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당터에 세워진 기념물 (사진=고진숙)
광양당터에 세워진 기념물 (사진=고진숙)

예전에는 제주시를 성안이라고 했다. 둘레 3㎞ 정도의 제주읍성이 둘러쳐진 곳이기 때문이다. 이 성은 일제가 산지항을 대대적으로 확장보수하면서 성담의 돌을 전부 가져다가 쓰는 바람에 사라졌다. 대신 동문, 서문, 남문과 같은 이름만 남았다. 

그런데 성안에 또 다른 성의 이름이 남아있다. 그것이 무근성이다. 묵은성이란 뜻이므로 제주 읍성보다 오래된 성이 분명하다. 그렇다. 그곳이 탐라국성이 있던 곳이다. 

탐라국을 다스리는 지배자는 성주였다. 이 성주는 성곽의 주인인 성주(城主)가 아니라 별의 주인인 성주(星主)다. 신비한 고대왕국 탐라국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성주라는 말은 고을나의 15대손인 고후, 고청, 고계 삼형제가 통일 이후의 신라를 방문했을 때 남쪽하늘에 객성이 떴고, 이것을 상서롭게 여긴 신라왕이 세 형제에게 각각 성주, 왕자, 도내라는 칭호를 내리면서부터라고 한다. 아마도 원래 있었던 칭호를 인정, 승인해준 것으로 보인다. 이때 탐라라는 이름도 정식으로 정해진다. 그전에는 탁라, 섭라, 탐모라 등 아마도 들리는 대로 불렀던 듯하다. 

탐라국의 궁은 현재의 관덕정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이 앞에는 제주 사람이라면 다 아는 오랜 도심의 번화가 칠성통이 있다. 칠성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이곳에 북두칠성을 본 따 150m 내외의 간격으로 지름 20m 정도나 되는 일곱 개의 높은 대를 쌓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칠성대라고 한다. 탐라국을 세운 세 부족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는 이 칠성대를 경계로 해서 각각 이도, 일도, 삼도에 나눠서 살았다고 한다. 이때는 대략 서기 400년 전후일 것으로 보인다.

밤하늘에 있는 별 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별이 ‘북두칠성’이다. 북두칠성은 1년 동안 하늘에 늘 떠 있어서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언제든 볼 수 있다. 달력이 없던 시대에 사람들은 이 별을 이용해서 계절을 가늠했고, 파종과 추수시기를 짐작했다. 초저녁 해가 질 무렵 북두칠성의 국자자루 끝은 봄에는 동, 여름에는 남, 가을에는 서, 겨울에는 북쪽을 향한다.  

이런 식의 천문달력은 서양에도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처녀자리에 있는 별이 일출직전에 동쪽 지평선 위에 처음으로 나타나면 포도의 계절이 시작된다. 이 별의 이름도 포도 따는 여인의 별이다. 이집트에서도 시리우스별이 해뜨기 직전에 동쪽 지평선 위에 나타나면 나일강이 어김없이 범람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하늘이 선물하는 풍요의 약속이었다. 제사장은 이 비밀을 알았던 까닭에 오랫동안 호의호식했다. 

 

탐라국성의 위치는 대략 점선 안으로 여겨진다. 뱃길로 외지로 나가는 것도 쉽고 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천연요새이다. <br>보라색 점은 칠성대가 놓였던 자리이다.  <br>1은 탐라국 왕궁인 성주청이 있었던 자리로 목관아 바로 옆이다.   <br>2는 왕실이 문무백관과 조회하는 월대로 관덕정 뒤이다.  <br>3은 광양당이다.  <br>4는 모흥혈로 조선시대에 삼성혈로 이름이 바뀐다.조선은 유교국가였으므로 탐라국의 흔적을 전부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유교식 건물을 지었다. 성주청이 있던 자리엔 목관아가, 월대가 있던 자리에는 관덕정을 세웠다.
탐라국성의 위치는 대략 점선 안으로 여겨진다. 뱃길로 외지로 나가는 것도 쉽고 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천연요새이다.
보라색 점은 칠성대가 놓였던 자리이다.
1은 탐라국 왕궁인 성주청이 있었던 자리로 목관아 바로 옆이다.
2는 왕실이 문무백관과 조회하는 월대로 관덕정 뒤이다.
3은 광양당이다.
4는 모흥혈로 조선시대에 삼성혈로 이름이 바뀐다.
조선은 유교국가였으므로 탐라국의 흔적을 전부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유교식 건물을 지었다. 성주청이 있던 자리엔 목관아를, 월대가 있던 자리에는 관덕정을 세웠다.

