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흑수박. (사진=김연주)
7월 뜨거운 태양 아래 폭풍성장하기 시작한 토종흑수박. (사진=김연주)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니 수박이 한 덩이 사고 싶어진다. 마트나 생협매장에는 벌써 커다란 달덩이 같은 수박이 많이 나와 있다. 커다란 수박을 냉장고에 두었다 시원하게 먹으면 더위도 가시고 무엇보다도 힘이 불끈 솟는 것 같아 종종 먹게 된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기 전인데도 벌써 여러 덩이의 수박을 먹었다. 크고 달달하고 맛있는 수박을 말이다. 하우스에서 연중 재배가 가능하다고 하니 적당한 비용만 지불하면 우리는 언제든 먹고 싶을 때 맛있는 수박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종종 먹게 된다. 

그러나 제주도 신엄수박은 아직 본격적인 출하가 되기 전이다. 아직은 한참 성장 중이니 보름 이상은 더 성장해야 시장에 나오지 않을까? 그나마도 장마를 잘 피해야 제대로 수확을 할 수 있을 테다. 해마다 장마와 겹쳐 고전을 면치 못하는 수박 농가는 그저 하늘을 보면서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니 장마 전후로 노지 수박도 수확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장마가 지나고 나면 수박은 이제 거의 끝물이다. 

이에 반해 자연재배 수박은 이제 막 자리 잡아 자라기 시작했다. 빠르면 7월 말경 수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수박은 지온이 충분히 오르는 6월 정도가 되어야 성장이 본격적이다. 그 전에 심는다 해도 비닐멀칭을 해 주거나 하우스재배가 아닌 경우는 성장이 멈춰 잘 자라지 않는다. 

토종흑수박. (사진=김연주)
열매를 달고 태양 에너지를 맘껏 저장하고 있는 토종흑수박 열매. (사진=김연주)

7월 말이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는 시기이고 뜨거운 태양 아래 수박덩이도 점점 몸집을 키운다. 태양의 에너지를 온몸에 저장한 수박덩이는 적당히 달달하고 적당히 수분이 있어 그 태양의 에너지를 우리에게로 옮겨주기에 충분하다.  
 
겨울철 과일의 대표 자리를 귤이 딸기에게 내 준 지 오래다. 참외도 일년 내내 먹고 싶을 때 언제든 구매가 가능하다. 제주도에서 주로 생산되는 귤도 이제는 일년내내 종류별로 시장에서 볼 수 있다. 한라봉을 비롯한 각종 만감류가 얼마 전까지 시장에서 판매되더니 이제는 하우스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덕분에 농사를 전혀 짓지 않는 소비자들은 제철이 언제인지 도통 모른다. 

당근을 사 먹는 소비자에게 ‘지금 당근은 저장 당근이라 상태가 최상은 아니’라고 하면 깜짝 놀란다. 제주도 당근이 수확한 지 적어도 5개월 이상 지났고 따라서 저장 기간이 5개월 정도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근은 바로 수확했을 때의 상태를 소비자들은 또한 원하게 된다. 

작년에는 수확을 기다리던 수박이 세 번의 태풍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예약판매를 해 놓고 바로 출하를 앞 둔 시점에서 수박 줄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마지막 영글기 작업을 못한 수박은 출하를 포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비단 자연재배 수박만이 아니라 노지 재배는 이런 자연재해의 영향 아래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점점 더 비닐하우스 농사를 선호하게 된다. 세 번의 태풍을 경험한 그해에는 유독 비닐하우스를 해야겠단 목소리가 높았다. 무화과 농가도 한 알의 무화과를 수확하지 못하고선 대책을 비닐하우스로 세우고자 했었다. 

토종흑수박. (사진=김연주)
조금 덜 익은듯한 토종흑수박. 제대로 된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김연주)

이렇듯 노지 제철 농사가 어려우니 모두들 하우스 농사를 선호하게 되고 더더욱 석유에 의존하게 된다. 허나 분명한 건 뜨거운 태양 아래 제힘으로 자란 수박이 하우스 안에서 난방기구에 의존해 자란 수박보다 더 건강한 수박임에는 틀림없다. 

언제든 손만 내밀면 잡을 수 있는 수박이 내 입의 달콤함을 충족해 줄 수는 있겠으나 우리 몸에 얼마나 건강을 선사해 줄지는 의문이다. 제철 농산물을 먹자는 구호는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겠으나 우리는 이 구호를 실생활에 가져와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구태여 말하지 않더라도 지속 가능한 농업을 고민하는 농민이라면 말이다.  

더불어 소비자에게도 가능하면 제철에 한 두 번 제철의 맛을 음미하며 소비하시길 당부하고 싶다. 태양의 에너지를 듬뿍 머금은 수박 한 덩이를 찬물에 담갔다가 모깃불 피워놓고 마당 평상에서 먹던 그 수박 맛을 상상해보라. 그 귀함과 소중함을.

김연주.
김연주.

전업농이 된 지 3년 차. 농민으로 살면서 느끼는 일상을 가볍게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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