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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스밍]서민의 물고기, 고등어를 향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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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스밍]서민의 물고기, 고등어를 향한 음악
  • 강영글
  • 승인 2021.06.30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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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의 네 번째 앨범 레 미제라블.
루시드폴의 네 번째 앨범 《레 미제라블》.

제주 바다가 한치 배의 불빛으로 가득하면 여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땀이 너무 많아 더위와 장마를 너무나도 싫어하는 나에게 한치는, 여름을 기다리는 몇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다. 가족을 비롯하여 친구들도 내가 한치를 좋아하는 걸 알기 때문인지, 최근 한치를 맛있게 먹었다며 자랑하듯 연락이 온다.

제주의 여름을 대표하는 물고기가 한치라면, 전국적으로는 민어가 대장이다. 제주 수산시장에 종종 볼 수 있는 민어는, 옆에 놓인 은빛 갈치에 비하면 제주도민에겐 관심 밖의 물고기인 듯하다. 민어보다 더 맛있는 물고기가 많이 있어서 그런걸까.

민어(民魚)는 백성 ‘민’과 물고기 ‘어’를 쓴다. 자산어보에는 면어(鮸魚)로 언급되어 있고 여기서 발음이 변형되어 민어로 불렸다는 설도 있지만, 아무튼 여름철 민어의 가격을 보자면 백성의 물고기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값비싸고 귀한 물고기이다.

우리가 진정 백성의 물고기라고 부를 수 있는 물고기는 바로 ‘고등어’가 아닐까? 전국 어디에서나 사시사철 저렴한 가격으로(물론 이전에 비하면 가격이 다소 오르긴 했지만)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이 물고기야말로 진정한 서민의 물고기이자, 밥반찬이자, 술안주다. 구이는 물론 조림으로도 제 역할을 다하는 고등어, 그렇기 때문에 이 서민의 물고기를 다룬 음악 역시 여럿 되고 우리에게 익숙하게 들려왔다.

2008년 독특한 콘셉트의 곡 ‘슈퍼맨’으로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노라조’가 이듬해 여름, ‘고등어’라는 곡을 발표했다. ‘슈퍼맨’과 비교하자면, ‘고등어’라는 곡에서 음악적 시도나 구성의 변화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의 캐릭터를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녹임으로써, ‘고등어’가 갖는 신선함과 활기를 더하였다. 특히, 세계 최대의 수산시장 중 하나인 노량진 수산시장을 배경으로 선보인 MBC <쇼! 음악중심>에서의 퍼포먼스는 아직도 전설로 회자된다(유투브에서 쉽게 검색하여 볼 수 있다).

'슈퍼맨'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배경으로 '고등어' 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MBC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슈퍼맨'이 노량진 수산시장을 배경으로 '고등어' 공연을 하는 모습. (사진=MBC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밴드 산울림의 중심이자 연기자로도 유명한 김창완의 <김창완 - 기타가 있는 수필(1983)> 수록곡인 ‘어머니와 고등어’는 (바나나우유 제품 CF에도 사용이 되면서) 물고기를 다룬 음악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익숙한 음악일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사랑을 추억하는 이 곡의 가사는 이제는 보기 드문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은 진공포장된 간고등어를 사다가 구워 먹는 게 대부분이고, 가족과 멀리 떨어져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에 고등어를 혼자 구워 먹는 것은 부담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도 이 곡을 듣고 있으면, 이런 추억이 없는 사람들도 냉장고 안 소금에 절인 고등어와 주무시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질 것이다.

물고기를 다룬 음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루시드 폴’의 ‘고등어’이다. 2009년 발매한 <레 미제라블> 앨범의 수록된 이 곡은 위에서 서술한 두 곡과는 달리 고등어를 화자로 한다. 이 곡은 따뜻하고 시적인 가사로 2000년 이후 발표된 가요 중 노랫말이 가장 아름다운 곡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몇 만원이 넘는다는 서울의 꽃등심보다 맛도 없고 비린지는 몰라도, 그래도 나는 안다네 그동안 내가 지켜온 수많은 가족들의 저녁 밥상’이라는 가사를 듣자면 우리는 당연히 고등어에게 고마워해야 할 테지만, ‘가난한 그대 날 골라줘서 고마워요’라며 되려 우리에게 고맙다고 얘기한다. ‘수고했어요, 오늘 이 하루도’로 마무리되는 이 음악의 가사를 통해 심지어 고등어에게 위로까지 받는다. 

물고기가 흔해 옥돔이 아니면 생선 취급을 받지 못하는 제주도 바다에서, 고등어는 감사하게도 우리가 배불리 먹을 수 있게 오늘도 깊은 바다를 가른다. 앨범 <레 미제라블>은 ‘고등어’의 마음처럼 누군가는 나를 향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음을 얘기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스한 위안이 되는 아주 감사한 앨범이다. 

아티스트 ‘루시드 폴’은 어쩌면 위안이 필요한 것이 평범하게 된 이 시기에 빛과 소금과도 같은 음악을 이미 우리에게 선물했고, 자신의 음악을 들어줘서 고맙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이 음악을 들으면서 위안을 받고, 나도 누군가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나에게 가장 처음으로 기억되는 물고기 음악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어린이집 다니던 시기에 주말 아침 골목에서 정겹게 울리는 생선 장수의 음악인 것 같다. 당시엔 늦잠을 방해하는 소음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그리워해도 들을 수 없는 멜로디이다. 그래도 그 멜로디는 귀에 여전히 맴돌고, 따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멜 삽서~ 멜! 갈치 삽서~ 갈치!”. 지금도 과일장수와 생선장수 트럭 확성기에서 나오는 음악은 종종 들을 수 있지만, 어렸을 때 들었던 제주 골목 민요의 멜로디만큼 정겹지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때를 그리워하는 짭조름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강영글.
강영글.

잡식성 음악 애호가이자 음반 수집가. 중학생 시절 영화 <School Of Rock(스쿨 오브 락)>과 작은누나 mp3 속 영국 밴드 ‘Oasis’ 음악을 통해 ‘로큰롤 월드’에 입성했다. 컴퓨터 앞에 있으면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이유로 컴퓨터과학과 입학 후 개발자로 취직했다가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기획자로 전향. 평생 제주도에서 음악과 영화로 가득한 삶을 꿈꾸는 사람. 

 

한 달에 한 번 제주와 관련된 음악을 이야기합니다. 가끔은 음식, 술, 영화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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