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주》김소윤 씀, 은행나무 펴냄
《난주》
김소윤 씀, 은행나무 펴냄

1801년, 순조가 11살로 조선 왕일 때 일이다. 순조 나이가 어리다고 순조 증조할머니 정순왕후가 나라를 다스렸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 100명 넘게 죽이고 400명 넘는 사람들이 유배를 당했다. ‘신유박해’다. 소설 《난주》는 이때를 그린다.

소설 주인공 '정난주'는 유배 당한 정약용 조카다. 정난주 남편 황사영도 천주교를 믿다가 온몸에 수많은 칼질을 하는 끔찍한 아픔을 느끼며 서서히 죽었다. 정난주는 제주도로 유배를 당해서 노비생활을 한다. 젓먹이 아들은 제주도로 오기 앞서 노비생활에서 벗어나라고 추자도에 몰래 떨군다. 어머니와 아들은 37년 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다.

지금은 2021년. 이 소설은 220년 전 일을 썼다.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상민, 노비가 있었다. 정난주는 나라와 임금을 죽이는 일에 함께한 죄로 몰려 제주도 대정에서 종살이를 한다. 정난주는 한양 양반에서, 제주도 관청 노예가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이런 신분제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정난주 집안이 믿었던 천주교는 달랐다.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다고 말한다. 하느님 아래 누가 잘나고 못난 것이 없다고 한다. 정순왕후를 따르던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다.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임금을 임금으로 부르지 않으며 따르지 않는다고 억지 주장을 하며 죽이고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두었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을까.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젊은 사람들이 일을 하다 죽는다. 물론 눈에 보이는 신분제도는 없지만 여전히 일을 하다 죽는 사람은 돈이 없고 권력이 없고 이름도 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난주는 천주교를 일부러 퍼트리려 하지 않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하늘 아래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평범한 진실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이유로 양반에서 노비 삶으로 떨어졌다. 난주는 태어나서 궂은일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제주도에 와선 새벽에 눈을 떠서부터 밤하늘이 깜깜할 때까지 양반들 시중을 들며 살았다. 핍박 받는 백성들 삶을 온몸으로 느꼈다. 조선 신분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뼈 속 깊이 새겼다. 또한 그럴수록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깊어 갔다. 같은 노비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마을 향리들의 학대와 미움과 모함으로 옥살이를 하고, 새끼손가락이 작두에 잘리면서도 믿음을 놓지 않았다.

어쩌면 정난주가 저버리지 않은 것은 천주교만이 아니다. 굶주리고 아파서 죽는 사람들이다. 난주는 양반들 등살에 목숨을 이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집을 짓고 함께 일을 하며 끼니를 이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천주교를 믿게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또 다시 정난주는 살아서 나올 수 없다는 지네굴에 갇힌다. 질긴 목숨을 이어서 37년 만에 아들을 만나지만 한 해를 살다 죽었다. 죽어서야만 평화로운 삶을 얻었다.

2021년에 사는 사람으로서 정난주가 겪었던 삶이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말 그럴까.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에는 4.3항쟁이 있었다. 그 당시 제주도에는 20만 명쯤 살았는데 3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 당시 대통령인 이승만은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 공산주의에 빠진 사람들이니 무참히 죽여도 된다고 했다. 정난주가 살았던 1801년보다 나을 것이 없다. 정난주도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꿈꿨다. 1948년 4월 3일에 항쟁을 일으켰던 제주도 사람들도 남북이 평화롭게 하나 되는 꿈을 꿨다. 나는 난주를 ‘깨어있는 백성’이라고 생각한다. 그 곁에는 깨어있는 양반과 상민, 노비가 함께 있었다. 지금 제주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고, 제주가 자연 그대로 아름다워지는 일은 바로 우리들 손과 발, 마음에 달렸다.

 

은종복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독자들과 만난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