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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우다] 이 많은 욕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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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우다] 이 많은 욕들은 다 어디서 왔을까
  • 에밀리
  • 승인 2021.06.28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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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에는 고민해 봐야할 욕(辱)들이 있다. 특히 존재 자체가 욕이 되는 현상에 주목해보고 싶다. 쉽게 떠오르는 건 '개새끼', '돼지', '병신' 등…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병신’이라는 말은 ‘모자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가진 욕인데, 이런 욕을 하게 되면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생각지도 못한 구조적 폭력을 가져오게 된다.

병을 앓는다거나 장애를 가진 것은 모자란 일이 아니니까 이 말이 욕이 되는 것 자체가 차별이다. 마찬가지로, 비인간생명체의 명칭을 욕으로 사용하고 욕으로 받아들이는 인간의 모습도 (부끄럽게도 때로 나 자신의 모습) 낯설지 않다. 사소한 것 같지만 진지하게 한 번 생각을 해보면, 그런 욕이 만연한 현상은 비인간생명체를 향한 인간의 우월의식이 뼛속까지 스며든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구조적 폭력인 셈이다. 

내가 알아듣지 못했던 욕을 하나 소개해 본다. ‘비국민’이란 말이 욕이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게 익숙한 한자의 뜻으로만 그냥 해석하면, 비국민은 ‘국민이 아닌 사람’이란 뜻일 뿐이다. 나도 여기 한국에서는 국민이 아닌데, 국민이 아닐 수도 있지 뭐... 그런 생각이 들지만, 이주분야 인권공부모임을 함께 하는 동료 중에  일본에서 15년 동안 살다온 친구한테서 일본에서는 그 말이 욕으로 사용된다고 들었다.

일본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추측만 해 볼 뿐이지만, 만약 ‘비국민’이 욕이라면, 반대로 ‘국민’이란 말은 칭찬 혹은 한 단계 급이 높은 찬양 쯤 되지 않겠나 싶다. 비국민이 욕이라니, 국민 우월의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제주에 있는 어느 사회운동 현장에서 ‘외부세력은 떠나라’는 현수막을 만나게 되었다. 소위 ‘원주민’이라는 몇명 사람들이 사회운동, 연대활동을 하면서 제주에 살고 있는 이주민과 방문자를 외부세력이라고 (비하하는 마음으로?) 지칭한다. 주변의 많은 이주활동가 친구들과 사회 분위기 자체가 ‘외부세력’이라는 용어를 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이다. 

어느 이주활동가 친구가 “역사교과서에서나 나오는 ‘외세’라는 말이 자신에게도 적용될 줄 몰랐다”며 “기가 막힌다”고 말한다. 열심히 신념을 지키며 살아도 외부세력이라고 욕을 먹는 지킴이들. 사회운동을 하는(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려는) 이주민을 향한 혐오 분위기에서 이런 말과 글들을 접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외부세력이 대체 뭘까? 사람들은 외부세력이 되기 싫은 걸까? 나무위키에서는 ‘해당 지역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해당 지역에 관여하는 행위’라고. 정의하던데, 그렇다면 욕은 커녕 지구 사람의 당당한 권리와 의무가 아닐까? 외부세력이라고 할 때 곧바로 욕으로 생각하고 혐오와 연결하는 당연함은 무엇을 의미할까? 해당 지역사람이 아니라면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해당 지역에 관여하는 행위는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는 뜻이 될까? 궁금하다.

내부세력을 우선순위에 두는 정당성을 무의식적으로 치켜세우고 있는것은 아닌지 고민이 된다. 이런 발상은 평등해 지려면 귀화를 하라는 말과 연결된다. 또 외부세력이라고 판단된 외국인이면 추방을 해도 그것은 국가주권의 행사라고 하는 당당함과 연결이 된다. 대체 누가 그 많은 친구들을 이 나라에서 추방했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추방하는 그들의 당당함은 누가 만들어줬을까? 혹시 나일까? 아니면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아닐까?

그렇게 관찰을 해보면 많은 경우, 욕을 하는 쪽이든 욕을 듣는 쪽이든 욕을 먹는 사람에게 향하는 개인적 폭력을 작동시키려면, 그 말이 먼저 욕이 되어야 했다. 즉 욕으로 만들어진 구조적 폭력이 바탕에 깔려있다는 말이다. 욕을 통해 치욕을 주려면 그 가치관, 그 ‘치욕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공감이 되고 사회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인 것 같다. 그것은 편견, 혐오, 차별이 내면화된다는 소리다. 그런 억압의 내면화 과정 없이는 ‘욕’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테니 폭력도 작동될 수 없다.

그렇게 보면 욕의 문화에서는 상호적인 억압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다. 어떤 말을 욕으로 사용할 때, 혹 사용하지 않지만 그 말이 욕으로 들릴 때,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것이 되고, 그러한 억압은 개인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다 작동되고 행사됨으로써, 억압을 받으면서 동시에 억압자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동료들이 스스로 외부세력이란 말을 욕으로 여기는 광경을 마주하고  이상하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든다.  

원래 폭력은 가까운 사람들한테서 당하게 될 때 더 아프고 끔찍하다. 그래서 그런지 가까운 동료들이 외부세력이란 욕을 먹고 모욕감을 느끼는 광경을 목격하는 나의 마음은 더 복잡하고 찔린 것 같다. 정말 나의 해방이 너의 해방일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욕’을 통해 배우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 암시적 차별이라는 것은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법이니 이 자리를 빌려 어렵게 말을 꺼내 본다. 

 

에밀리
에밀리

글쓴이 에밀리는 대만 출신이다. 제주에서 정착하기 전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그랬고, 지금 제주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제주에서 아이를 낳았다.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거의 다 쏟아붓는 일상 속에서 제주의 '인간풍경'을 글에 담고자 한다. 이 땅의 다양성을 더 찬란하게, 당당하게 피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매달 마지막 주말에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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