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가루 사과. (사진=픽사베이)
햇사과 쓰가루. (사진=픽사베이)

풋사랑은 상큼하고 달달하지만 풋과일은 시고 떫다. ‘풋’이라는 접두사가 뜻하는 것처럼 풋과일은 덜 익은 과일이다. 그래서 ‘풋’자가 들어간 과일의 이름만 떠올려도 입안이 시큼해지고 얼굴이 찡그려진다. 

고등학교 시절, 누나는 장 보러 갈 때 필자를 짐꾼으로 대동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아오리’ 사과를 사주었다. 필자는 푸른 껍질에 이빨 자국을 남기며 아삭한 중과피를 씹었다. 그러면 촌아이로 되돌아간 것 같아 도시 생활에 졸아들었던 마음이 푸근해졌다. 

아오리의 정식 명칭은 ‘쓰가루’이다. 일본 아오모리현 사과연구소에서 개발한 품종이어서 아오리라고 불렸던 것이다. 쓰가루는 완전히 익어도 녹황색을 띠는 여름 사과다. 쓰가루처럼 풋사과로 잘못 아는 사과가 또 있다. 국산 품종인 ‘썸머킹’이다. 쓰가루처럼 껍질 색이 녹황색이고 여름에 수확한다. 

풋감은 감물을 들이는 염료로 사용된다. 풋감 즙으로 물들인 제주 갈옷은 땀이 차도 몸에 달라붙지 않고 눅눅한 곳에 두어도 곰팡이가 슬지 않는다. 바로 떫은맛을 내는 타닌(tannin) 성분 때문이다. 타닌은 식물이 미생물, 곤충, 포유류 등에 대한 방어 기능을 한다. 그래서 많이 먹으면 설사할 수 있다. 

이처럼 풋과일 자체가 먹는 상품으로 팔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덜 익은 푸른 과일이 주목을 받고 있다. ‘풋귤’이다. 그동안 감귤농가들은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상품성이 떨어지는 감귤을 솎아냈었다. 그런데 8년 전부터 푸른 귤에 설탕을 재어 만든 청에 탄산수를 혼합한 에이드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자 아예 재배 중인 푸른 감귤을 따서 출하하기 시작하였다. 

올해는 약 1500톤이 출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풋귤은 건강음료의 대표 재료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2015년까지만 해도 미숙과로 분류되어 유통이 금지됐던 것을 생각하면 혁신적인 변화다. 

풋귤이 처음 상품화될 때는 푸르다는 의미를 강조하여 ‘청귤’이란 이름으로 거래되었다. 그러다가 2월까지도 푸른색을 잃지 않는 제주고유의 품종 ‘청귤(Citrus nippokoreana)’과 혼동된다고 하여, 2016년 ‘제주특별자치도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 개정 시에 ‘풋귤’이라는 공식 명칭을 얻었다.       

풋귤. (사진=농식품정보누리 홈페이지)
풋귤. (사진=농식품정보누리 홈페이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소에 따르면 풋귤은 활성산소(유해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물질인 폴리페놀(polyphenol) 함량이 익은 감귤보다 최소 2배 이상 많고, 항산화, 항암, 항염증 등의 효과를 지닌 플라보노이드(flavonoid) 함량 또한 2.5배 이상 많다. 

특히 항암효과를 지닌 것으로 알려진 노빌레틴(nobiletin)과 탄제레틴(tangeritin) 함량은 익은 감귤 함량의 4배가 넘는다. 또 껍질에 풍부한 비타민 C는 만성피로의 원인이 되는 젖산을 분해해 해외로 배출하고 몸의 신진대사를 활성화한다. 

농촌진흥청과 제주대학교 연구진이 풋귤 추출물로 화장품을 만들고 20∼50대 여성에게 4주간 임상 시험한 결과, 피부 보습지수가 18%나 증가하였다. 또 눈가주름은 67.5%, 이마주름은 10% 줄었다. 

풋귤은 출하 10일 전에 잔류 농약검사를 받고 정해진 기간(매년 8월1일~9월15일)에만 유통할 수 있다. 풋귤은 재배 중인 과실을 따서 껍질째 사용하기 때문에 농약 안전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고, 9월 중순이 넘어가면 감귤이 착색되면서 폴리페놀과 플라보노이드 등의 기능성 성분함량이 낮아지기 때문에 만들어진 조례다. 

농약에 대한 염려를 덜려면 친환경 농가에서 생산된 풋귤을 구입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일반농가에서 구입할 경우에도 잔류 농약검사결 과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말 사전에서 ‘풋’으로 시작되는 단어는 253개다. 그중 과일은 풋사과, 풋머루, 풋밤, 풋대추뿐이다. 풋귤의 인기로 보아 풋귤도 멀지 않아 우리말사전에 등재될 것이 확실하다.

풋사랑의 결말은 아리고 쓰다. 그러나 풋귤의 결말은 시원하고 달다. “막사랑 각시님! 당신처럼 청량한 풋귤에이드 한 잔 부탁해요.” 

※매주 화요일 발행되는 칼럼 '말랑농업'은 다음 회차부터 격주로 발행됩니다. 

고기협.<br><br><br><br>
고기협.

 

쌀 증산왕의 아들로 태어나다. ‘농부만은 되지 말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뒤로 하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다. 대학에서 농사이론을 배우고 허브를 재배하다. 자폐아인 큰딸을 위해서 안정된 직업 농업공무원이 되다. 생명 파수꾼인 농업인을 꿈꾸는 필자.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농업을 연결하는 ‘말랑말랑’한 글을 격주 화요일 연재한다. 독자들에게 제주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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