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동백동산으로 자러 가는 새누와 뒤이어 배웅해주기 위해 함께 동백동산 입구로 향하는 볍씨학교 학생들(사진=볍씨학교)
늦은 밤, 동백동산으로 자러 가는 새누와 뒤이어 배웅해주기 위해 함께 동백동산 입구로 향하는 볍씨학교 학생들(사진=볍씨학교)

현대사회에서는 고독이 필요하다.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사색할 고독의 시간이 있어야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그럴 시간이 없다. 지금 우리 나이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주학사에서는 24시간 공동체로 생활을 하므로 우리에게 고독의 시간은 필요하다.

지금 제주학사의 받침반에는 남자친구들이 많다. 남자가 많은 받침반이지만 그만큼의 담력이나 기운이 없고 오히려 남자들이 더 챙기고 힘써야 하는 역할이 있지만 미루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영이선생님께서는 우리 받침반에게 하나의 제안을 하셨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혼자서 동백동산에서 3일씩 자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동백동산은 우리가 매일 아침 달리는 곳이고 반환점인 먼물깍까지는 왕복 2.7㎞정도 된다. 먼물깍에는 정자가 하나 있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홀로 보내는 것이었다. 저녁에는 노루의 발소리, 개구리의 울음소리 때문에 무서워 나는 잠시 고민했다. 특히 나는 받침반 중에서도 겁이 많다. 하지만 받침반 모두가 성장하고 싶고 변화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우리는 모두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동백동산에서 자기로 했다. 받침반 7명, 그리고 교환학생으로 온 은여울 고등학교 여천이형까지 딱 3일씩 자면 방학 전까지 일정이 맞아떨어졌다.

우리는 모두 동백동산에서 자기로 했고 순서를 정했다. 나는 4번째였다. 제안을 받아들인 다음날, 가장 먼저 창학이가 동백동산에서 자러 가게 되었다. 영이선생님께서는 억지로, 또 벌로 가는 것이 아니기에 즐거운 마음, 응원하는 마음으로 배웅을 나가자고 하셨고 우리는 동백동산 입구 앞에서 ‘밤이 깊도록’ 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창학이를 보내주었다. 달이 떠 있긴 했지만 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창학이는 몇 초 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후로도 3일 뒤 현우, 그다음 여천이형을 배웅해주었고 앞선 친구들에게 동백동산 정자에서 자는 팁이나 자고 온 이야기들을 들었다. 노루가 달리는 소리, 개구리가 우는소리 나를 무섭게 하는 것은 많았으나 다행히도 귀신은 없었다. 7월 1일, 드디어 나는 네 번째로 동백동산에 자러 가게 되었다.

아이들과 선생님이 노래와 함께 응원해줘서 무서운 마음보다는 긍정적으로 갈수 있었다. 나는 이왕 가는 거 성장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어둠속으로 들어가니 앞이 잘 보이진 않았다. 아쉽게도 달이 떠있지 않아서 머리 위로 보이는 나무들 사이 빛이 전부였다. 빛의 소중함을 알았다. 노루 발소리, 개구리가 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의 마음가짐 덕분에 무섭지는 않았다.

