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평년보다 늦어지고 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린 뒤에는 유독 폭포들이 장관을 연출합니다. 축축하고 눅눅한 장마를 조금 더 잘 참아낼 수 있는 이유입니다. 제주도의 대표적인 폭포 중 하나가 정방폭포인데요. 동양에서 유일하게 폭포수가 바다로 바로 떨어지는 해안폭포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정방폭포가 제주4·3 당시 서귀포 지역의 최대 학살터였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정방폭포 전경. (사진=신동원)
정방폭포 전경. (사진=신동원)

정방폭포가 있는 지역은 행정구역상 4·3 당시 서귀리에 속했습니다. 서귀리는 면사무소, 군청, 경찰서 등 주요 관청의 소재지였습니다. 서귀포의 행정 중심지였죠. 서귀면사무소에는 군 대대본부가 차려졌습니다. 면사무소에 주둔한 부대가 서귀포 지역의 주력 토벌부대였다고 합니다. 공장이나 창고 등 규모가 있는 건물들도 꽤 있었다고 하는데요. 토벌대는 이 건물들을 주민들을 가두는 수용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정방폭포 인근에도 전분공장, 단추공장, 통조림공장 등이 있었는데요. 이 공장들도 수용소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정방폭포 일대에서 희생된 주민들은 대략 26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서귀리 뿐만 아니라 대정면, 안덕면, 표선면 등 한라산 남쪽 지역의 주민 중 토벌대를 피해 몸을 숨겼다가 붙잡히거나 혐의자로 분류된 사람들이 서귀리 창고로 붙잡혀 왔다고 합니다. 잡혀 온 주민은 혹독한 취조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대부분 ‘즉결처형자’로 분류되어 정방폭포와 바로 옆 소낭(남)머리 일대에서 희생되었습니다. ‘처형’은 폭포 위에서 총을 쏘아 절벽 아래로 떨어트리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소낭(남)머리 일대 전경. (사진=신동원)
소낭(남)머리 일대 전경. (사진=신동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만큼 비통한 사연이 많은데요. 당시 남원면 신흥리 주민들이 억울하게 희생된 사건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이 쓴 <4·3은 말한다>에 따르면, 1948년 12월, 불과 며칠 사이에 70여 명이 희생된 소위 ‘홀치기 사건’이 발생합니다. 12월 14일께 토벌대는 민보단 조직 개편을 핑계로 신흥리 1, 2구 주민들을 집결시키곤 약 40여 명의 주민들의 이름을 호명해 끌고 갔습니다. 

또한 이즈음에 신흥리 주민 30여 명이 남원경찰지서로 자진해서 찾아갔습니다. ‘과거에 조금이라도 잘못한 게 있다면 자수해라, 그러면 용서하고 양민임을 인정해주겠다’는 토벌대 측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원경찰지서로 끌려간 주민들은 12월 20일부터 불과 수일 동안에 남원경찰지서 인근 밭에서 희생되거나 서귀포경찰서로 넘겨져 정방폭포 인근에서 집단총살되었습니다. 

‘홀치기’는 갈고리 모양의 낚싯바늘이 여러 개 달린 낚싯줄을 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놓아 흔들면서 물고기 몸에 낚싯바늘을 걸어 낚아채는 낚시 방법입니다. 토벌대가 죄 없는 주민들을 낚아 학살하고 마치 적을 사살해 전과를 올린 것처럼 꾸민 사건을 이 낚시법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러한 학살극은 기존에 제주에 주둔했던 9연대가 대전에 있는 2연대와 임무를 교대하면서 2연대보다 높은 전과를 올리기 위해 무차별적인 ‘작전’을 전개한 것입니다. 당시 미군 비밀보고서(주한미군사령부 1948년 12월 24일자 G-2 일일보고서)에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새로 조성된 정방폭포 4·3유적지 안내판. (사진=신동원)
새로 조성된 정방폭포 4·3유적지 안내판. (사진=신동원)

제주다크투어는 지난해 9월 <제주지역 다크투어 유적지 안내판 조사보고서> 발간을 위해 정방폭포를 찾은 바 있습니다. 당시 정방폭포에는 ‘관광지’로서의 안내판만 설치되어 있었는데요.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학살터에 단 한 줄의 설명도 없다는 점을 보고서를 통해 지적했었습니다.

지난 5월 말 다시 찾은 정방폭포에는 제주4·3 유적지 안내판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폭포로 내려가려면 꼭 지나가야 하는 위치에 세워져 있었는데요. 안내판에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내용도 충실히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3년 전에 결성된 정방유족회가 열심히 활동한 결과일 것입니다. 거기에 우리 제주다크투어도 한 손 거든 것 같아 괜스레 뿌듯해졌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유적지에 안내판이 설치되길 바라며, 정방폭포와 관련된 시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정방폭포에서 

김경훈

정방폭포 아래 바다 속에는
죽창으로 찔리고 총맞아 절벽 아래로 떨어진
4·3에 죽어간 시신들 여럿 있었다네
물고기와 게들이 뜯어먹다 남은 유골에는
시뻘건 해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네
학살터 땅에서 자란 고구마가 목침만큼 커졌다 하듯이
바다 속 뭇 생명들도 난데없이 살이 붙었다 했다네
국가라는 이름의 살인집단이
국민들을 표적삼아 살인연습을 했다네
언제나 그렇듯이 토벌대라는 이름의 학살기계들은
적군을 추격하기는 버거워하면서도
제 나라 국민 도륙하는 데는 신바람 낸다네
이들 중 누구하나 책임지거나 처벌받는 일 없이
4·3의 역사엔 가해자는 늘 산쪽에 있었다네
그 산쪽에 숨었다가 잡혀온 사람들이
여기 죽어 바다에 수장되었다네
정방폭포 아래 바다 속에는
아직도 비명인 듯 호곡소리가 들린다네
해삼 먹은 관광객들의 뱃속에도 
절규인 듯 파도가 몰아친다네

신동원.
신동원.

신동원. 
비생산적인 지식이 정말 재밌는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청년. 철학과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 관심이 있다. 남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을 동경한다. 지금은 비영리단체 ‘제주다크투어’에 적을 두고 있다. 다크투어란 전쟁이나 테러, 재난 등 비극적 역사 현장을 찾아 성찰을 얻는 여행이다. 제주에는 신축항쟁, 일제강점기, 4·3 등과 관련한 유적이 600~800곳에 이른다. 매달 한 차례에 걸쳐 아프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품은 곳들을 안내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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