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이 보이는 '감귤밭']<br>
한라산이 보이는 감귤밭. (사진=제주투데이DB)

“그래, 일단 해보자.”
 
여섯 달에 걸친 공부 끝에 내린 다짐이다. 올해 제주투데이 창간 기획 아이템으로 ‘농업’이 선정된 뒤 지난 1월 기획팀이 꾸려졌다. 농업 분야 공무원, 자연재배를 고집하는 초보 농부, 토종종자의 가치를 전파하는 농민, 퍼머컬처(permerculture·지속가능한 농업)를 꿈꾸는 귀농인 등 다양한 농업 관련 종사자가 함께하고 있다. 지금까지 열네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답이 없다.” 

지난 반년간 농업을 공부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제주는 물론이고 한국 농업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답이 없는 둣했다. 통계로 따지자면 국내 농민 수는 지난 1980년 전체 인구의 28.9%를 차지했으나 현재 2020년 12월 기준 약 4.5%에 그친다. 식량 자급률은 꾸준히 하락해 절반에 못 미치고 국민총샌산(GNP)에서 농림어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8%(2020년 기준)에 불과하다. 

인구 감소로 인해 사라질 위험에 있는 지역은 2020년 4월 기준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05곳으로 46.1%에 이른다. 대부분 강원, 경북, 경남, 전북, 전남, 충남 등 농촌 비중이 큰 지역이다. 젊은 층이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해 2인 가구 기준 농가 평균 연간소득은 3906만원으로 도시노동자 평균소득 5472만원과 비교해 1500만원 이상 적다. 

농민 수와 식량자급률, (시장가격으로 환산한)농업 생산 가치, 농촌 거주민 수, 농가소득 등 모든 수치가 매년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개발주의와 산업화에 빼앗긴 것들”

문학평론가이자 녹색평론 발행인이었던 고 김종철 선생은 100년 전 독일 철학자 오스발트 A.G. 슈펭글러의 예언에 주목한다. 이 독일 철학자가 저서 <서구의 몰락>에서 1920년대 서구 문명의 몰락을 진단할 때 무엇보다 ‘농업’의 쇠퇴 현상을 지목했다는 것. 김종철 선생이 인용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문명이 몰락의 단계를 맞으면 사람들의 생활은 거대도시로 집중되고 이외의 지역은 황폐하게 된다. 대지(大地)에 생사를 맡기고 생활해온 민중은 사라지고 토지로부터 유리된 채 대도시에 기생하는 유랑민이 대량으로 발생한다. 대도시의 주민이 된 사람들은 농민 생활을 마음으로부터 혐오한다. 그들에겐 전통이라는 것은 전혀 없으며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오로지 경제적 동기일 뿐이다.”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김종철 씀, 녹색평론사, 2019)에서

김 선생은 “지금 한국의 현실을 완벽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국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지역경제의 피폐화란 결국 농촌경제의 붕괴 현상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라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슈펭글러는 농촌과 지방의 황폐화를 담보로 한 도시화, 근대화야말로 문명의 몰락의 분명한 징후라고 진단한 것”이라며 “대도시를 근거로 해서 지금 전개되고 있는 온갖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적인 활동 전체는 농(農)을 숙주로 하는 기생적인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농협은 농번기 인력난 해소를 위해 농촌인력 중개센터 3곳을 개설, 시범 운영을 거쳐 내년 봄부터 본격 가동한다.
제주 농촌. (사진=제주투데이DB)

땅을 딛고 살아가는 인류에게 땅을 기반으로 한 일(농업)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농업을 멀리하고 그 자리에 개발주의와 산업화를 들여오는 동시에 농업에 얽힌 가치들도 잃어갔다. 그 결과 사회·자연 환경은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됐다. 

대형 산불,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로 인한 대규모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기후 비상사태라고까지 불리는 기후변화로 전 인류가 생존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아울러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인간소외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게다가 실물이 아닌 금융 자본시장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커지면서 경제적 불평등도 극심한 상황이다. 100년 전 독일 철학자가 예언했던 장면이 더욱 거대한 스케일로 재현되고 있다. 

“여기 제주 땅에서 질문을 던지다”

지속가능한 인류의 삶을 위해선 지속가능한 농업이 바탕이 돼야만 한다. 인류 문명은 “농을 숙주로 하는 기생적인 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농업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농업이 천하의 가장 큰 근본이라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4차 산업혁명을 말하는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사성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다. 하지만 이 고리타분해 보이는 문구는 여전히 유효하며 인류가 존재하는 한 그러할 것이다. 

과연 농업 문제를 해결할 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이미 늦어버린 것일까. 회의 중에 농업 통계 수치를 이야기하다 “절망적이다”라고 탄식을 내뱉자 누군가 말했다. “지금도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고 농촌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지 않느냐. 그 사람들이 거기에 있는 이유가 희망 아니겠느냐”고.

그래, 어쩌면 답이 없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제대로 된 질문이 없었던 게 아닐까? 애초에 잘못된 질문만 던져왔기 때문 아닐까. 질문 자체가 틀렸는데 원하는 답이 나올 리 없다. 수박의 겉만 핥으면 수박의 맛을 알 수 없다. 속을 파고드는 질문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팀은 이번 기획의 목적지를 ‘답’이 아닌 ‘질문’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땅과 맞닿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구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주가 전국에서 농업이 불끈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사실이다. 농가 인구 수는 지난해 기준 14.2%를 차지해 전국 평균과 비교해 세 배 이상 높고 1차산업 비중도 전국에서 가장 높다. 농업 예산 비율도 10.3%로 국가 전체 예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인 2.92%보다 훨씬 높다. 육지부와 비교하면 도시-농촌 간 사회적·물리적 거리도 상대적으로 가깝다.

농자제주지대본(農者濟州之大本). 농업이 제주의 가장 큰 근본이라는 구호 아래 주먹을 불끈 쥔다. 여기 제주 땅에서 지속가능한 열매를 맺을 씨앗이 움트는 그 날까지. 

제주 밭과 바다를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사진=김재훈 기자, 편집=박소희 기자)
제주 밭을 바라보며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사진=김재훈 기자, 편집=박소희 기자)

 

※창간 기획 [불끈!제주농업]은 시즌제로 진행된다. 시즌Ⅰ에선 당장 발등에 떨어진 시급한 제주농업 현안에 초점을 맞춘다. 충분한 논의와 취재를 위해 3~4주마다 한 주제씩 모두 일곱 차례에 걸쳐 보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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