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요즘 영국은 유로2020 축구 경기로 한창 후끈하다. 야외와 펍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국의 팀들을 응원하고 있다. 잉글랜드가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이겨 결승전 진출이 결정되던 날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영국인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꽤 대단하다.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는 월드컵의 서울 시청광장처럼 축구 팬들을 위해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길거리 응원을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팬데믹인 상황에 왜 굳이 경기장, 길거리 응원 광장 및 펍 등에서 몰려 축구를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칼럼이 발행될 즈음에는 이탈리아와의 결승전 결과가 나올 텐데 승패를 떠나서 벌써 걱정이다. 왜냐하면 영국인들은 경기에서 이겨도 져도 술을 마시고 거리에 몰려다닐 것이다. 문제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인데 과연 일일 확진자 수가 얼마나 치솟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7월 8일 확진 32,551건)

물론 영국은 빠른 백신 보급과 접종으로 현재 사망 및 입원 건수는 많이 안정된 편이다. 그 결과 현재 방역 조치의 방향이 바이러스와의 공존으로 결정된 듯하다. 7월 중순부터는 마스크 착용을 포함한 거의 모든 제한을 해제하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관리하지 않고 강 건너 불구경하듯 두어도 되는지는 의문이다. 사망과 입원 건수는 이전보다 안정되었을 뿐 전혀 없는 것이 아니며 더디지만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어린이 시민들이다. 어린이들은 아직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또다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하여 봉쇄 조치 등의 강력한 제재를 해야 할 때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결정으로 인한 상황들을 어린이들은 여태 불평도 하지 못하고 오롯이 감당해 왔는데 또 그렇게 될까 걱정이다. 그리고 현재 고국의 상황, 특히 수도권의 경우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수도권 거리 두기 4단계 조정에 따라 어린이들은 또 학교에 못 가게 생겼다.

물론 지금과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방역정책 및 수칙 등에 대해 나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무어라 왈가왈부할 수가 없다. 하지만 과연 어린이 시민들을 존중하여 세심하게 고려한 것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꾸만 어린이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단순히 어린이들은 그 보호자에게 종속된 존재로만 취급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어린이 시민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과연 우리는 어린이 시민들을 한 명의 시민사회 구성원으로 존중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아니다’라고 답하겠다.

우리 사회에는 ‘노키즈존’이라는 명칭으로 어린이들의 출입을 금하는 뜻의 아동 혐오 및 차별에 기반한 개념이 있다. 이 노키즈존에 대해 혹자는 차별이 아니라 영업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우길 수도 있겠다. 주로 소란스러운 아이를 통제하지 않는, 소위 말하는 ‘무개념’ 부모나 시끄럽다고 항의를 하는 손님들을 대하기가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노키즈존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한다. 게다가 외국에서도 어린이들의 출입을 금하는 경우가 있지 않냐고 질문하면 그렇긴 하다고 대답 할 수 있다. 소수의 고급 레스토랑과 클래식 공연장에서 나이 제한을 하는 경우가 있긴 있다. 특히 클래식 공연의 경우 많은 집중력과 조용함이 유지되어야 하는데, 일정 나이 이하의 어린이에게는 그것이 힘들 수도 있다. 영국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5세 미만의 유아 출입을 자제하고 있지만, 특별한 가족 이벤트의 경우 입장을 허용하고 있다. 위그모어 홀과 같은 클래식 공연 전문 공연장에서도 클래식 공연에 가지 못하는 유아들과 보호자들을 위한 공연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아이를 편히 데려와서 공연을 감상 할 수 있다. 이것은 ‘노키즈존’이라 명명하며 어린이를 사회에서 배제 시키고 통제하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이들의 어린이 시민에 대한 태도는 이번 방역 정책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영국은 팬데믹 통제를 위해 몇 번의 봉쇄 조치를 강행했었다. 이후 단계적으로 해제 해 나갈 때 우선순위에 두었던 것 중 하나가 아이들의 등교였다. 식당이나 카페, 헬스장 등에 대한 제한 조치를 해제하기 전 학교 수업부터 재개하였다. 한국에 비하면 방역 수칙이 다소 허술한 편이라 아이들의 등교가 완벽하게 안전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래도 학교가 어린이들의 발달 과정에 미치는 큰 영향을 간과하지 않은 것과 어린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이전의 일상을 돌려주기 위해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하고 싶다.

언제쯤 어린이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어린이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를 보여준다. 인정은커녕 어린이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우리 사회는 버젓이 허용하고 있다. 나는 ‘노키즈존’과 같은 혐오를 한가득 담은 차별적 단어를 보며 자라는 어린이들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걱정된다. 게다가 팬데믹의 상황에서 어른들의 책임감 없는 유흥의 결과가 아이들이 교육받을 장소마저 빼앗았다. 사회적으로 학습할 기회를 박탈당한 어린이들은 이제 어디에서 사회를 배워야 할까.

이번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 사회의 많은 민낯,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식과 상황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것은 어린이 시민들에 대한 취급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는 분명 사회적 약자로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동등한 이 사회의 구성원이며 시민이다.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며 단순히 인구수와 출생률을 높여주는 머릿수도 아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좀 더 우리 사회가 어린이 시민에 대한 사려 깊은 감수성을 갖게 되었으면 한다.

 

 

 

 

 

김지민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제주 4·3에 대해 연구 중인 김지민은 온 마을이 키운 박사 과정생이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제주와 런던을 잇는 [지민in런던]은 매월 둘째주 게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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