 4500명 정도. 이 가운데 2000 명 이상이 울마에 근무한다. 마을주민 절반이 울마 노동자이거나 그 가족인 셈. 그러니 온야테에서 울마그룹이 갖는 의미는 굉장하다. 몬드라곤 경영대학도 이곳에 있다. 

놀랍다 못해 부럽기 짝이 없던 인터코퍼레이션(Intercooperation, 협동조합 간 수익과 손실을 공유하는 제도). 협동조합 간 협동. 울마그룹은 어떤 조합이 손실이 나면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한다. 울마의 협동조합들은 수익의 30%를 공동기금(Profit sharing)에 우선 적립한다. 이렇게 모아진 기금으로 손실이 난 협동조합에 절반까지 보전해준다.

가령 막대한 손실이 발생한 A조합의 경우, 손실액의 일부를 이 기금에서 먼저 지원받는다. 나머지는 A조합의 몫. 경비를 줄이거나 급여를 삭감하는 등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한다. 남은 기금으론 다른 협동조합들 인건비에 따라 재배분한다. 결국 A조합이 실질적으로 부담할 손실은 큰 폭으로 줄어든다. 다른 협동조합들이 그만큼 수익을 포기하고 A조합 손실을 보전해준 것.

그리고 또 한 가지. 울마의 협동조합들은 수익 일부를 급여연대기금(Wage Solidarity Fund)으로도 불입한다. 그 이유는 그룹 평균보다 낮은 수준의 조합원 급여를 보충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몬드라곤의 모든 조직은 별도로 연대기금(Solidarity Fund)도 적립한다. 다 합치면 수익의 20% 가까이. 개별 협동조합 입장에서는 이익 공유과정에서 수익이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손실이 날 경우에는 3중으로 안전망이 작동하는 것. 이익공유를 통해 손실이 보전되고, 급여연대기금에서 조합원 급여로 보충된다. 마지막으로 몬드라곤 연대기금으로부터도 도움을 받는다. 더구나 이 모든 게 갚아야 할 부채가 아니다. 재정적 부담이 전혀 없다. 어떻게든 손실로 인해 특정 협동조합이 망하거나 그 때문에 실업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막겠다는 의도다.

We are ULMA(우리는 울마다). 사업은 철저히 구분하고 수익은 모아서 연대한다는 Intercooperation, 협동조합 간 협동. 하면 좋은데 우리는 하지 못하는 것. 몬드라곤에서는 너무나 당연시 되고 있었다.

# 우리는 여전히 각개약진 중...고립된 섬으론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팬데믹 한가운데서 모다 어렵다 아우성이다. 살아남기도 힘들다 그런다. 사회적경제기업도 마찬가지. 대표들 만나 속사정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갑작스레 어둡고 긴 터널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 아닌가. 결코 녹록치 않은 길. 감당하기 버거워 주저앉아 버리지 않을까 조바심난다.  

한동안 수렁에서 헤어나질 못했다. 붙잡을 수 없는 뭔가에 매달려 세월만 축내온 건 아닌지. 대체 사회적경제가 뭐냐는 자괴감마저 앞섰다. 입버릇처럼 외쳐대던 연대나 협동은 어디로 갔나. 그저 공염불에 불과했던가. 혼자 되묻기도 여러 번, 하지만 아니다. 함께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해서다. 아프지만 솔직히 인정한다. 다들 각자도생하기 바쁘지 않았던가. 이제라도 바꿔보자. 지역 안에서 같이 뭉치고, 서로 엮고, 한데 모아내자! 더 늦기 전에 새판을 짜자. 지역행동계획(Local Action Plan)을 세우자.

몬드라곤을 다시 본다. 이익공유와 연대임금, 협동조합 간 협동. We are ULMA, 생각할수록 울마가 부럽다. 제주도 어디선가 협동의 싹이 틔우길 기대한다. 우리에게도 언젠가는 연대의 장이 열리길 희망한다. 

어쩌다 보니 속절없이 넋두리(?)만 늘어놓은 꼴이다. 오래전 시민사회에 던졌던 화두를 끝으로 글을 맺는다. 잠시라도 멈춰 서서 새롭게 가다듬어 봤으면 하는 심정으로.

 

시민사회는 여전히 각개약진 중? 

각자는 뛰어나고 조직은 왕성하나 고립된 섬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운동’만 생각하고 ‘생활’은 잊고 있지 않은 지

  ‘사업’만 생각하고 ‘사람’은 잊고 있지 않은 지

  ‘조직’만 생각하고 ‘관계’는 잊고 있지 않은 지

  ‘영역’만 생각하고 ‘지역’은 잊고 있지 않은 지

 

강종우

강종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따르면, 호박벌은 절대로 날 수가 없다. 날개 길이가 몸무게를 지탱할 만큼 길지 못하기 때문. 그런데 호박벌은 날아다닌다. 마찬가지로 통상의 경제학 이론으로는 협동조합은 장기적으로 실패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협동조합을 호박벌에 비유하기도 한다. 2000년부터 근로빈곤층 자활사업이란 말죽은 밭에 빠져 근 20여년간 시민경제를 업으로 삼아온 강종우 센터장. 그가 매달 세번 째 금요일에 연재하는 '호박벌의 제주비상'은 가장 약한고리조차 날아오르는 경제, 불가능해 보이는 희망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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