나는 생각보다 먼물깍 정자에 순조롭게 도착했다. 생명이 우는 소리가 많이 들리긴 했지만 무서운 마음보다는 오히려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는 생각에 기뻤다. 뿌듯한 마음으로 정자에 누웠고 몇 십분동안 온갖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다. 우리는 동백동산에 자러 가서 생각하기로 한 것이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가 등 자신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렇게 잠이 들었고 아침에는 왜 인지 모르게 5시에 깼다. 알람시계가 고장 나서 더 긴장하며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굉장히 개운했다. 몇 시간 밖에 자지 못했는데 푹 잘 수 있었다. 볍씨에서는 나의 자신의 성장을 위해 각자 세운 성장목표가 있는데 내 성장목표 중 하나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다. 동백동산에서 일어나 나의 성장목표를 의식해 뒤척이지 않고 기지개를 피고 일어난 후 자연에 나의 생명을 나누어주었다. 그 후 제주학사, 아니 집으로 다시 향했다. 그 이후 이틀 동안 여름밤 동백동산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3일 동안 동백동산에서 자러 가는 길에 위기상황이 있기도 했다. 동백동산에서 자는 마지막 날, 비가 많이 내렸고 내적갈등이 많이 되었다. 우리 학사 옆에 있는 선흘 분교에는 볍씨 스타렉스가 주차되어 있었고 몰래 차에 들어가서 잘까, 아니면 나의 성장을 위해 정자까지 걸어갈까 고민이 정말 많이 되었다. 몇십초 동안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결론은 나의 성장을 위해서 당당하게 동백동산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부끄러웠다.
 
나는 3일동안 어두운 동백동산의 길을 걸으며 생각을 했다. 나는 누구인가. 생각을 하려 하니 재작년과 작년, 사춘기 시기의 내가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가 고민을 하다가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재작년과 작년, 미디어에 빠져 무기력한 삶을 살았다. 가끔 아빠가 일을 나가지 않는 날, 학교에 가기 싫은 날, 게임을 하고 싶은 욕구가 조금이라도 올라오면 엄살을 부려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 이후로 작년까지 미디어와 잠만 원했다. 지금 생각하면 잘못한 행동이었다. 미디어 때문에 부모님과의 갈등이 많이 생겼고 심지어 엄마를 밀친 적도 있다. 이런 나의 잘못된 부분 때문에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내 삶의 떳떳한 나로 주체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내가 후회스러워졌다. 그래도 제주학사에 온 이후 내가 내 삶의 주체가 되고 밝아지니 내가 누구인가?, 누구를 위해서 태어났나? 이런 질문에 답도 고민할 수 있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강새누다. 지금까지는 책임감 없고, 항상 미루고 뒤로 빠져 있으려고 했다. 귀찮음과 싸움에서 항상 졌다. 제주학사에 와서 가장 크게 성장한 부분은 끈기, 최선, 책임감 이렇게 세가지다. 밥 지기, 하루지기, 또 나의 개인 성장목표 덕분에 나의 삶에 집중하고, 더 긴장하면서 살 수 있었다.

또 일과 달리기로 나와의 체력싸움에서 이기며 나의 한계를 점차 뛰어 넘을 수 있었고, 제주학사에 와서 나의 최선의 기준이 확 높아졌다. 나의 지금 태도, 열심히 살 힘이 있는 것을 보면 나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부분을 끈기 있게 계속 이어나가서 내 삶의 주체로 더 성장해서 완전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자 부모님에 대해 내가 너무 과한 걱정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의 성장보다 부모님을 위해 사는 내가 된 것 같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기 때문에 나의 성장을 1순위로 생각하겠다.

3일 동안 동백동산에서 혼자 자면서 나는 더 굳게 마음먹었고 나는 또 성장했다. 담력을 키울 수 있었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닌 일단 부딪혀 보는 힘이 생겼다. 나는 나의 목표,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다. 또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다. 비가 오는 날, 안 오는 날 두 상황 모두 경험 할 수 있었다. 더 많은 경험을 한 만큼, 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 만큼 마음을 굳게 먹어서 이 기운을 끝까지 가져가겠다. 한계를 뛰어넘으려 노력한 내가 자랑스럽다.

 

강새누

저는 4살 때부터 지금까지 볍씨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8학년까지 육지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부모님이 없는 제주도로 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없이 살면서 독립심을 키우고 또 저의 무기력함을 떨쳐내려고 왔습니다. 제주 학사에서 친구들과 지내고, 또 저를 무기력하게 만든 미디어가 없으니 많이 밝아졌습니다. 앞으로도 제주에서 지내면서 나태함을 없애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1년 동안 많이 배우고 성장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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