탐라국 성주는 북두칠성의 모양을 보고 때를 가늠해서 씨앗의 파종 날을 정해주고, 동물들의 번식기를 피해 사냥을 시작하고 끝내도록 한다. 이 특별한 날의 행사들은 칠성대 위에서 벌였을 것이다. 깜깜한 바다위에서 방위를 잃지 않는 것은 북두칠성 때문이다. 북두칠성을 이용해서 북극점을 찾는 것은 지금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북극성이란 별이 떡하니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라국의 시대엔 그렇지 않았다. 당시 북극점 위에는 별이 하나도 없었고, 주변의 별들도 희미했다. 수많은 별들이 흩뿌려진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이용하여 북극점을 찾아내고 계절을 가늠하는 이 달콤한 비밀은 성주가문만이 독점했다. 

탐라 성주는 이 특별한 권능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칠성대를 쌓았다. 북두칠성의 7번째 별의 연장선위에 북극점이 있듯이 칠성대의 7번째 별을 따라가 보면 탐라건국신화에서 탐라국을 만든 삼을나가 태어난 구멍이 나온다! 바로 모흥혈이다. 

북극점은 움직이지 않는 단 하나의 중심이다. 모든 별은 북극점을 중심으로 돈다. 그러므로 모흥혈에서 나온 삼신인은 저 멀리 우주의 중심에서 내려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별을 지배할 수 있었고 성주가 될 자격을 가진 것이다. 얼마나 멋지고 자신감 넘치는 세계관인가. 우주의 중심과 통하는 왕이라니. 어찌 별의 주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조선의 건국 이후 탐라라는 말은 유교적 가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기 때문에 금기어의 반열에 올랐다. 조선을 국호로 하면서 단군사당마저 금기였는데 하물며 변방의 탐라신화가 용납 될 리 없었다. 결국 탐라국의 건국시조들이 나온 모흥혈은 한낱 세 가문의 시조설화로 강등시켜서 삼성혈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우주의 중심은 중국이었기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일은 오로지 중국의 천자만이 가능한 일이었다. 칠성대는 방치되며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다가 우리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일제에 의해 완전히 철거되었다.

하지만 탐라의 후예들은 여전히 신화를 보존했다. 그곳이 삼성혈 바로 앞에 있는 광양당이다. 그곳에선 탐라국을 만든 신들이 아직도 좌정하여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 있다. 삼을나 신화는 살아있는 신화인 것이다. 

 

덧말 : 북극점
북반구에서 지구의 자전축위의 하늘을 북극점이라고 한다. 지금 이곳에는 북극성이 있다. 북극점 바로 위에 이렇게 별 하나가 딱 있는 것은 2만6000년만의 일이다. 지구는 북극점을 축으로 자전을 하는데 자전축이 팽이축이 돌 듯 빙글빙글 돌기 때문이다. 이걸 세차운동이라고 한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북극점은 북극성에서 점점 멀어지다가 2만6000년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탐라국 건국 당시 북극점에 가장 가까이 있던 별자리는 기린자리로 여기서 가장 밝은 별도 현재의 북극성보다 6배 이상 어두운 별이다. 잘 보이지도 않는데다 정확하게 하늘의 북극점위의 별도 아니다보니 생각해낸 것이 가상의 별자리이다. 가령 당나라의 천문학자들은 기린자리 이 별과 그 주위에 4개의 별을 합쳐서 북극오성이라는 별자리를 만들었다. 당시 북극성이 북극점 위의 점이 아니라는 것은 탐라국 성주에겐 대단히 유리했다. 왜냐하면 가상의 별자리를 만들어도 되기 때문이다. 북극점위에 3개의 별이 있다는 걸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고진숙

고진숙 작가

고진숙 작가는 용눈이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제주 밖에서 바람처럼 살았다. 지금은 일 년의 절반을 제주에서 보내는 반서(울)반제(주)인이다. 역사동화 '이순신을 만든 사람들'을 시작으로 최근 '청소년을 위한 제주 4.3'까지 다양한 역사콘텐츠들을 쓴 고 작가. 매월 첫째주 수요일 독자들과 만나는 [제주예썰]은 고진숙 역사작가의 눈으로 제주가치를 재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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