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바람에 물결을 타듯 출렁거리는 용눈이오름 능선이 이채롭다.
녹색 바람에 물결을 타듯 출렁거리는 용눈이오름 능선(제주투데이 DB)

‘춤은 곧 자연이다’
몇 년 전에 작고하신 예인 이매방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오래전, 우리 춤의 동작을 익히다 춤의 선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 곡선으로 되어 있을까? 깊은 생각에 잠길 즈음, 가을 들녘에서 문득 산들바람이 연주하는 리듬에 몸을 움직이는 가느다랗게 위로 쭉 뻗어 있는 들풀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누군가가 다가가서 손으로 뚝 잘라 버리면 그만인 여리디여린 생명체가 거칠고 매서운 대자연의 광풍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생존방법은 무엇일까? 그들을 유심히 관찰해보니 바람의 방향에 몸을 맡기듯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순간, 우리 춤의 곡선미는 자연을 모방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인위적 건축물을 제외하고 풀잎, 능선 등 자연의 유기체들은 곡선으로 이루어 서로 조화롭게 살고 있다. 바람과 물의 흐름도 직선이 아닌 곡선이다. 자연은 끝없는 순환의 연속이다. 멈춘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흘러가는 총체적 곡선의 유기체이다. 그 속에서 생존방법을 연구했던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지배하려 한 서양인들과는 다르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택했다. 이런 조상들의 생각이 전통춤의 곡선미에 그대로 드러나는 듯하다.

우리 춤은 내면적 정신과 몸의 일체를 강조하며 자연의 흐름, 즉, 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곡선을 그린다. 춤에서 기는 곧 호흡을 의미한다. 곡선미는 팔 동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팔을 일직선으로 쭉 뻗기보다 지평선처럼 약간의 곡선을 만들면서 양쪽으로 펴며, 위로 올릴 때도 곡선의 형태를 만든다. 왼팔과 오른팔을 펼쳤다가 위아래로 접었을 때의 동작은 동양사상의 음양오행인 태극을 상징한다. 손을 펼치고 뒤집기를 할 때도 곡선을 그린다. 들숨 날숨 호흡을 할 때도 하복부에서부터 곡선을 그리며 끌어올린 후 천천히 내쉰다. 

이는 서양 춤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외형적 요소를 중시하는 것과는 달리, 인격, 사상, 마음 등 내면의 세계와 육체가 하나가 되는 동시에 자연과도 하나가 된 상태, 즉, 무념무상의 상태를 중요하게 여기는 전통춤의 근원적 특징인지도 모른다. 호흡을 통해 주변의 ‘기’들과 하나가 되면서 춤을 추어야 신명 나는 춤을 출 수 있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춤의 멋과 맛을 제대로 살려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면 폭넓은 사고,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주변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하는 끊임없는 인격적 수양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연적인 삶, ’도‘이고, 우리 춤의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춤은 자연이다’라고 한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는 거 같다. 살풀이 선생님께서 나에게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껴 보았냐고 질문했을 때 대답 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춤을 추고 있지만, 무아지경에까지 가 보지 못했고 인격 수양이 부족한 탓인지도 모른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팬데믹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팬데믹을 극복하고 있는 이유도 우리 조상들이 추구한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려고 했던 자연적인 삶의 원형이 움직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삶의 방식에도 직선과 곡선이 존재한다. 경쟁과 이기심에 남보다 먼저 가려고 하는 고속도로 같은 삶과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오솔길 같은 삶이다. 고속도로는 직선 코스가 많고, 오솔길은 구불구불하다. 주변환경과 동떨어져 딱딱하고 직선적인 느낌의 고속도로에 비해 오솔길은 정답게 누군가와 함께 걷고 싶은 정겨운 길이다. 느리지만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어서 편안함을 주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하다.

자연적인 삶은 오솔길 같은 삶이 아닐까? 문명과 떨어져 자연에서 살아가지 않더라도 이기심과 경쟁심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려고 하는 삶. 편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곡선처럼 부드러운 사고를 갖고 살아가는 것도 자연적인 삶일지도 모른다.

 

양정인

뒤늦게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한 양정인씨는 전문 무용가가 아니라 춤을 즐기는 춤꾼이다. '방구석 노인'이 아니라 '푸릇한 숙인'이 되고 싶은 그에게 춤은 삶의 전환점이 됐다. 춤은 끝없이 익히는 과정이다. 그가 점점 겸손해지는 이유다. 춤에서 배운 이치를 가르치는 아이들과 나누기도 한다. 배움과 가르침이 뫼비우스의띠처럼 연결되는 세상은 이야기가 춤추는 교실같다. 독서지도사이기도 한 양정인의 '춤추는 교실'은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제주투데이 독자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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