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 글·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책읽는곰

살면서 더듬거리며 말을 한 적이 있나요. 저는 있어요.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있어요. 특히 말을 더듬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저도 조금 말을 더듬었어요. 그때는 감기가 옮기듯이 더듬는 것도 옮기나 싶었지요.

이 책에 나오는 아이도 말을 더듬어요. 아침에 일어나 눈에 보이는 소나무, 까마귀, 달을 말하려 하면 입 안에서 맴돌지요. 학교에 가서는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아요. 목과 몸 안에서 많은 말을 하고 있는데 목구멍이 꽉 막혀서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얼굴만 점점 빨개져요.

아이는 아버지를 따라 강에 가지요.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아이는 강물을 보았어요.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치고 굽이치다가 부딪쳐요. 강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제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아이도 깨달아요. 자신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말한다는 것을. 강물이 흐르며 말하는 것처럼 몸과 마음 깊숙한 곳에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는 울고 싶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아이는 말하기 싫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마침내 아이는 학교에 가서 말을 해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강을 생각하며 말을 해요. 아마 아이는 여전히 조금 더듬거리며 말을 하지 싶어요. 괜찮아요. 강물도 물거품이 일고 소용돌이를 치고 굽이치며 말을 하잖아요.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르게 말을 할 뿐이에요. 그 말을 누구는 알아듣고 누구는 못 알아 듣겠지요.

이 그림책을 보면 마음이 시원해요. 파랗고 쪽빛 물든 물에 하얀 물거품이 참 아름답고 포근해요. 아이 눈은 그 강물을 지긋하게 바라봐요. 가만히 보면 살짝 슬픔이 묻어난 눈이에요. 사람들 세계에서는 말을 더듬거리면 놀림을 받아요. 자연 세계에선 그렇지 않죠. 아이가 아침 잠자리에 일어나서 보는 것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아니 많은 말을 걸어와요. 창틀에 있는 공룡은 아이에게 “잘 잤어.” 하고 인사를 하며 같이 놀자고 해요. 소나무는 바람에 나뭇가지를 흔들며 반겨요. 까마귀도 까악까악 울며 아이가 일어나서 기뻐해요. 밤새 아이 창문에 머물던 달은 “안녕” 손을 흔들며 조금씩 사라져요. 아이는 마음을 다해서 그들에게 반갑게 말을 해요. 말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지만 공룡과 소나무와 까마귀와 달은 모두 알아 들어요. 아이는 강물이 굽이치며 말을 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갖죠. 아이는 이제 강물처럼 말을 해요.

이렇게 아이가 자연 품에 폭 안겨서야 목에 걸린 말들이 조금씩 튀어나와요. 사람도 강물이 될 수 없을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힘들고 아파하면 말없이 품어주는 산이 되고 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산과 강이 늘 따뜻하게만 품어주는 것은 아니죠. 깊은 산 속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강물이 넘쳐나서 사람들이 많이 죽기도 해요. 하지만 산은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를 가리지 않고 품어줘요. 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물고기와 물벌레와 물풀들을 품고 살죠. 산과 강은 아이가 말을 더듬는다고 오지 말라고 하지 않아요. 오히려 산들바람을 불어주고, 눈이 부시도록 파란 강 비늘로 반기죠.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더듬거리며 살죠. 같은 책을 읽어도 조금씩 다르게 생각해요. 같은 말을 들으면서도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여요. 이 책에 나온 아이가 말을 더듬는 것은 어쩌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사람은 때로 아주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면 말을 더듬거리고 앞이 깜깜하다가 하얘지면서 식은땀을 흘려요. 혹시 아이도 그런 것은 아닐까. 소나무와 까마귀와 달 그리고 학교 아이들을 무척 좋아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은종복

글쓴이 은종복 씨는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책방 '제주풀무질'의 일꾼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책과 사회를 또박또박 읽어내려가는 [또밖또북] 코너로 매달 마지막 목요일에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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