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의 12번째인 대서(大暑)가 코앞이다. 불볕더위와 찜통 습기가 기승을 부린다. “대서에는 염소 뿔도 녹는다”는 속담을 몸으로 실감하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 시기는 농민들에게는 봄걷이가 끝나고 모내기와 콩, 참깨 등의 파종을 마쳐 모처럼의 여유를 누리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농가월령가 6월령은 ‘젊은이 하는 일이 김매기 뿐이로다.’ ‘정자나무 그늘 아래서 보리단술 먼저 먹고, 맑은 바람에 배부르니 낮잠이 맛있는 좋은 세월이로구나.’라고 노래하고 있다.
양반들은 더위를 피해 산정(山亭)이나 계곡에서 시를 읊으며, 어린 암탉을 고아서 찢은 고기와 오이 등을 국수에 얹고, 볶은 들깨를 갈아 받친 백마자탕(白麻子湯)을 부어 말아먹는 등 보양식을 먹었다. 제주에서는 된장·우무 냉국과 개역으로 더위를 달래고, 유월 스무날을 ‘닭 잡아먹는 날’이라 하여 백숙으로 보양하였다.
현대인들은 이 시기에 바캉스(vacance)를 떠난다. 바캉스는 ‘자유로워진다’는 뜻의 라틴어 바카티오(vacatio)에서 유래한 프랑스어이다. 하지만 바캉스라고 하면 우리는 휘황찬란한 관광지와 인산인해를 이룬 해수욕장을 떠올린다.
해수욕장은 기차나 시계와 같은 근대자본주의의 풍경이다. 중세까지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해변은 1750년 영국인 의사 리차드 러셀(Richard Russel)이 해수의 치유속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생활공간으로 들어오더니, 19세기 후반 마네의 ‘볼로뉴 해변에서’, 모네의 ‘투루빌의 갑판 위에서’라는 인상파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부르주아가 자신의 부를 과시하면서 여가를 즐기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해변은 귀부인들이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고 양산을 든 귀부인들이 우아하게 걸어 다니는 산책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화이트칼라 등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해변은 휴가를 받아 해방을 느끼려는 수많은 인파들이 모여드는 욕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노동을 제공하여 급여를 받아야만 하는 우리의 일상은 하기 싫은 일도 땀나게 일하고, 고통 도 견딜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 숨 막히는 일상에서의 탈출구가 휴가이며, 이 휴가로 인해 일상은 유지된다. 그래서 우리는 일상의 고통을 휴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견디고,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휴가를 떠난다.
휴식은 늘 하던 일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게임에 몰입하거나, 산책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땀 흘리며 운동을 하거나 편안해지고 만족을 느끼는 모든 순간이 휴식이다.
복잡한 도시에서의 일상은 우리 뇌에 긴장과 갈등을 주어 과부하를 일으킨다. 한자 ‘휴(休)’처럼 나무에 기대어 푸른 숲과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우리의 뇌는 자연에서는 도시와 달리 끊임없는 자극의 융단폭격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그저 고요하고 평화로운 자연 속에 몸을 맡기는 것만으로도 뇌세포는 공회전으로 인해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원래의 건강함을 회복한다. 자연에서 ‘멍 때리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원래 의미의 바캉스와 레크리에이션(recreation)이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도시화로 인해 자연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특히 흙을 만지고, 식물을 보듬으며 자연과 일체가 되는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심훈의 상록수로 대표되는 일제 치하 브나로드운동에서 시작되어 1970~1990년대까지 활발히 이루어졌던 학생들의 농촌봉사활동마저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인이다’에 열광하는 도시인들에게 농촌은 현실과 떨어진, ‘보는’ 대상일 뿐이다.
코로나로 인해 휴가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캠핑, 호캉스 등 가족, 커플, 나홀로가 대세를 차지하면서 시끌벅적한 발산 관광에서 조용한 수렴 여행으로 바뀌고 있다. 필자는 휴가 트렌드가 더 바뀌기를 소망한다.
아이들과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옥수수를 따고, 정자나무의 바람소리를 듣다 낮잠을 자고, 강요배 화백의 ‘노각성자부줄’이라는 작품처럼 푸른 하늘에 피어난 별들의 실타래에 눈을 맞추고 자청비 이야기를 나누는 농촌체험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메가 트렌드가 되기를 고대한다. 농촌체험은 산업화로 분리된 사람과 자연, 도시와 농촌, 정신과 육체, 사람과 사람을 다시 연결하는 출발선이 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할머니 감이 왜 이리 많이 떨어져요?”
“감나무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감만 남기고 나머진 다 떨군단다, 그래야 감이 실하지.”
“그래요. 정도 주지 않으면 얻을 수 없어요.”
우영팟에서 딸과 어머님이 나누는 대화에서 여행의 참모습을 본다.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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