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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이제 성장 아닌 돌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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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 이제 성장 아닌 돌봄
  • 박소희 기자
  • 승인 2021.06.25 0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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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안연구공동체·제주가치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열 번째 시간
백영경 제주대 교수 ‘다른 제주, 시대전환을 위한 과제’ 주제 강연
(사진=박소희)
백영경 제주대 교수 (사진=박소희 기자)

산업화 이후 화석연료를 태워 이룩한 성장중심 사회에 빨간불이 켜진 지 오래다. 미세먼지, 팬데믹, 기후변화 등 지구상에 나타나는 각종 증후가 경증이 아니라 중증이라면, 우리는 어떤 처방을 해야 할까.

23일 오전 10시 제주시 오라동 제주투데이 사무실에서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시민정치연대 제주가치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수요정책 라이브러리’ 열 번째 시간이 마련됐다. 마지막 강연은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가 ‘다른 제주, 시대전환을 위한 과제’를 주제로 진행했다. 

과학기술학, 서양사, 문화인류학, 사회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백 교수는 생존전략으로서 이제 성장이 아닌 돌봄 시대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돌봄은 흔히 보살피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백 교수가 말하는 돌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공간을 확장해야 한다. 

백 교수는 “돌봄은 인간과 비인간, 그리고 지구 자체가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정치·사회·물질·감정적 조건을 제공할 수 있는 개인과 공동체의 능력을 의미한다”며 “개인과 개인의 차원에서부터 개인과 행성의 차원으로까지 다양한 스케일(범위)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가족 간 돌봄이나 시설의 직접 돌봄뿐 아니라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경제, 주거 안정화 정책도 돌봄이며, 화석연료 감축과 녹지공간 확대도 돌봄이다. 즉 ‘대인 돌봄’뿐아니라 타인의 안위를 염려하는 ‘정신적 돌봄’,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정치적 돌봄’ 모두 돌봄 영역에 포함된다. 

백 교수는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자본의 영역으로 축소한 돌봄을 이제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국가가 지속가능한 돌봄 인프라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정책만으로는 개인의 구체적 개별성까지 돌볼 수 없다. 따라서 제도 이상의 것, 선험적 윤리가 아닌 일상적 윤리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전환 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제주에서 논의되고 있는 개발 반대, 돌봄, 생태, 마을에 대한 논의들이 기후위기 시대 사회전환을 위한 논의로 모이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장 가도를 달려온 제주가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하려면 '더 크게 열린 공동체'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렇다면 열린 공동체란 무엇일까.

백 교수에 따르면 공동체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척박한 제주의 경우 협업이 생존 조건이었으므로, 고립·제약 등 협동할 수 밖에 없는 섬의 조건들이 오히려 공동체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는 삶의 조건에 적응한 결과일 수 있다.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 물적 기반, 제도, 무엇보다 일상을 이어주는 많은 실천이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의 내일, 혹은 제주의 가치가 담보된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커먼즈(The Commons: 자원을 장기간 돌보기 위한 사회 체계)와 커머닝(Commoning: 집단적 이익을 위한 공동체의 자원관리를 돕는 사회적 실천들과 규범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공동체 즉 우리 모두에게 속하는 자원을 사유화하고 상품화했다. 제주 역시 국제자유도시라는 미명 아래 청정과 경관까지 자본의 상품으로 소비되고 있다. 

백 교수는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신자유주의 체제가 시작된 이후에는 “존엄과 생명 등 여기까지는 아니지 않나라고 감각하는 것들까지 모두 자본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며 "가령 대학병원 암병동은 인간의 절박함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단적인 예”라고 했다. 

시장은 지역·문화·삶의 방식에 별로 관심이 없지만 지역·문화·삶의 방식은 모든 커먼즈에 필수 불가결하다.

최근 학계 중심으로 등장하는 개념인 커먼즈는 자원이 아니다. 자원과 공동체, 필요한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해당 공동체가 만들어내는 규약·가치·규범들이다. 물·대기·지식·전통·생물다양성·기후 모두 커먼즈다. 

커먼즈는 국가와 시장에 최소로 의존하며 지속가능한 상태로 관리돼야 한다. 이를 위한 실천이 '커머닝'. 커머닝 형태는 커먼즈마다 다르기 때문에 고정되지 않는다고 한다. 

커먼즈 관점에서 백 교수가 말한 더 열린 공동체란 새로운 실천과 현실에 대한 끝없는 재해석이 이뤄지는 장소다. 공정·정의·평등에 대한 사회적 갈망이 실현되는 장소기도 하고, 잘 사는 것 만큼 잘 죽는 법을 고민하는 장소기도 하며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 울창한 숲의 존재가 시장 논리보다 우선하는 장소기도 하다. 

영국의 정치가이자 인문주의 사상가인 토마스 모어가 저술한 ‘유토피아’처럼 어디에도 없지만 있다고 믿는, 현실세계의 이상적 대안에 불과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은 종종 시차를 두고 현실이 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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