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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비밥] 법복만 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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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비밥] 법복만 국산?
  • 안혜경
  • 승인 2021.06.18 10: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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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 일본 전범 기업 대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지켜보며
강요배, 4·3연작화 『동백꽃 지다』-미 군정 경찰 39.0×29.0cm 종이에 펜 붓 먹 1990년
강요배. 4·3연작화 『동백꽃 지다』-미 군정 경찰. 39.0×29.0㎝. 종이에 펜 붓 먹. 1990년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판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판사는 정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이고 올곧은 품격이 기대되는 존경의 대상이라고 생각했기에 어린 마음에 근사해 보이는 답을 하고 싶었다.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등 85명이 일본 전범 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서 각하했다. 판결문 내용이 기막혔다. "당시 대한민국이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되는 세계 경제사에 기록되는 눈부신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라니! “분단국의 현실과 세계 4강의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대한민국으로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 세력의 대표 국가 중 하나인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 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된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어떻게 이런 판결문이?

일본 극우들이 자신들을 유럽과 동일시하며 서방이라고 부른다더니 공정한 판결로 강제노역의 한을 풀어야 할 재판부가 얼토당토아니한 안보 외교를 하려 하고 엉터리 경제사로 국민을 모욕하며 가르치려 든다.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의 실상을 검색해봤다. '일제가 1939년 국민징용령을 제정해 전국적으로 700만 명(!)이 넘는 우리 국민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연합뉴스 2019.8) ‘사할린에 끌려온 15만 명의 한인 동포 중 10만여 명이 일본 패전 직전인 1944년 '전환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일본 본토로 이중징용 됐다’(2005년 한겨레 21).

2019년 울산 MBC에서 강제노역 80년을 맞아 제작한 다큐멘터리 2부작 <아버지의 눈물>을 다시 찾아봤다. 이중징용 당한 통한의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미군 공습으로 해외 원자재 공급이 어려워지자 사할린 강제징용노동자들을 일본 본토로 끌고 가 강제노동을 계속 시켰다. 일본이 패망하고 사할린은 소련(러시아)의 영토가 되었고 그곳에 남겨진 아내와 자식들은 이산의 세월을 살아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를 빼앗긴 낯선 땅 사할린에서 고통과 절망과 굶주림과 곤경의 세월을 살아낸 어린 자식들도 이제 백발 성성한 노인이 되었다. 그 광기 어린 시절 이야기를 전하는 그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이 멘다. 삼켜진 말은 이들의 비참하고 공포로 가득했던 비통한 사연일 것이다. 일본에 남겨진 이중 징용자들 또한 기구한 세월을 살아내야 했다.

한 일본인 연구자가 임금 지급 계약이 적힌 문서를 찾아내 읽어주었다. 지켜지지도, 지킬 의지도 없는 약속이었다. 그 문서는 강제노역을 자행한 일본기업에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결정적 증거라고 했다. 보호 장구도 없는 광산 채굴은 상상 이상의 혹독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동굴을 뚫기 위한 위험한 다이너마이트 작업은 조선인들만 했고 광산에 끌려온 사람 중 20%가 사망했다고 한다. 불법적인 강제노동과 무임금의 가혹한 노동이었다.

그 통한의 세월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까? 피해보상과 가해자 법적 처벌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본인 인권변호사 다까기 게이치는 일본기업이 미지불한 임금을 받아내려 애쓰고 있었다. 1965년 국가 간 맺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까지 소멸한 것은 아니다. 지난 정부의 방해를 받았던 대법원은 2018년 일본의 신일철주금에 전 징용공 4명에게 4억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확정판결했다.

그런데 대법원판결도 무시하고 2021년 6월 7일 서울중앙지법 재판부가 강제노역 피해자와 유족들 85명의 손해배상 소송을 각하한 것이다. 이 판사를 탄핵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사흘 만에 20만 명을 넘을 만큼 엄청난 공분을 사고 있다. 공부는 삶의 이치를 이해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라 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던 판사라면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의로운 판결로 강제노역을 겪었던 그 통한의 세월을 조금이나마 위로했어야만했다.

화가 강요배의 「동백꽃지다」 4·3 연작화 중에서 ‘해방이 되었는데 일본 순사 복을 입고 완장만 바꿔 찬 미군정 소속 친일경찰 그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판사들은 완장 대신 법복만 국산으로 바꿔 입은 걸까? 7월에 열릴 전시 《기억의 활주로: 숲의 섬에서 돌의 섬으로》에서 다시 그 강제노역의 흔적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안혜경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예술은 뜬구름 잡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 굳어진 뇌를 두드리는 감동의 영역이다. 안혜경 대표가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예술비밥'은 예술이란 투명한 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엿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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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 대니얼 2021-06-26 05:36:24
해방 이후 76년간 한 맺힌 피해자들에게 '1965년 청구권협정 조문을 살펴보라'고 떠 넘기는 일본 정부, 소수 한국 판사들의 태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다툼의 쟁점은 한 나라의 주권 행위를 다른 나라에서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 '국가면제' 적용 여부라고 봅니다.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에선 '국가면제'를 면죄부로 주기에는 일제 전쟁범죄의 반인권성이 너무 심각하다고 보아 면죄부를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황당한 생각에 젊은 시절 노교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판결문에는 사람의 땀 냄새와 눈물, 고뇌하는 판사의 모습이 들어 있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