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무로 마키노우치 구 해군 비행장 활주로에 새겨진 발자국. 종이에 흑연. 99x38cm (사진=아트스페이스씨)
네무로 마키노우치 구 해군 비행장 활주로에 새겨진 발자국. 종이에 흑연. 99x38cm (사진=아트스페이스·씨)

오카베 마사오의 전시 《기억의 활주로: 숲의 섬에서 돌의 섬으로》(2021. 7.15~8.4)를 열고 있다. 작가는 50여 년 넘게 프로타주 작업을 하고 있다. 프로타주/탁본은 고고학이나 문화인류학 혹은 범죄학에서 기록의 방식으로 사용해왔다. 동전 위에 종이를 놓아 문질러봤던 경험이 있을텐데, 그것이 일종의 프로타주이다. 비석이나 벽면에 새겨진 문자나 형상들은 프로타주/탁본이 되었을 때 그 내용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 보이고 기록의 역할을 한다.

오카베는 자신이 있는 장소를 느끼고자 서 있는 발밑의 장소를 프로타주하는 방법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표현했다. 그가 묻혀있는 오랜 기억이나 잘 드러나지 않는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왔다는 점에서, 그 의도를 실행하는 매체로서 그 장소에 밀착해 온몸으로 느끼며 육체적 노동을 가하고 땀 흘리며 문지르는 프로타주/탁본 작업은 작가가 추구하는 창작 의도를 담아내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오카베 작가의 활동을 기록해왔고 이번 전시에 협력 큐레이터로 참여한 미나토 치히로교수는 오카베 작품 활동에서 중요한 지점 중 하나로 탄광을 비롯한 일본 근대화를 지탱한 산업 유산에 대한 질문의 태도라고 봤다. 근대를 물을 때 답을 찾는 방법이 ‘질문의 대상과 관련된 전문가나 향토사학자, 그리고 많은 시민들과 협동하여 진행하는 작품 제작 과정과 일체화된, 함께 생각하는 활동’이다.

《우리의 과거를 위한 미래는 있는가?》는 그의 2007년 제 52회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전시다. 이는 9년 간 히로시마의 우지나역 피폭석을 프로타주한 작업이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위해 일본 전역에서 모여든 군수물자와 군인들은 우지나역과 연결된 우지나항에서 출발했다. 질문의 답으로서 그의 작업은 피해뿐만 아니라 그 원인이 된 출발점을 드러내 짚어내는 것이다.

작가는 1942년 일본 홋카이도 네무로에서 출생했는데, 그의 고향에는 일제가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위해 만든 구 해군공항이 있다. 이 공항으로 인해 1945년 7월15일 미군의 폭격을 받았고 마을 주민 400여 명이 희생되었다. 당시 4살인 작가는 아버지의 등에 업혀 피신을 했고 폭격으로 불타오른 마을과 비행기 폭격의 형광 불빛 등이 7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오카베는 2002년부터 폭격 후 남겨진 네무로의 구 해군공항 활주로를 서울에서 구입한 대형 한지에 프로타주 하였다. 그리고 2003년에는 근처 중학교 학생들과 프로타주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그 때 근처 절의 주지와 함께 당시 공항 건설로 희생된 일본인 노동자와 조선인 강제징집 노동자의 희생을 위무하는 향과 초를 피우고 기도를 드렸다. 자기 동네에 그런 역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참여 학생중 한명이 활주로에 찍힌 노동자들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당시 학생들의 발자국 프로타주 결과물과 소감은 그 곳 도서관에 보관되어 기억되고 있다고 한다.

제주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를 프로타주하고 있는 오카베 마사오 (사진=미나토 치히로)
제주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를 프로타주하고 있는 오카베 마사오 (사진=미나토 치히로)

2019년 7월, 오카베 마사오 작가가 제주를 찾았다. 일제 강점기에 제주도민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알뜨르 비행장의 존재를 뒤늦게 알고 찾은 것이다. 작가는 알뜨르 비행장을 보고 네무로의 구 해군비행장과 너무 닮아 충격적이었다며 알뜨르 격납고 표면을 프로타주한 12점의 작품을 귀국 후 보내왔다.

알뜨르 격납고 프로타주와 함께 네무로 구 해군공항 활주로에 찍힌 일본인 노동자와 조선인 노동자의 발자국 프로타주, 대형 한지에 활주로를 프로타주한 작품, 공습의 기억을 항공편지에 담은 에어로그램작업이 이번에 전시된다.

코로나로 인해 작가가 직접 워크숍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와 오랜 교류로 알뜨르 공항의 존재를 알린 고길천 작가의 안내로 프로타주 워크숍도 5월에 진행했다. 우리의 과거를 위한 미래! 알뜨르 뿐만 아니라 군사기지화 될 위협에 직면한 제주의 현실을 담아야했다. 워크숍 장소를 알뜨르 비행장뿐만 아니라 해군기지가 건설된 강정을 포함하게 된 연유다. 강정 워크숍 때, 문정현 신부가 대한민국 해군 글자가 찍힌 오수관 뚜껑을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프로타주하였다. ‘지금껏 5049일 매일 아침 이 곳에서 백배를 하였지만 여기에 구럼비 바위를 시멘트로 덮고 그 아래로 대한민국 해군의 오수관이 지나간다는 것을 이번 프로타주를 하면서야 알았다! 이것이 예술이구나’ 라며 한탄과 감탄을 하였다. 미리 진행한 작가와의 대화 때 화상으로 워크숍 영상을 공유했다. 미나토 교수는 ‘누군가 쓰러지면 다가가 어깨를 토닥이거나 등을 문지르며 괜찮냐고 묻는다. 프로타주는 인류역사와 땅이 기절한 상태를 다시 숨을 쉴 수 있도록 함께 손을 움직이고 문지르는 행위이며 그것이 치유이자 예술의 중대한 사명이고 그것이 오카베 작품의 큰 매력’이라고 말한다.

조선인들에 대한 강제노역으로 악명 높은 군함도를 포함 일본 내 23곳의 탄광·제철소 등을 대상으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일본이 1940년대 한국인 강제 징역 노동의 흔적을 지우고 일본의 산업혁명 성공 역사를 과시하는 장소로만 그 유산을 선전하게 될 것이라는 보도를 접했다. 일본은 체면이나 양심도 없이 자국에 불리한 역사 흔적 지우기에 극성이다.

두 공항을 프로타주한 작업들, 워크숍 영상과 참여자들의 프로타주, 작가와의 대화 기록 영상, 알뜨르와 강정에 관려 된 오프닝 강연, 당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영화 상영 등을 준비하였다. 오카베는 “내 활동은 과거를 현재로 끌어내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작품으로 굳건히 하려는 시도이다. 나는 그것이 예술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기억 지우기의 부질없음을 그리고 예술의 길고 거듭되는 기억의 힘을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새삼 다시 느꼈다.

 

안혜경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

예술은 뜬구름 잡는 이들의 영역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포착해 굳어진 뇌를 두드리는 감동의 영역이다. 안혜경 대표가 매월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예술비밥'은 예술이란 투명한 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사회를 엿본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