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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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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읽기]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 삐리용
  • 승인 2021.07.23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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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지음, 이지윤 옮김, 시공사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아네테 크롭베네슈 지음, 이지윤 옮김, 시공사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지음, 이지윤 옮김, 시공사

한 달 전, 30년 가까이 살았던 옛 동네에서 지인과 식사를 했다. 서울내기 지인을 앞에 두고 홈그라운드에 있자니 ‘라떼 타령’이 절로 나왔다. 이곳이 어땠고, 저곳은 또 어땠네, 어쩌고 저쩌고… 지인은 듣다 못했는지 내게 물었다. “뭐가 제일 그리워요?”

나는 말했다. “밤! 칠흑 같은 밤. 아주 깜깜한 밤. 사람이 제일 무섭고도 제일 반가운, 아주 어둡고 좁은 골목길의 밤!”

중학생이었을 때 윤동주가 좋았고, 무서웠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란 시인은 범접할 수 없게 서늘했고,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라고 말한 시인은 좋았다. 그래서 '별 헤는 밤'의 윤동주는 더 좋았다. “별 하나에 추억과/별 하나에 사랑과/별 하나에 쓸쓸함과/별 하나에 동경과/별 하나에 시와/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모든 게 까발려지고 고백되고 심판되는 낮의 선언이 아니라, 소박하고 서정적이며 여성적인 밤의 정서가 좋았다.

지인과의 식사 후, 집에서 책 한 권을 찾았지만, 없었다.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텐데, 어둠 속에 숨어버렸다. 내 기억 속의 그 책 첫 문장은 이런 식이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나설 수 있었던 자는 행복하여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확인해보니 실제 문장은 이랬다.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다. 대학 초년병 시절 읽었다. 지금도 내 또래의 학생들이 과연 루카치를 읽고 있을까? 어쨌든, 루카치는 과거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 그때는 행복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루카치가 말하고 있는 '그때'는 고전주의 시대였고, '지금'은 근대를 뜻한다.

근대는 파탄난 시대다. 그 파탄난 시대에서 (장편)소설이 태어났다. 소설은 근대의 적자인 셈이다. 그 소설을 사는 인물들은 문제적 개인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좀 더 멋 부려, 누군가의 표현을 빌어 말하면, 타락한 시대에 타락한 방식으로 세계를 통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설인 셈이다. 소설이라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이 세계를 이해하고 또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소설은 사회학과 정치경제학의 한 방편이었다. 소설, 더 넓게 문학은 시대의 암흑 속에 빛나는 하나의 별이었다.

1990년대 중반, 나는 이미 변절자였고 패배자였으며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 노래했다.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가를/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천지인의 노래 '청계천 8가')라고 말했다. 나는 조금 울 수 있었다. 이제는 내 스스로 빛을 만들고 그 빛에 의지해 살아야만 했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를 오래 들여다봤다. 여느 환경 관련 책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책이었다. 밤을 밝히는 조명이 ‘빛 공해’로 바뀌는 과정과 그 과도한 빛들이 인간은 물론 자연 생태계에 어떤 영향들을 미치고 있는지를 백과사전처럼 광범위하면서도 실증적으로 서술했다.

“생명에 필수적인 어둠은 지켜야만 한다”는 절대명제와 함께 “빛과 그림자 그리고 어둠을 다루는 창의적인 방식”을 고민하고 실천하기를 저자는 호소한다. 그 호소들을 쫓으며, 이따금씩 나는 상상했다. 나의 조그마한 밤의 편력을.

윤동주와 루카치를 다시 읽을 수는 있다. 천지인의 노래를 무한반복으로 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골목길의 그 먹먹한 어둠을 다시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영영 사라진 그 어둠은, 역설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빛에 눈이 멀게끔 하고 우리의 낮을 더 깜깜하게 만든다. 우리들은 빛에 눈 먼 자들이다. 어쩌면 죽음만이 우리들에게 허용된 어둠일지도 모르겠다.

어떤가? 밤을 위한 혁명의 모의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너와 나,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제주시 이도2동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

'한뼘읽기'는 제주시에서 ‘금요일의 아침_조금, 한뼘책방’을 운영하는 노지와 삐리용이 한권 혹은 한뼘의 책 속 세상을 거닐며 겪은 이야기를 전하는 코너다. 사전적 의미의 서평 즉, 책에 대한 비평보다는 필자들이 책 속 혹은 책 변두리로 산책을 다녀온 후 들려주는 일종의 '산책담'을 지향한다. 두 필자가 번갈아가며 매주 금요일 게재한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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